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머니의 침묵과 노 룩의 배짱: 우리네 정치는 무엇을 임고 있는 건가
최근 패션계와 사회 전반을 휩쓰는 키워드는 ’ 올드 머니(Old Money,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부)‘다.
이는 화려한 로고로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는 ‘졸부(New Money)’와 달리, 소재의 본질에 집중하며 로고를 숨기는 태도를 말한다.
여기서 파생된 진정한 품격의 정점이 바로 ’노 룩(No Look, 상표를 드러내지 않음)’의 미학이다.
진정한 부자는 굳이 상표를 노출하지 않는다. 그가 입은 옷의 질감과 태도만으로도 이미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모든 것이 설명되기 때문이다.
“돈은 떠들고, 부는 속삭인다”는 말처럼, 부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이미 몸에 밴 공기 같은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 정치라는 무대 위에서 이 ‘노 룩’의 품격은 처참하게 실종되었다.
최근 여권 내에서 벌어지는 ‘한동훈 제명’ 논란은 ‘올드 머니’의 본질은 놓친 채 껍데기에만 집착하는 우리 정치의 파산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치적 내실을 다지기보다 ‘제명’이나 ‘축출’ 같은 자극적인 상표(로고)를 내세워 자신의 선명성을 증명하려 애쓰는 모습은, 내면의 빈곤을 명품 로고로 세탁하려는 졸부의 조급함과 닮아 있다.
정치의 명품은 ‘당적’이나 ‘계파’라는 상표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상표를 철저히 가리고도(No Look)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정책과 철학에서 완성된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국민’이라는 본질보다 ‘누가 더 센 로고를 달았는가’라는 전광판을 힐끗거리느라 정작 가야 할 길을 잃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말처럼, 내실 없는 권력투쟁은 결국 정치 전체의 격을 떨어뜨릴 뿐이다.
한동훈이라는 개인의 축출 여부가 국정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타인의 눈에 띄고 싶어 안달 난 이들이 만들어낸 ‘허영의 소음’ 일뿐이다.
진정한 실력자라면 낡은 면바지를 입고도 타인의 평가를 ‘노 룩’하며 제 길을 가야 한다.
남들이 알아봐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은 도리어 자신의 정치적 결핍을 광고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매직 존슨의 ‘노 룩 패스’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수비수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동료에게 정확히 공을 배급하는 ‘노 룩 패스’처럼, 정치인 역시 진영 논리라는 뻔한 상표를 가릴 때 비로소 세상의 편견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상대의 시선을 기만하며 승리를 쟁취하듯, 정치 역시 진영 논리라는 뻔한 상표를 가릴 때 비로소 세상의 편견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지금 우리 정치는 거울 앞에서 자문해야 한다. “상표라는 가짜 권위에 숨어,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지는 않은가?”
명품이 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품이 내가 걸친 것을 빛나게 하는 법이다.
정치권이 올드 머니의 침묵을 배우고, 권력의 상표를 ‘노 룩’ 할 수 있는 배짱을 가질 때 정치는 비로소 예술이 된다.
내가 나 자신으로 충분히 단단해질 때, 우리는 브랜드의 노예가 아닌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비싼 ’ 진짜 명품 정치’로 가는 길이다. 반드시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