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합창단 공연하는 날
나는 몇 년 전부터 아빠의 합창단 공연이 캐나다에서 있을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응원하러 간다.
이번에도 제외는 아니었다.
아빠가 내가 매년 안 가면 나를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고 했기 때문에..... 가기 싫어도 억지로 갈 수밖에 없다.
다만 이번에는 동생이랑 동생이 데리고 온 남자친구, 아빠 친구 목사님, 그리고 그 목사님과 함께 사는 스리랑카 룸메이트까지 함께였다.
엄마는 한국에 가 있어서 같이는 가지 못했다.
아침부터 소피를 산책시키고 케어하느라 분주했다.
점심 겸 저녁은 목사님과 함께 베트남식 쌀국수를 먹기로 하고 출발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스리랑카 룸메이트였다.
약속 시간이 훌쩍 지나도 오지 않았다.
저녁 7시가 공연 시작 시간인데 6시가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나는 속으로 ‘그럼 그렇지, 아빠가 왜 굳이 아무 생각 없이 그 사람에게 티켓을 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6시 25분쯤 되어 우리는 공연장을 향해 출발했다.
차 안에서는 친구 목사님이 룸메이트에게 잔뜩 화가 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다 퍼부어 대는 바람에 나는 오히려 마음이 조금은 편하게 아빠를 보러 갈 수 있었다.
나는 “다음에는 같이 데려오지 말자”라고 아빠 친구 목사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솔직히 나는 늦게 오면 그냥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물론 그건 속으로만 한 생각이었다.
공연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급히 내 자리를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해서, 안내 요원에게 티켓을 보여주며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안내를 받아 무사히 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드디어 아빠의 무대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해서 들어오느라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공연을 봤다.
공연이 끝난 뒤, 아빠를 기다리며 공연장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내가 아는 얼굴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몇몇 사람들은 그다지 반갑지가 않았다.
그 소수의 사람들만 빼면 아마도 나는 아빠가 공연하는 모든 것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아빠가 캐나다에서 목회를 하던 초창기 옛날 열방 교회에 우리 가족이랑 다니던 몇몇 사람들의 자식들이 내 마음에 대 못을 박는 일들이 있었다는 것 때문이다.
그들의 아이들은 내가 그 아이들 만한 나이였을 때 - (그들의 아이들도 나도 어렸을 때)
나를 놀리고, 무시하고, 내 담임 선생님을 비웃고 내 중고등학교를 다른 큰 학교와 비교했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동생에 비해 늘 외톨이였다. 매일매일이 지옥 같았고 그 사람들이 먼저 내 마음속에 비수를 꽂았기 때문에 속상했다.
나는 늘 동생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동생은 친한 친구들이 훨씬 많이 있었으니까.
나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어서 늘 외로웠다.
그래서 동물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키우게 된 이유가 가장 크다.
동물친구들을 진심으로 키워보고 싶다고 마음먹고 말했을 때
우리 가족들 중 아무도 나를 말릴 수가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라면 이미 키우다 포기했을 것 같은 동물을 끝까지 잘 키울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지금도 내 마음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이건 정말 옛날이야기이다.
20년도 족히 넘은 이야기이다.
우리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 오고 난 후 아빠가 막 목회를 시작했을 때부터의 이야기이다.
나는 작년에 아빠가 다시 공연한다고 해서 갔다가 옛날 열방교회를 우리 가족과 함께 다녔을 때 나를 괴롭게 하던 그 부모들의 아이들 중 한 명을 본 적이 있다.
바로 나를 괴롭히던 그 아이다.
그 아이를 보는 순간 화가 내 마음속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와 나는 이 기분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부모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는 “반갑다”라고 말했다. 나한테는 그 아이들 까지 하늘에서 저주받을 만한 사람들이었다.
역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딱 맞았다.
나는 겉으로는 억지로 웃고 있었지만, 속에서는 솔직히 천불이 나고 있었고
내가 그 아이의 부모들을 보는 순간 나는 아빠한테 속아 넘어간 생각뿐이었다.
솔직히 나에겐 그 사람들과 아예 관계를 끊으면 끝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내가 꼭 가야 한다고 하는 바람에
밥을 먹어도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내 마음이 온갖 화난 마음, 속상한 마음, 그들이 나한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는지에 대한 마음들로 가득했다.
그 사람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순간 꽉 막힌 느낌이었다.
그게 바로 내 과거다.
내 과거 속 몇몇 사람들을 지금도 이렇게 마주해야 한다니, 마음속은 이미 곪은 상처투성이였다.
내가 잊고 싶어도, 보고 싶지 않아도, 그 얼굴들을 다시 아빠가 합창단을 하는 공연장에서 다시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가기가 너무나도 싫었다.
내가 왜 아빠를 응원하러 공연장까지 생고생을 해가며 가야 되는지 나는 전혀 알지도 못했다.
나는 나의 나쁜 과거와 얽힌 사람들만 보면 너무나도 불편하고, 엄청나게 화가 나고 속상했다.
내 과거가 뭐가 어때서.....ㅠㅠ
그래도 나는 꾹 참고 있었다.
아빠의 공연이니까, 아빠를 위해서라도 내 마음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아빠와 엄마 아빠 친구 목사님과 내가 아는 다른 몇몇 사람들은 아마 내가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는지, 내가 왜 아빠 합창단을 응원하러 안 가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를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 조용히 그 자리를 버텼다.
하지만 속에서는 소리 없는 울음이 계속 밀려왔다.
나는 그 사람들 때문에 그동안 쌓인 속상하고 화가 난 마음들을 다 걷어내고 풀고 아빠한테 달려가고 싶기도 해서
그 아이들이 나한테 먼저 사과를 하게끔 만든 후
나도 그 아이들과 부모들을 용서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렇게 쉽게 제대로 된 용서를 하고 싶지가 않았던 마음이 훨씬 더 컸다.
말로만 그렇게 용서한다고 했지 내가 진심으로 그들을 용서한다고 했던 게 절대로 아니다.
나한테는 그 사람들이 했던 사과가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들이 나한테 또다시 내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 위해, 장난치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때 느끼고 있던 감정들은 당연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나는 엉망징창으로 묶이고, 옴짝달싹 못하는 내 마음을, 도대체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까 하는 생각들로 가득하다.
그날 공연이 끝난 뒤 집으로 다시 돌아와서는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다음엔 아빠 보러 공연 안 가고
재미있게 놀아야지!"
"아빠는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