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수 Dec 30. 2021

한계는 한 끗 차이

한계는 스스로 짓는 것

"야, 안돼. 네가 그거 한다고 되겠냐?" "뭐, 해봐~ " "너는 되게 욕심이 많다." "그게 진짜 네가 하고 싶었던 거야?"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 봤는데 다 안되더라~"  "너는 너를 너무 모르네~"



이상하다. 나에 대해서 어쩜 그리 잘 아는지. 나를 낳고 키워준 부모보다 아는 체를 한다. 기분이 나쁘면서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겠지.. 그래, 저 사람 말도 틀린 말은 아니야. 내가 걱정돼서 그렇게 말해주는 걸 거야. 그래, 내가 왜 욕심냈지? 옆에서 봐도 안될 거라는 거면, 객관적으로 정말 안된다는 소리일 건데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나의 자존심 문제가 아닌가?라고 나와 협상을 하였다. 세상에나, 정말 나를 위한 말과 진심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들은 오래된 나의 인연이기 때문에, 단순히 그런 이유와 감정 하나로 나를 평가질을 해대는 행위에 대해서 쉽게 용납하고 용서했다. 내가 망가져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오랜 시간 남들의 시선과 의견에 발맞추어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다. 튀지 않으면서 적당히,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살았다. 함구하며 사는 것이 지혜라고 받아들이며,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선 입을 닫고 귀를 열어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똑같은 말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달라진다.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나를 상처 내고 있었다. 나에게 협박과 강요를 일삼아놓고선 남들의 강요과 잣대에도 쉽게 휘둘렸다. 그러니, 어디 가서 인정받을 수가 있겠는가.  나를 지키지 못하면, 그 누구도 지킬 수 없는 것임을.. 뒤늦게 알았다.


그때부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내가 살고자 하는 방향은 어떤 길인가.

내가 실은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어떤 감정에서 자유로움과 행복감을 느끼는 가에 대해 

심도 짙은 질문을 하였다. 


그렇게 깨닫게 된 감정을 이야기해보자면, 하고 싶은 말 은 "사랑의 언어"이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따뜻한 말과 행동을 하고 싶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면.. 주변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간혹 물질적일지라도, 거리낌 없이 부탁할 수 있을 만큼 신뢰가 가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챙겨주며, 그 사람에게 깊은 도움이 되고 싶다. 내가 살고자 하는 방향은, 조금은 어렵고 가파르기도 하며, 가끔은 어두컴컴할지라도 정직하고, 올바른 삶의 태도로 타인에게 피해 끼치지 않는 삶을 살아내고 싶다.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들은, 음~ 마음에 상처가 많은 것은 공감해주고 싶지만, 타인에게 상처가 될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 나의 속도에 발맞춰주지 않고, 자기의 말과 행동이 정답인 것처럼 당연히 따라야 한다는 세뇌 방식에 가까운 표현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은, 나의 말과 행동에 상대방이 피드백이 오는 것을 좋아한다. 공감받고 힘을 낸다던가, 관심을 더 주라고 투정 부리는 것도 좋아한다. 먹고 자는 것은 크게 예민하지 않은 편이기에 주는 대로 먹고, 맛이 없으면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어야지 하면서 흘려버리는 편이다. 나는 어떤 감정에서 자유로움과 행복감을 느끼는가.

불안해하는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서, 깨우치고, 변화하는 것에 행복감과 자유로움을 느낀다. 자기 계발을 통해 나의 삶을 어제보다 좀 더 나은 내일로 변화시켜나가는 것이 지금 현재 느끼는 가장 큰 자유로움과 행복감이다. 나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내일이 두렵지 않고 무섭지 않다는 점은 사고의 전환이 가장 큰 부분이기도 하다.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가족과 친구들 지인들을 지키기 위해 오늘을 성공하는 날로 보내기로 마음을 먹으며, 나의 삶의 큰 척도가 생겼다. 


그렇기에  그간 들어왔던 나의 한계는 내려놓기로 했다. 사실 어쩌면 스스로 그 한계를 인정했기에 휘둘려버렸는지도 모른다. 한계는 한 끗 차이다. 해낼 것이고, 이루어 낼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4장 4절 말씀 아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이라는 시간과 내일이라는 희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혼자서 해냈을 때엔

답도 없고, 날이 갈수록 힘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초월하신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의 말씀의 능력을 날마다 누리게 되며, 누리기만 하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저의 인생을 매우 많이 달라져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주신 이 평안과 자유로움을 누리며, 또 전달하며 주님의 사랑을 널리 알리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해 주세요. 혼자 있는 시간에 아파서 울고 있는 영혼들을 아버지께서 따뜻하게 안아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작가의 이전글 옳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