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은 고사리를 똑똑 끊는 손맛도 좋았지만, 새참을 나누고, 손에 몇 만 원이라도 쥐는 재미를 좋아했다.
하루는 서울댁이 고사리망를 내려놓으며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아이고, 오늘은 손이 좀 풀렸네. 그래도 사람들하고 하루 얘기하고 나면 살 것 같아.”
“서울댁은 연금도 있담서, 뭐 하러 여그까지 나오요?”
할머니 하나가 농담처럼 묻자, 서울댁이 어깨를 으쓱했다.
“집에 혼자 앉아 있으면, 밥맛이 없어. 여기 나오면 그래도 내가 어딘가에 쓸모 있는 것 같잖아.”
은화씨는 그 말을 듣고 국을 한 국자 더 떠주었다. 그날 저녁, 빈 마당을 보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서만 일하는 게 아니구나.”
은화씨는 노는 땅을 빌려 배추를 심기로 했다. 두 달 남짓한 고사리 철이 지나고 무료해 질무렵 배추밭 김매기가 시작된다. 밭농사는 김매기가 칠할이라고 했다. 40~50년 손에 흙을 묻혀온 할머니들이라면 열 뙈기쯤은 거뜬했다.
“이렇게 넓은 밭을 다같이 한께 금방 다하요.”
“아이고, 우리는 몸밖에 없는 노인네제.”
하지만 모두의 손에는 오늘 번 일당보다 더 오래 갈 힘이 남아 있었다. 은화씨는 알고 있었다. 한 사람씩 있을 때는 제 자리 지키는 것만으로 버거운 삶이, 함께 모이면 조금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처음으로 사람을 모아 일을 꾸려 본 건 양항에서 였다.
낯선 도시 양항에 도착한 후, 그녀는 여느 때처럼 다시 밥을 지었다. 다만 그 밥을 먹는 사람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건설 노동자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함바. 다들 힘든 일이라고 걱정했지만, 그녀는 천막부터 폈다. 바람이 들추지 못하게 모서리를 벽돌로 눌렀다. 가스통을 세우고 커다란 솥을 얹었다. 첫 물이 끓어 오를 때까지 한참이 걸렸다. 뚜껑을 여니 김이 얼굴을 덮쳤다. 그 김 속에서 밥 냄새가 났다.
삼백만원. 어머니가 쥐여 준 돈이었다. 중고 냉장고와 집기를 샀다. 부식재료는 외상으로 받았다.
“대금이 들어오면 드릴께요.”
양항에서 첫날밤, 임시 숙소에 적막이 고였다. 몸을 누이고도,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숫자를 셌다. 쌀값, 고깃값, 외상 장부. 계산이 끝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다른 길은 떠오르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니, 봉투가 묵직해졌다. 제대로 된 가게을 얻어 볼만한 돈이 모이자 적당한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교회 옆, 방 두 칸짜리 상가. 식당만 할 게 아니라, 하숙을 겸하면 더 돈이 될 것 같았다. 큰 방 하나를 외지에서 온 일꾼들의 숙소로 내주고 아침점심저녁에 오전오후 새참까지 책임을 지게 되니, 제법 큰 돈이 되었다.
인부들은 말수가 적었다. 스물 살짜리도, 쉰을 넘긴 이도 늘 잘 먹어줬고, 다 먹으면 자기 먹은 그릇을 설겆이 통에 넣어주었다.
“잘 먹었습니다”
반찬이 모자라면 더 얹어주면 그만이었다. 일주일에 스물한 끼. 김치가 시어지기 전에 볶았고, 생선은 비린내가 돌지 않게 바로 구웠다. 손이 갈라져 세제가 스몄다. 그래도 통장에 모이는 돈을 보면, 솥뚜껑을 여는 순간마다 숨이 놓였다. 김이 피어오르며 얼굴을 적셨다. .
공사장은 팀이 바뀌며 돌아갔다. 기초팀이 빠지면 목수팀이 들어오고, 그 뒤를 조적과 설비가 잇는 식이다. 누군가 “저기 밥 괜찮다”고 말하면, 다음 팀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밥맛이 인사말이고, 그게 신용이었다.
경상도에서 온 법천댁을 만난 건 크나큰 행운이었다. 법천댁은 손도 빨랐지만 무엇보다 말이 통했다. 배포가 크고, 농을 던져도 품위가 있었다. 아주 가끔, 설겆이를 마친 뒤 교회 문을 슬며시 열고 비어있는 예배당 안으로 저녁빛을 들였다. 낡은 피아노 건반 위에 법천댁의 긴 손가락이 내려 앉으면 김치냄새가 사라지고 다른 공기가 흘렀다. 그녀는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그 음율에 잠시 눈을 감았다.
법천댁은 낮에는 다시 손빠른 일꾼으로 변신했다. 그이가 주인처럼 일해 준 덕에 은화씨는 맘놓고 장을 보고, 새로운 거래처를 트는 데 힘을 쏟을 수 있었다.
일 년쯤 지났을 무렵, 누군가 말을 꺼냈다.
“사장님, 밥이 참 맛있는데, 저기 양항로공업 구내식당 자리, 해볼 생각 없소?”
그녀도 아는 곳이었다. 꽤 큰 회사이고, 번듯한 건물에 숙소도 깨끗하고, 무엇보다 학교가 가까웠다. 막내를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손이 잠시 멈췄다.
규모는 지금의 열 배. 막 근처 대기업 공장의 대규모 공사가 시작되어 도시락 배달도 수년간 큰 벌이가 될 수 있는 기회였다. 좋은 기회인 만큼 권리금 액수가 만만치 않았다.
밤마다 같은 솥 앞에서 밥을 지으며 생각했다. 국자를 저을 때마다 물결이 돌았다.
‘여기서 멈추면 이만큼. 옮기면, 모른다.’
답을 주기로 한 전날 밤, 꿈에 아이들이 나왔다. 낯선 운동장에 서서 두리번 거리는 얼굴. 눈이 마주치자 아이가 웃었다. 새로운 세계가 두려웠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판자집 솥을 떼어내 공장 식당으로 향했고, 짐은 단출했으며 돌아볼 이유는 없었다.
그때 알게 됐다. 일이 사람을 다음 자리로 데려다준다는 것을.
그 길은 늘 혼자 결정해야 했고, 그래서 고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