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집으로 이사온 후 그녀는 하루를 산책으로 시작했다. 누구에게서도 방해 받지 않고 바닷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그녀의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화단과 잔디에 물을 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 동네는 수도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좋다. 지하수는 마음껏 써도 되었으니까. 힘빠진 호스에 물이 차오르자 호스의 근육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대지에 숨을 불어넣는 이 새벽 물주는 시간은 그녀가 하루를 견딜 힘을 얻는 시간이다.
생후 한달된 바둑이 토미가 벌떡 일어나 다리 주위를 맴더니 대문간을 향해 뛰어간다. 택배인가보다. 동생이 서울서 보낸 거다. 뭘 보냈나… 알록달록한 찹쌀떡이다. 찹쌀떡은 예전에 모찌라고 불렀지. 집에서 직접 찹쌀가루를 치대던 감촉이 되살아난다. 산비탈집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떠오른다.
산비탈 골목길에서 리어카를 끌며 세간을 올리던 시절에도, 그녀의 부엌은 늘 활기로 가득했다.
그녀는 배우는 일이 좋았다. 두세 달에 한 번씩 동네 부인들을 집으로 불러 요리 선생님을 모셨다. 새로운 요리 도구와 솜씨를 얻는 것은 작은 사치였지만, 그 속에서 그녀는 삶의 재미와 긍지를 맛보았다.
새로운 튀김기가 들어온 날, 부엌은 한바탕 잔치집처럼 소란스러웠다. 찹쌀 도너츠가 기름솥에서 펑펑 튀어 오르면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도망 다녔다.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부엌에서는 늘 새로운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녀가 가장 진한 기억을 남긴 순간은 찹쌀떡을 만들 때였다.
반장이 된 딸아이 담임에게 무엇을 건네야 할지 한참을 생각했다. 학교 앞에는 포장지에 금빛 리본을 맨 상자들이 오갔다. 그녀는 며칠을 망설이다 찹쌀을 불리고 찌고 치대어 떡을 만들었다. 갓 만든 말랑한 떡에 새하얀 전분 가루를 묻혀, 깨끗한 와이셔츠 박스에 하나씩 차곡차곡 담았다. 비닐 너머로 하얀 떡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살림이든 아이들 일이든 그녀는 늘 그렇게 했다. 방법이 보이지 않으면 하나를 만들어 냈다. 한 해라도 빨리 학교에 보내려고, 3월생인 아이의 생일을 음력으로 적어 일곱 살에 입학시키기도 했다.
어느 겨울날, 시장에서 떨며 고사리를 팔던 할머니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좌판 위에는 아직도 한 바구니 가득 고사리가 남아 있었다. 해가 기울고 있었고 장터의 사람들은 하나둘씩 짐을 걷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서서 고사리를 들춰보더니 말했다.
“이거 남은 거 다 주세요.”
집에 돌아와 광주리를 내려놓자 아이들이 몰려왔다. 산더미처럼 쌓인 고사리를 보고 눈이 둥그래졌다.
“엄마, 이걸 다 먹어?”
그녀는 웃으며 치마폭을 걷어붙였다.
“고사리로 나물도 하고 밥도 해 먹지.”
큰 냄비에 물을 올리고 고사리를 삶았다. 부엌 가득 풋내와 흙내가 섞인 김이 올랐다. 저녁상에는 고소한 고사리밥이 올랐고 아이들은 두 그릇씩 비워냈다.
남은 고사리는 마루에 널었다.
마루에는 길게 늘어선 고사리들이 차분히 자리를 잡았다.
마른 겨울바람이 지나가면 고사리들이 바삭하게 말라 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