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후진이 없다
“활주로에서 비행기를 ‘후진’시켜 본 적이 있나여?“
인생을 살다 보면 잊지 못할 아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80년대 초반 미국 유학 시절, 오하이오 콜럼버스 공항 활주로 위에서 겪었던 일이 바로 그런 것 같다.
당시 유학생들에게 최고의 인기는 전 세계 저가 항공의 원조인 ‘피플 익스프레스(People Express)’였다.
하지만 서비스가 워낙 투박하고 지연이 잦아, 본인 스스로는 ’ 피플 디프레스(People Depressed, 사람 우울하게 만드는 비행기)’라는 뼈 있는 별칭을 지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오하이오주 칼럼버스에서 뉴욕 라구아디아로 가기 위해 한번은 그 비행기에 몸을 실은 적이 있다.
저렴한 티켓을 구했다는 뿌듯함도 잠시,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서서히 움직이던 순간, 피가 차갑게 식었다.
“아차, 지갑을 주차장 차 안에 두고 왔다!”
당시엔 피플 익스프레스는 기내에서 요금을 현금으로 직접 걷던 시절이라, 지갑이 없다는 건 단순한 실수를 넘어선 참사였다.
당황한, 간절한 호소에 비행기는 기적적으로 활주로에서 탑승구로 되돌아가는 ‘역주행’을 감행했다.
덕분에 지갑은 찾았지만, 수백 명의 눈총을 받으며 내려야 했던 그날의 민망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묵직한 질문으로 남는다.
이를 통해 스스로 통찰한 것은 “‘의도하지 않은 실수’도 결국은 실책이고, 스스로의 책임이다”다.
우리는 흔히 나쁜 의도가 없었거나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을 ‘실수’라는 단어 뒤로 숨기곤 한다.
하지만 그날 활주로 위에서 깨달은 것은, 의도하지 않은 실수조차 온전히 본인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라는 엄중한 사실이었던 것이다.
부주의로 인해 멈춰 선 거대한 비행기, 그리고 수많은 승객이 허비해야 했던 시간들. "몰랐다"거나 "깜빡했다"는 변명은 벌어진 결과 앞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준비되지 않은 자의 실수는 본인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유무형의 비용을 발생시키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겨 난 것 같다.
유비무환은 단순히 개인의 편의를 위한 지혜가 아니라, 타인과 사회를 향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책임감인 것이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생 비행기에는 ‘후진 기어’가 없다. “이다.
콜럼버스 공항의 비행기는 운 좋게도 당황한 한 아시아의 유학생을 위해 뒤로 돌아가 주었지만, 우리 인생이라는 시간의 비행기에는 후진 기어가 없음을 깊이 새겨야 해서다.
한 번 이륙하면, 우리는 좋든 싫든 각자의 목적지까지 날아가야만 한다.
여정의 끝에서야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무엇을 준비하며 살아왔는가?” 그때 가서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가장 중요한 걸 빠뜨렸어요”라고 말할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음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자는 얘기다.
삶을 대하는 진지함, 사람을 대하는 성실함,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꺼내 쓸 내면의 실력.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인생의 주차장에 결코 두고 오지 말아야 할 ‘진짜 지갑’이며, 우리 삶을 지탱하는 본질들임을 각인하자.
책임 있는 준비가 ‘비행’의 질을 결정함도 잊어서는 안 된다.
철저한 준비가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자유와 여유는 자기 삶을 온전히 책임지려는 준비된 자세에서 나옴을 늘 상기하자.
지갑을 완벽히 챙긴 여행자가 비행기 창밖의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듯, 삶의 본질을 잘 준비한 사람은 예기치 못한 난기류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어서다.
준비란 단순히 사고를 막기 위한 방어벽이 아니라, 내 삶의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 인생을 책임지고 충실히 가꾸어 왔다"라고 당당히 말하기 위한 증명 이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