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쓰기 위해 은행에서 받아온 벽걸이 달력이 몇개 남아서 집에도 하나 걸어둘까 하여 하나 가져왔다.
요즘 누가 집에 이 크고 멋없는, 인테리어 감각이 결여된 벽달력을 걸어둘까 싶어 그동안 걸어두지 않고 살아왔다. 날짜야 핸드폰을 보면 되고 굳이 달력을 봐야겠다면 조그마한 탁상용 달력이면 충분했다.
어쨌든 벽달력이 우리집에 왔다. 겉장을 북- 찢으면서 달력의 그 하얀 뒷면을 보니 갑자기 옛날 일들이 훅 하고 준비도 없이 떠오른다.
이 하얀 벽달력의 뒷면에 우린 참 많은 것을 했었지.
명절에 전을 부치고 기름기를 제거하기 위해 전밑에 깔리던 달력 두어장.
또 한장은 윷놀이판을 그리기 위해 쓰였고
가끔은 머리숱이 유독 많은 내 머릿속 이를 잡기 위해 그 하얀 달력 뒷장은 펼쳐졌다.
엄마와 언니는 나를 다짜고짜 머리를 숙이게 해놓고선 하얀 달력 한장을 북- 찢어 펼치고 참빗을 가져와서 있는 힘껏 꾹꾹 눌러 내 머리를 긁었다. 그럼 하나씩 톡톡 떨어지던 이들..
'히~익! 이거봐 이거봐. 통통허니 영근것 좀 봐. 이년아 이게 뭣이냐!!? 엉? ' 하며 나를 나무라면서도 엄지손톱으로 뚝뚝 눌러 이를 죽이며 희열을 느끼던 두 사람이었다. 한참 후 하얀 달력은 이의 흔적들로 뒤덮여 있었고 우리는 몇마리인지 세어 보았다.
이 더럽고 창피스러운 기억이 나는 왜 눈물나게 그리운지..
또 새학기가 시작할때면 새로 받은 교과서를 하나하나 이 달력을 펼쳐 싸야 했다. 하얗고 깔끔하게 교과서를 싸고 내 이름을 적어 개학날 가져갔다. 돈이 좀 있는 집은 문방구에서 파는 예쁜 만화 그림이 그려져있는 비닐로 된 기성품을 사기도 했지만 우리집은 택도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중학교에 가서는 멋이 좀 들어 문방구에서 아스테이지를 사 직접 싸고 연예인 사진을 오려 그 사이에 넣어 다니기도 했다.
우리집 삼남매의 교과서를 다 싸려면 작년 달력 열두장으로는 택도 없을 것 같지만 걱정마시라. 그 시절 벽달력의 인심은 지금보다 더 후하여 여기저기에서 받은 벽달력이 안방 장롱 위에 몇개가 돌돌 싸여 있었으니..
벽달력하나에 추억여행을 하고 얼른 글로 남기고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아. 엄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