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나의 영토를 바꾸기로 했다

by 상아


“아이고, 찹쌀떡을 많이도 보냈네. 할매들하고 나눠먹어야겄다.”

깽깽대며 주위를 맴도는 토미에게도 떡 하나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찹쌀떡을 바구니에 담아 차에 실었다.


고사리순이 많이 올라왔다. 할머니들은 이미 고사리 밭에 나가 있을 거다. 손빠른 그녀들이 아침 공기 속에서 고사리를 꺽는 동안 은화씨는 장작에 불을 붙이고 국수 삶을 물을 올린다. 처음 고사리 농장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녀는 마당 한켠에 부뚜막부터 만들었다. 불을 피우고 그 불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부뚜막 아래 이글거리는 불길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수십 년전, 쌀통 바닥이 드러나던 겨울 새벽이 떠올랐다.


그 때는 인생에 엄마로서 먹이고 입히는 다정함보다, 앞길을 터주는 냉정함을 결심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드문드문 들어오던 반쪽짜리 월급봉투는 언젠가부터 완전히 끊겼다. 부엌 쌀통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그녀는 쌀을 손으로 헤아려 보았다. 내일 아침은 되겠지. 모레까지는 괜찮겠지. 그렇게 하루씩 미루며 버텼다.


쌀집에 갔다가 외상값을 갚기 전에는 더 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서던 날, 괜히 장바구니를 더 꼭 쥐었다. 가마니로 사던 쌀 대신 됫박으로 파는 보리쌀을 샀고, 밀가루 수제비로 한 달을 넘긴 적도 있었다. 아이들은 군말 없이 먹었지만, 그녀는 그 조용함이 더 아팠다.


아이들 성적표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그 종이 한 장이 희망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두려움이 되었다. 이대로 가다간 아이들이 가고 싶은 길을 중간에서 멈추게 할 것 같았다.

적어도, 발목을 잡는 엄마는 되지 말자고 그녀는 생각했다.


공부를 곧잘 하던 첫째를 두고 친척들은 장학금을 받고 일찍 가계를 도울 수 있는 상고를 권했다. 사정에 맞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아이의 말을, 그녀는 돈 때문에 접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계산기를 여러 번 두드린 끝에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만 보내면, 그다음은 아이가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중단 없이 뒷바라지를 해줄 경제적 토대였다.


남이 주는 월급봉투를 기다리며 입가를 맴도는 부탁을 삼키는 삶은 거기까지였다. 이제는 구걸하는 손이 아니라 솥뚜껑을 열고 길을 닦는 손으로 살아야 했다. 세상이 내어주는 좁은 틈에 자신을 맞추는 대신, 그녀는 스스로 밥벌이를 만들기로 했다.


결국 그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흩어 놓는 쪽을 택했다. 그 선택을 대신해 줄 사람은 없었고, 기다린다고 달라질 형편도 아니었다.


낯선 도시 양항은 대기업공장이 세워지고 도시가 커나가고 있었다. 돈은 넘치는데 일손이 모자란다고 했다. 그곳에 가면 길이 있겠지.


큰딸은 명문여고가 있는 장천으로 보내 자취를 시키고, 둘째와 막내는 잠시 친척 집에 맡기기로 했다. 아이들을 떼어놓고 큰딸을 기차에 태우고,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기차 소리에 실려 보낸 것이 자식인지, 아니면 자신의 안일한 희망인지 모를 눈물이 났다. 그날 처음으로 ‘엄마’라는 말의 무게를 뼛속 깊이 실감했다.


다음 날 새벽, 일찍 눈을 떴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부엌에서 쌀을 씻고 불을 지피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흩어진 가족이 아니라, 더 멀리 보내기 위해 잠시 떨어져 있는 가족이라고. 오늘의 상처가 아이들의 내일을 베어내는 칼이 되지 않도록, 자신이 먼저 단단해지겠다고.


그녀는 무너진 것이 아니라, 떠난 것이었다.

붙들 수 없는 것들을 놓아야만 지킬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걸, 그 겨울에 비로소 배웠다.


부뚜막의 불이 사그라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들이 고사리 망을 들고 비탈에서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이전 05화[제5화] 와이셔츠 박스에 담긴 긍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