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신중돈, 부천의 그 고깃집도 신중돈

DKNY JD: 독거노인이 마주한 ‘신중돈’이라는 기묘한 인연

by DKNY JD

“두 명의 신중돈: 문장(의) 맛과 인생의 멋”


- 자연인 신중돈(愼重敦)과 부천 맛집 신중돈(新中豚)의 기막힌 조우


세상에 흔치 않은 이름이 있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고, 그 이름 석 자에 담긴 무게감이 예사롭지 않은 이름.


나에게 ’ 신중돈(愼重敦)’이라는 이름이 그렇다.


삼갈 신(愼), 무거울 중(重), 도타울 돈(敦).


이름 석 자에 담긴 의미대로 늘 신중하고 두터운 삶을 살고자 노력해 왔다.


사람들은 나를 영문 약자인 ‘JD’로 부르곤 한다. 꽤 세련된 뉴욕의 향기가 나는 이름 같지만, 나의 필명은 조금 더 발칙하다. 바로 ‘DKNY JD’다.


뉴욕 특파원 시절 익숙했던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 ’ 도나 카란 뉴욕(Donna Karan New York)'을 떠올리며 누군가는 그럴싸한 동경을 품을지 모르겠으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


여기서 DKNY는 다름 아닌 ‘독거노인(Dok-Geo-No-Yn)’의 약자다.


스스로를 낮추어 부르는 이 자조 섞인 농담 속에는, 먼저 보낸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는 마음이 둥지를 틀고 있다. 오죽하면 독거노인으로 남겨 놓고 먼저 갔을 까?


화려한 이면 뒤에 숨겨진 담백한 애절함이 배어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 뉴욕 특파원등 언론인 생활을 거친 후, 국회 홍보기획관, 그리고 국무총리 대변인을 지냈다.


세상의 여론을 갈무리하고 문장의 속살을 발라내던 정통 글쟁이로 나를 높이 치켜세우는 고마운 이들도 많지만, 지금의 나는 그저 게재 처가 있든 없든 글 한 편을 쓰는 시간이 마냥 행복한 ‘독거노인 JD’ 일뿐이다.


내 이름의 울림은 늘 그렇게 신중하고도 두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경기도 부천 신중동역 근처를 지나다 눈을 의심케 하는 간판 하나를 만났다.


식당 이름이 다름 아닌 ‘신중돈’이다.


처음엔 동명이인의 등장이 그저 반가웠고, 그다음엔 주인장의 재치에 웃음이 터졌다.


아마도 그곳은 ’ 신중동(新中洞)’이라는 지명에 돼지 ‘돈(豚)’자를 붙여 ’ 신중돈(新中豚)’이라 이름 지었을 터다.


하지만 나는 그 간판 아래서 묘한 운명의 공통분모를 발견한다.


글쟁이 신중돈(愼重敦)이 뉴욕의 차가운 지성과 국정의 엄중함을 정제된 문장으로 구워냈다면, 부천의 신중돈(新中豚)은 뜨거운 불판 위에서 인생의 허기를 달래줄 고기 한 점을 구워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서다.


한 명은 ‘말의 비계’를 걷어내고 진실의 살코기만을 세상에 내놓았고, 또 한 명은 ‘고기의 육즙’을 가두어 손님의 고단한 하루를 위로하지 않나 싶다.


분야는 다르되,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정직한 ‘맛’을 선보인다는 점에서는 영락없는 닮은 꼴이다.


생각해 보면 좋은 글과 좋은 고기는 그 이치가 같다.


너무 서두르면 속이 익지 않고, 너무 뜸을 들이면 육질이 질겨진다.


글쟁이 신중돈이 문장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 밤새 원고와 씨름했듯, 식당 신중돈의 주인장도 불판의 온도를 신중하게 체크했을 것이다.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라지만, 그 안에는 이름 석 자를 부끄럽지 않게 하겠다는 장인 정신이 고스란히 서려 있다.


나는 이제 부천의 그 식당에 앉아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또 다른 나를 떠올리는 상상에 잠긴다.


글을 통해 삶의 무늬를 기록하는 JD의 글 한 편을 정성스레 다듬고, 안주로 노릇하게 익어가는 식당 신중돈의 고기 한 점을 씹는다.


눈으로는 문장의 향기를 맡고, 입으로는 고기의 풍미를 즐기는 이 순간, 세상은 비로소 참 맛깔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름이 같다는 것은 어쩌면 같은 운명의 궤적을 공유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한 명은 세상의 소음을 잠재우는 절제된 문장으로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을 쓰고, 다른 한 명은 무심한 듯 달인의 경지에서 고기를 뒤집는 ‘노 룩(No-look, 보지 않고도 척척 해내는)’ 솜씨로 세상의 시름을 잊게 한다.


부천 신중동역 근처에서 만난 기분 좋은 인연 덕분에, 요즘 나의 저녁 식탁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愼重)해졌으며 나의 글 메뉴 또한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해졌다는 기분이다. 행복하다 가 딱 맞는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항공사 피플 익스프레스아니 피플 디프레스트가 주는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