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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NI Oct 23. 2015

갑과 을

당신에게 '잘못했다'라고 이야기하는 그 사람은 잘못한 사람이 아니다.

언론에서 '갑과 을'이라는 소재로 어떤 사건이 보도되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위 '갑질'에 대해 비판을 한다. 갑질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이며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갑질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도 매일 수많은 갑을 만났다.


서비스하는 죄인


나는 IT 서비스업 회사에서 근무했다. 흔히 말하는 '애플리케이션 개발 및 서비스' 업체이다.


일을 시작한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이해가 가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무료'로 서비스를 편하게 이용하는데도 자신들이 '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비용을 내지 않았음에도, 내가 이 앱을 써주는 '대단한 고객'이길 바라는 것이다.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이 출시되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 버튼 하나를 추가하는 데에도 사용자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고 예상하여 실제 서비스에 적용시켜 테스트도 해보고, 가장 좋은 위치 선정과 기능구현을 해 나간다. 몇 달, 몇 사람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꽤, 그리고 자주


'이거 금방 하는거 아니에요?'

'그냥 기능 하나만 추가하면 되는거 아니에요?'

'다른 앱은 되는데, 이건 왜 안되는데요?' 라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서로 '서비스 하는 죄인'이라는 말을 쓴다. 



무료인데도, 
왜 서비스를 써 주는 '대단한 고객'으로 대접받길 바라는가


물론,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가 들어가는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 정도까지는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이해가 안되는건 '내가 너네 서비스 써주는데 고마운 줄 알아. 내가 요구하는 것들 안 들어줄거야?'라고 꼬치꼬치 캐묻고 심지어 '짜증나서 못써먹겠다.' 라는 말까지 남발하고는 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자신의 생활이 편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무료이다. 그런데도 자기가 '갑'이 되려고 한다.



당신과 얘기중인 그 사람은
아무 잘못이 없다


당시 근무했던 회사에는 cs담당 부서가 없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규모가 작은 애플리케이션 회사는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몇 명 안되는 팀원 전체가 돌아가면서 전화를 받았고, 하루에 받는 전화를 모두 합치면 백 여 통이 넘었다. 거기에다가 메신저 상담까지 합치면... 하루에 최소 이백 여 건의 문의가 들어오는 셈이다.


그리고 매일 꼭 하나, 둘은 소위 우리가 말하는 '진상'이 포함되어 있다.


자신의 분풀이 대상용으로 전화나 메신저를 통해 상대방에게 따지고 기분나쁘다는 표현을 하고 이모티콘을 보내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봤다. 그 상대방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상담을 해주는 사람과 당신에게 불편을 끼친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나는 이 사실을 모두가 꼭 기억했으면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과를 받아내야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화풀이를 하는 사람이 있다.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하다' 라는 사과의 말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기분 나쁜 소리를 하고 따지기 전에 꼭 한번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꼭 그렇게까지 얘기를 했어야 했던 것인지, 정말 다른 표현이 없어서 그렇게 과격하게 얘기해야만 했는지.


그리고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 사람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일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이 아끼는 사람들 중에서도 당신이 한 갑질같은 행동에 상처받는 사실을.



**갑과 을의 내용과 연관있는 또 다른 이야기, '부당사회'편도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buni-story/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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