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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살기로 결심했다.

방하착(放下着)

by 휘파람휘

2021년도부터였나 돌이켜보면 내 나이 40이 되는 시점에 마음속 소용돌이가 시작됐던 거 같다.


유년기 시절 나는 부산에서 외할머니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무엇보다 통제를 하려 들지 않고 가르침을 주시되,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는데 심적, 물리적 지원을 감사하게 받으며 자랄 수 있었다.

덕분에 난 자존감, 역치가 높고 마이웨이를 고수하며 고행길의 삶을 이겨내고 버텨내는 힘을 갖출 수 있었다.

사람을 좋아라 하다 보니 안테나가 바깥으로 향해 있었고 사람들을 내 잣대를 드리워 평가하려 들지 않고 있는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다 보니 늘 주변엔 사람이 많았다.

고 3 존경하는 담임 선생님이 엄마에게 하셨던 말씀 또한 따님은 친구를 좀 정리(?)할 필요가 있어요라고 했다던 엄마와의 대화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어른들의 눈에는 에너지 넘치고 소풍날이면 부대 앞 구제샵에서 나만의 히딱구리 패션과 흰 뿔테를 낀 채 나타나 '춘자'라는 별명을 얻고 애들이 저 2-3반 반장 뭐 입고 오나 봐 봐 라는 얘기도 듣는 아주 색깔이 강하면서 호기심 천국 내 모습이 회고된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현재의 나를 바라보면 난 시간에 쫓기고 불안하다. 늘 뭔가에 바삐 움직여 살아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거를 찾으려고 애쓰지만 이리저리 치이고, 남 평가에 신경 쓰며 무엇보다 가장 편한 장소여야 할 내 집에서 조차 편히 쉬질 못한다.


어떻게 이렇게 예전의 자신감 넘치고 원하는 대로 남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던 나에서 이렇게 지치고 몸에 긴장이 늘 들어가 있어서 여기저기 아프고 힘을 빼지 못하는 그래서 물리치료사분들이 역대급 환자라고 입을 모아 얘기하는 몸뚱이에 눌려 낑낑 거리며 살고 있는 걸까.


21년부터 계절성 우울증, 조울증, 23년에는 기면증 진단을 받고 와 나 아프구나... 몸이 경고를 주는구 나라는 걸 깨달았는데 여전히 나는 일에 허덕이며 늘 하던 대로 경주마처럼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는 나를 마주한다.


노트북에는 그일해라는 걸 붙여놓을 정도로 일에 짓눌렸고 집에서는 본인의 프레임으로 며느리를 바라보는 시어머니로 인해 난 늘 자격미달 엄마의 꼬리표를 안은 채 화나는 마음, 어딘가에 의존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버겁게 살아온 나를 마주했다.


작년에 너무 마음이 힘들어 남양주 봉선사 템플스테이에서 마음에 담아 온 방하착(放下着).

집착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기에 내려놓으라는 뜻이며 물건에 대한 집착은 말할 것도 없고, 생각과 마음까지 내려놓으라는 뜻.


집에서 편히 쉬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인 시엄마와의 분가에 성공해 바운더리를 쳤지만 따로 사는 듯(?) 같이 사는 삶 속에서 남편에 대한 기대감도 이제는 다 내려놓은 채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마음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으면 여름철 도파민 중독자였다가 겨울철 동면에 들어가는 곰 한 마리로 휙휙 바뀌어 버리는 40대의 나에 갇혀서 제대로 쉴 줄도 모르고 그냥 앞만 보고 달리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고 살아가는 삶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걸 벼랑 끝에 서서 깨닫는다.


나는 나만의 것.

이제 느리게 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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