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족함을 느끼고 싶을 때..
다이제스티브라는 통밀 쿠키에 관한 어린 시절 기억이 하나 있다. 지금도 마트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는데 동그란 빨간색 포장지에 감싸져 있고 소시지나 색연필처럼 줄을 잡아당기면 포장지가 돌돌 풀리면서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먹을 수 있는 쿠키이다. 나 어릴 때에는 통밀쿠키만 있었는데 어느새 다이제 초코라는 이름으로 초콜릿이 덧씌워진 제품도 나와 있어 우리 아이들도 좋아하는 과자이다.
하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이 과자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내가 먹을 수 있었던 과자 가격의 최대치는 100원이었다. 엄마가 매일 100원만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그 당시 100원으로는 웬만한 봉지과자 종류는 다 사 먹을 수 있었다. 새우깡도 초코파이도 불량식품들도 다 가능한 든든한 100원이었다.
다이제스티브는 300원이라는 거금이 들어가는 고급과자여서 내 용돈을 아껴 3일간 과자를 사 먹지 않으면 사 먹을 수는 있었겠지만 배고픔을 버틸 수 있는 인내심이 부족했고 게다가 300원짜리 과자는 굉장히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과자였기에 한 번도 내 돈 주고 사 먹은 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 과자를 맛보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바로 우리 집에 세를 살던 아주머니의 배려 덕분이었다.
우리 집은 시골마을이었지만 새마을 사업으로 지어진 똑같은 모양의 집들이 옹기종이 모여있는 양옥집이었다. 겉으론 꽤나 좋아 보였지만 사실 그다지 실력이 훌륭치 않은 목수였던 아빠가 손수지은 집인 데다 그마저도 돈이 없어 다 짓지 못해 2층 다락방은 휑 하니 뚫려있었다. 그래서인지 단열은 잘 되지 않았고 겨울엔 이불밖으로 나와볼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추운 ‘빛좋은 양옥집’이었다.
우리 집은 연탄불을 아끼려고 겨울에는 안방에서 다 같이 모여 잤으니 그 외의 모든 공간은 냉골이었다. 요즘 사과나 과일을 사면 상자에 냉장보관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그래야 오랫동안 물러지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다. 그런데 내가 어릴 때는 김치냉장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작은 냉장고 하나에 들어갈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으니 엄마가 과수원에 일해주고 받아온 흠집 난 사과라든지 명절 때 들어온 배는 당연히 작은방에 두고 먹어야 했다. 우리집 과일들은 냉장고에 두지 않았어도, 밖에 오래 두고 먹어도 언제나 시원하고 아삭했다. 나는 어른이 되고 그때처럼 밖에 과일을 두었다가 금새 과일이 물러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때의 사과나 배가 더 단단했던 것일까? 왜 지금은 그때처럼 밖에 두면 맛이 없어지는지 의아했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것은 우리 집이 냉장고만큼이나 추웠기 때문이었다.
이 짓다만, 미완성의 집은 미완성이기에 좋은 점도 있었다. 우리집이 아이들의 놀이터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다른 집은 세모난 지붕 밑으로 낮은 다락방이 있었지만 우리 집은 그게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려면 나무 기둥보들을 짚고 험난하게 지나가야 했다. 가끔 텔레비전 안테나가 돌아가 텔레비전이 잘 안 나올 때도 어떻게 해서든 그 험난한 지붕밑을 통과하여 옥상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나름 그것이 모험심을 자극하는 일이어서 아이들에게는 우리 집 지붕에 올라가는 것만으로 재미난 일이 되곤 했다. 어느 날은 아이들과 지붕 정복(?)을 위하여 줄줄이 나무 기둥보들을 밟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도중 누군가 발을 헛디뎌 바로 밑에 있던 얇디얇은 우리 집 안방 천장 합판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날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아이들을 끌고 올라간 죄로 나만 혼났지만 그때 푹하고 꺼진 천장은 우리가 그 집을 팔고 이사 올 때까지도 그대로 있었기에 천장을 올려다 볼때마다 주기적으로 혼나기도 했다.
바로 이 집에 우리 집 식구들 말고 또 다른 가족이 살던 때가 잠깐 있었다. 집만 번지르르 하고 가진 게 없었던 우리는 내가 학교 다니기 전까지는 작은 부엌이 딸린 셋방을 우리가족이 쓰고 안방과 부엌, 거실은 세를 내주었다. 작은 방 하나에 우리 다섯 식구가 살았다. 우리가 집주인인데 집주인 같지 않은 이상한 시절이었다. 한 번씩 마루로 이어진 작은 방 문을 열면 마루와 안방이 보이곤 했는데 부잣집에서만 나는 포근하고 좋은 향기가 집안에서 풍겨오고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어느 날은 주인, 아니 셋방아주머니께서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부러움과 감탄의 눈으로 거실을 둘러보고 있는 나를 보고 안쓰러웠는지 빨간 포장지에 싸인 다이제스티브 과자를 몇 개 꺼내어 주셨다. 과자가 얼마나 맛이 있던지 그동안 내가 먹어오던 과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고급스럽고 한 개만 먹어도 든든해지는 것이 풍족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내 기억에 나보다 어린아이가 있던 집이었고 그 아이에게 간식으로 주기 위해 사두었던 과자인 듯하다. 그 과자를 몇개 얻어먹으면서 나는 이집 아이는 이 과자를 매일 먹겠구나 싶어 얼마나 부러웠던지 모른다.
왜 우린 집주인인데도 저 과자를 먹을 수가 없을까. 왜 우리 집에는 저런 부잣집 냄새가 나지 않을까. 나는 왜 이리 꼬질꼬질할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했던 과자였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비싼 것도 사 먹을 수 있지만 가끔씩 이 과자를 사 먹곤 한다. 맛도 맛이지만 그때처럼 풍족하고도 사치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난 그때보다는 부자이다. 그것으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