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찾아 떠나다.
교회.
교회에 대한 기억은 8살때부터다.
엄마가 집사셨다.
엄마는 유독 교회에서 웃는 모습을 많이 보였고,
주일교사로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었다.
질투가 났다.
내 엄만데,
우리 엄만데,
왜 저기서 다른 애를 예뻐하지?
내가 예쁨 받아야 하는데 라는 치기 어린 생각으로 교회를 다녔다.
교회가면 친구들이 있으니까
교회가면 이유없이 예뻐해주니까
교회가면 무슨 행동을 해도 웃어주니까
동생과 손 잡고 놀이터마냥 다녔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은 따뜻한 사람이구나 라는 정도의 기억으로 만족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인생에 고민이라는 게 생기는 중학생이 되었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왜 살아야 할까?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한 깊은 고찰이 시작됨과 동시에
가정의 불화가 짙어졌다.
가정은 끝없이 가난해져갔다.
아무리 힘들어도 교회에서 웃으며 아이들을 돌보던 엄마는 이제 없다.
엄마는 교회를 떠났다.
엄마는 교회를 등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더욱 외로운 삶으로 빠져들어갔다.
잠시라도 여유로운 일요일을 보냈던 엄마는
매일 같이 술을 먹으며,
한참 자라고 있는 우리를 더이상 돌보지 않았다.
엄마에게 더 이상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엄마를 위해서라도 난 더욱 열심히 교회를 다녀야 겠다라고 다짐했다.
엄마를 위해
아빠를 위해
동생을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행복해지지 않는 걸까
왜 갈수록 가난해지는 걸까
왜 결국 부모님은 이혼을 해버린걸까
모든 게 내 잘못이고
모든게 내 탓 같았다.
내가 태어나서 부터 시작된 문제 같았다.
내가 급하게 임신이 되지 않았다면
엄마는 나 때문에 상처를 받으며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지 않았을건데라는 생각이 사로 잡히며
모든 것 들을 다시 돌릴 수 없으니
기도를 열심히 하면
언젠간
아버지께서 내 이야기를 들어 주실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쯤인 걸까.
대체 언제쯤 행복해 질 수 있는 걸까
나의 괴로움과 외로움을 정녕 들어주시지 않는 걸까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서 미움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역시나 부모와도 하나님하고도 행복할 수 없는
마땅히 불행해야 하는 아이라고 치부하고,
나를 지하로 밀어 넣을 뿐이였다.
언제쯤 저라는 인간이
마땅히 행복해도 되는 겁니까
이 불안과 우울과 고통속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습니까.
아버지,
어디에 계시나요.
저 여기 있는데 제가 있는건 알고 계신가요.
혹시라도 저를 잊으신건 아니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