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하나만 있어도, 돗자리 하나만 있어도 충분한 우리의 데이트
가끔씩은 데이트 할 때, 다른 남자들처럼 맛집과 데이트코스를 알아보지 않고 오는 남자친구가 미웠습니다. 다투기도 했죠. 그래도 공 하나만 있으면 공원에서 실컷 공 던지기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돗자리가 있으면 그늘에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하늘을 바라보며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특별하지는 않아도 이런 소소함이 우리에게 맞는 데이트였습니다.
그늘막 텐트 하나에 돗자리 하나면 어디든 갈 수 있었어. 어쩔 땐 공 던지기가, 또 어떨 때는 배드민턴이, 또 어떤 때에는 도시락이 있기도 했지. 주말에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하는 것도 좋았겠지만 우리에게는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것,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 더 어울렸던 것 같아.
물론 가끔씩 너무 데이트하는데 아무 준비도 하지 않는 오빠가 미웠어. 처음에는 맛집도 찾아가보고, 가보지 않았던 곳도 찾아서 가려고 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무것도 알아보고 오지 않더라고. 나를 만나기 전에 시간 투자를 하지 않는 오빠가 미웠지. 내가 벌써 귀찮아진건가? 하는 생각도 했었고.
이 문제를 가지고 우린 몇 번이나 다퉜어.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딱히 달라진건 없지.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내가 더 이상 다투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겠지. 대신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에는 오빠가 새로운 곳을 찾아봐주었으니 말야. 크게 싸우고 난 뒤에 분위기 좋은 카페, 드라이브 코스를 검색해와서 기분 풀어주겠다고 데리고 가면 기분이 풀리더라고. 나랑 화해하려고 오빠도 이만큼 노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귄 첫 해 우리가 그늘막 텐트를 샀던가? 그 때 기억나? 텐트 사자고 했을때 오빠는 썩 내켜하지 않아했잖아. 정작 사고나니, 텐트치고 쉬는걸 엄청 좋아했으면서. 처음 텐트를 개시하던 날, 우리는 크게 싸웠어. 한 번도 쳐보지 않았던 텐트를 쳐보려니 방법을 몰라서 엄청 애먹었잖아.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봐도 텐트 모양이 나오지 않았지. 지금은 5분이면 다 완성되는 텐트를 그때는 1시간이나 걸려서 완성했었는데. 물론 텐트를 걷을때도 한시간 쯤 걸렸지.
텐트 치는것에 익숙해지면서 날씨가 좋은 날이면 우리는 공원에서 주말을 보냈지. 올해도 곧 텐트 시즌이 시작되겠네. 그냥 같이 있으면서 바람도 쐬고, 가끔 들려오는 버스킹 노래소리도 듣고, 맛있는 것도 먹는 게 우리에겐 좋았던 것 같아. 매번 몰랐던 곳, 특별한 곳을 가지 않아도 이런 편안함이 느끼고 싶었던 거겠지?
무엇이든 '같이'한다는 것이 중요했던
우리의 데이트
같이 '무엇인가'를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하더라도 '같이'하면 된다는 게 데이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었나봐. 어쩌면 서로 직장에서 평일 내내 여유도 없이 힘껏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다가 주말은 편안히 쉬고 싶었던 마음이 통했던 것일수도 있겠다.
아마, 결혼해서 같이 살게된다면 주말에 우리는 집순이&집돌이가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네. 마트가서 장 봐와서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보고, 오빠가 좋아하는 영화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가끔 보드게임도 하면서 그렇게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아. 재밌겠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