제발, 맘 편히 속아주시길

창작물 속 역사적 ‘뻥’에 대하여

by 재서기

살수대첩을 이끈 명장, 을지문덕은 사실 그 업적 외에 알려진 것이 없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생몰연도, 그가 활약한 고수전쟁 이전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남아있는 기록이 없다.

심지어 그의 성인 을지(乙支)조차 진짜 성인지 경칭인지 정확하게 가려지지 않았다.


사실 위인전이야말로 ‘뻥’이 가득한 책들이긴 하다.

80~90년도는 아직 위인전의 영향력이 어린이들에게 강하게 작용하던 시절이었다.

어릴 적, 내 책장에도 60권짜리 위인전집이 꽂혀 있었는데, 출판사도 저자도 기억나지 않는 그 전집엔 재미있는 개성이 있었다.

어린이용 위인전 치고는 꽤나 두꺼운, 장편 동화 한 편 수준의 분량이 한 인물에 배정되어 한 권의 책을 이루는 구성이었는데,

전집을 구성하는 모든 위인들의 일대기가 비슷한 분량의 글로 서술되어 있었단 거다.


장수하며 수많은 업적을 남긴 위인들의 이야기야 아이들에게 적합하게 요약해 풀어낸다 치더라도 단명하거나 업적이 적은 위인들은 참 처치곤란했을 텐데,

을지문덕의 일대기를 맡은 작가는 어린 나의 장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선택을 했다.

바로 을지문덕의 소년 - 청년기를 로빈슨 크루소와 무협지가 섞인 생존 성장물로 그려냈다는 거였다.

소년 을지문덕은 (예나 지금이나 빠지지 않는 위인의 클리셰인) 별의 기운을 타고 태어났으며,

그 별의 기운을 알아본 도인은 을지문덕의 부모에게 아이가 크게 될 인물이니 내가 가르치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그를 산으로 끌어들인다.

그 후 산속 동굴에 자리를 잡고 집을 만들고, 음식을 구하고, 수련을 하며 성장하는 을지문덕의 이야기가 위인전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굉장히 흥미진진하고 디테일한 서사가 일품이었다.

(나는 소금이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걸 이 위인전에서 처음 배웠다.)

전쟁 이후 왕이 내리는 상을 마다하고 다시 은거하는 것으로 역사에서 알려지지 않은 그의 행적을 개연성 있게 처리하며 마무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야기를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은 지금 돌아보면, 을지문덕 편을 써낸 작가분은 굉장한 필력의 소유자셨다.

요즘 식으로 하면 <산속에 떨어진 내가 고구려제일검이 된 건에 대하여>.


역사를 소재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항상 어렵다.

기록이 없으면 그걸 채워야 하고, 기록이 많으면 치명적인 고증 오류를 피해내야 한다.

먼 과거의 인물이면 그 사람의 이야기가 현대를 사는 사람에게 가치 있도록 다듬어야 하고,

가까운 시대의 인물이면 채 해소되지 않은 역사적 논쟁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조상 모독’에 민감한 문중 어르신들의 의견도 생각보다 크게 작용한다. 옆 나라 일본에서 종종 시도되는 소위 위인들의 ‘모에화‘는 애초에 기획 자체를 입 밖으로 꺼내기도 힘들 정도다.


그런데 이런 역사 기반의 콘텐츠에 대한 엄격한 잣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역사 교육의 부족함에서 비롯된다.

‘이걸 진짜라고 대중들이 믿으면 어떡하려고 그러냐?’가 비난 명분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근데 그런 시선이야말로 대중을 역사로부터 괴리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과 ‘의의’ 나열의 역사는 지독하게 재미없다. 그 안에서 인간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기’와 ‘서사’가 이어지는 역사는 엄청나게 재미있다. 들여다보면 사건에 발을 들인 인간군상들이 이글이글 욕망을 불태우며 자기 인생을 걸고 치닫는 모습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건전한 역사 지식이 자리를 잡은 사회에서는 역사를 변주한 창작물이 범람한다.

몽골제국의 대칸이 무림 고수의 돌팔매 하나에 낙마해 죽고,(<신조협려>)

링컨 대통령이 흡혈귀 때려잡는 사냥꾼이 되어 활약하고, (<링컨: 더 뱀파이어 헌터>)

히틀러와 괴벨스를 극장에 가둬 불태우고 기관총으로 난사해 죽인다.(<바스터즈>)

물론 위 사례들은 실제 역사와 다른 엄연한 ‘뻥‘이다.

그리고 난 그 ’뻥‘에 매료되어 실제 역사를 찾아보고 즐겁게 공부했다.

아주 재미있는 ‘뻥’이었다.


무엇보다도 우리 근현대사가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운 뇌관 덩어리라는 게 참 안타깝다.

일제 강점기와 6.25, 독재를 통한 발전에 이르기까지.

’친일파’와 ‘빨갱이‘란 양대 키워드로부터 비롯된 지독한 혐오와 차별 표현들.

정치인과 그와 연계하는 각종 집단들이 이 분열로부터 얻어낼 것이 바닥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우리 사회의 콤플렉스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만큼 역사적 엄숙주의에서 벗어난 창작물을 만들기는 어려워지겠지.

부디, 이 극단감정으로 점철된 역사의식이 청산되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역사인식이 모두에게 자리 잡길. 그래서 이야기꾼이 쏟아내는, 때론 가볍고 때론 독한 농담들을 오해없이 웃으며 즐길 수 있기를.


사족 : 결국 나는 ‘이완용이 종로 한가운데에서 데라우치와 탭댄스 배틀을 벌이다 지뢰를 밟고 폭사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거다.

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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