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레벨업>을 보고
아주 뒤늦게 <나 혼자만 레벨업> 완독.
색다른 방향으로 재미있었다. 기존 소설처럼 서사나 묘사나 성찰을 통해 의미와 재미를 추구하는 방법에서 벗어나, 수치화된 성장과 그에 따른 주변 세계의 리액션만으로 재미를 줄 수 있구나... 싶었다.
TRPG 리플레이라는 형식의 글이 있다.
1명의 게임 마스터와 4~5명의 플레이어가 모여, 게임 마스터가 미리 준비한 시나리오에 따라 묘사하는 상황과 사건을 듣고 캐릭터의 대응을 결정하고 주사위를 굴려 결과를 결정하며 진행하는 'TRPG 게임' 속에서 오고가는 대화들을 대본처럼 만든 글인데, 이게 나름 매니아들에게 인기를 끌었었다. 게임 속 캐릭터를 열심히 '연기'하면서 세계관에 몰입시키는 플레이어들의 모습과 그들이 게임의 '룰'에 따라 벌인 모험의 결과를 통해 성장하는 걸 직관적으로 보여주며 서사를 이어나갔는데, 이게 처음 등장한 당시로선 되게 신선했었으니.
TRPG 리플레이가 여럿이 모여 상호작용하는 게임을 글로 엮었다면, <나 혼자만 레벨업>은 컴퓨터 앞에 홀로 앉아 진행하는 온라인 게임을 글로 엮은 느낌이다. 거기서 혼자만 치트를 써서 먼치킨이 되고, 다른 유저들의 칭송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과정을 글로 옮겨 독자가 대리체험할 수 있게 만든 거다.
게임 만드는 일로 먹고 살아볼까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던 헤비 게이머로서 십수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BJ들의 게임 방송을 처음 접했을 때, '남이 게임하는 거 보는 게 뭐가 재밌다고, 내가 해야 재미있지'하고 생각하다가, 예전 오락실에서 남의 플레이를 옆에서 지켜보며 넋을 잃었던 경험을 떠올리고 수긍한 적이 있었는데, 이 작품이 딱 그런 격이다.
사람이 게임으로부터 쾌감을 얻는 이유는 게임이 현실에서는 좀처럼 체감하기 힘든 '성장'을 직관적으로 수치화해 보여주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이런 쾌감의 요인을 노골적으로 소설이란 형식의 글로 이식했다. 웹소설이란 장르에 걸맞은 방법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목부터 비슷하게 베껴 쓴 수십편의 아류작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도 웹소설 시장답다. (부정적인 느낌이 아닌, 이 장르가 시장의 니즈에 이렇게 대응하는구나 이해하는 측면에서)
사족: 많은 이들에게 팔려야 가치가 있는 상업적 글을 쓰는 입장에서, 이젠 작품을 쓸 때 조금 머리를 비우고 손을 가벼이 해도 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명작이 별거 있나?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기억하면 그게 명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