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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김 May 14. 2024

마늘 까면서 드는 엉뚱한 생각들.

마늘에 싹이 텄다. 나는 평소에 마늘을 시어머님께서 농사지어서 주신 것을 받아다 먹곤 하는데 껍질을 까지 않고 그대로 냉장고에 보관해 뒀다가 그때그때마다 까서 요리에 사용하고 있다. 예전엔 믹서에 갈아서 냉동실에 큐브형태로 얼려 보관했다가 바로바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면 음식맛이 확실히 살지 않는 느낌이다. 적어도 음식솜씨가 그저 그런 나는 그랬다. 신선한 통마늘을 바로 찧어 음식에 넣어야 알싸한 마늘 맛이 맛있게 베어나 음식 맛을 더 살려준다.

 그렇게 사용해 오던 통마늘에 겨울을 지나 봄이 되자  냉장고에 두었어도 봄이 됐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싹이 하나둘씩 나기 시작하더니 이제 알맹이들은 점점 썩어간다. 애써 농사지어 주신 시어머님께는 죄송하고 부끄럽지만 미리미리 까서 냉동실에 보관하지 않고 싹이 나게 한 나의 게으름 탓에 이런 광경을 나는 매년 보고 있다. 물론 많은 양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싹을 틔우기 위한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그렇게 마늘 알맹이들이 썩는 것처럼 보였다. 거의 마늘의 끈질긴 버팀이 한계에 도달할 때쯤이면 한통을 다 까도 멀쩡한 건 한쪽 정도인데 이게 참 위대하다. 버티고 버텨 딱 한쪽만 남긴다는 사실이다. 나의 음식조리생활 몇 년 동안 지켜본 결과 6쪽 마늘 중 한쪽마늘은 반드시 썩지 않고 살아남아 싹을 제일 크게 틔운다. 아마 이대로 흙에 심으면 마늘이 날 것이다. 마늘의 생태를 농사지으면서가 아닌 음식 하면서 깨닫다니.. 우습고 죄송스럽다. 

엉뚱하다 생각하겠지만 난 이런 모습을 보면서 여섯 쪽 남짓하는 마늘알맹이들이 서로 욕심내지 않고 제 자신을 썩혀 싹을 틔우는 것이 이 생명의 살아남는 방법이구나 싶어서 썩은 마늘을 바라보며 그 순간 감동을 받곤 했다. 아 이렇게 위대한 자연의 신비라니.. 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문득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볼 수도 있겠다 싶다. 예닐곱 쪽마늘알맹이들 중 우월한 알맹이가 나머지 모두를 죽게 만들고 영양분을 독차지하며 혼자만 살아남는, 그렇지만 흙과 물이 없어 결국 마지막엔 그마저도 모두 죽는 제로섬게임 스릴러라고 생각해 보면 또 그것 나름대로 재미있는 상상이다.       

어쩌면 마늘처럼 인간의 이타심이 호모사피엔스를 여기까지 살아남게 했다는 가설과 적자생존 가설은 이렇게 같은 현상 다른 생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마음가짐이 새롭게 느껴진다.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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