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년간 로컬, 리전, 글로벌 포지션에서 마케팅을 하면서, 지난 12년간 싱글, 유부녀, 엄마로 변모하면서 난 조금씩 변화해왔다.
나의 일은 나를 때론 지치고 힘들게 했지만 그보다 나를 존재하게 하고 풍족한 삶을 살게 해 줬다. (경제적인 게 될 수 있지만 그보다 정서적으로) 조직은 agility(민첩성/유연성)와 회복탄력성을 강조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 나가길 바랬지만 그건 트렌드일 뿐 그 속에서 나답게 일했을 때 난 가장 빛이 났다.
영국에서 근무하며 만났던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 그리고 지금 동남아, 인도네시아 지역 동료들과 일하며 문화의 다양성을 배우고영국 본사에서 근무할 때는 그 나라 문화에 대해 에이전시와 트레이닝 세션을 갖기도 했다. 그때도 난 400명이 넘는 영국 본사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자 나다움을 잃지 않았고 여전히 그들은 나를 OOO으로 기억하고 있다.
자녀들 또한 마찬가지다. 11살 딸과 8살 아들을 키우며 (시어머니가 키우며) 느끼는 건 아이들도 저마다의 고유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 20대 연애 때나 남친을 내 식대로 바꿔보려는 미숙함으로 서로가 고단해졌다면 이제 아이들은 내 식대로 바뀔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존중해줘야 한다. (주양육자이신 시엄마는 그러시질 못해서 늘 교육관 및 육아법 충돌이 있지만 주양육자가 아닌 난 내려놓을 수밖에..)
부모님은 또 어떤가.. 엄마는 살아생전 눈이 반짝이던 분이었다. 늘 주변인들을 잘 챙기고 본인 얘기를 하기보다 얘기를 들어주고 좋아하는 작가와 성악가가 있었고 늘 책을 가까이하셨다. 엄마를 보며 집안에서 여자의 중심을 잡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에 반해 늘 활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던 아빠가 엄마가 13년 전 돌아가신 후 변해갔다. 치매를 진단받은 아빠는 여러 감정 단계를 거쳐 현재 수긍의 단계에 와 있지만 여전히 사람을 좋아라 하고 마시지 말라는 술을 종종 드시며 또 사람을 그리워한다.
사람은 변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내 인생의 회고록이다. 인생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많은 경험과 수많은 웃고 울게 만들었던 에피소드를 하나씩 풀어나가고자 한다. 이게 나이고 나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