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화해는 많이 닮아 있다.
사과는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그것도 온 진심을 다 해서...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 말기 암 환자가 된 상연은 10년 만에 나타나서 은중에게 사과를 한다. 곧 죽는다니까 이제 와서? 은중에게는 상연은 그야말로 않은 나쁜 년이다. 과거 남자친구와 관계를 훼방 놓았었고 은중의 프로젝트를 훔쳐가서 성공했다. 내가 은중이었다면 잊고 살고 싶은데 죽기 직전에 나타나서 갑자기 사과하는 것은 끝까지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극 중 은중도 상연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 일 잘되고 안 아플 때 내 생각했어?
"네가 잘 나가고 빌딩 살 때도 나한테 미안했어?"
"늦었다는 생각 안 드니? 사과를 하려면 그때 했어야지."
만약 상연이 상황이 너무 절박해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고 그 당시에 진심으로 사과 했으면 어땠을까? 긴 시간 우정을 나누었고 친구를 사랑했던 은중은 아마 상연을 그때 용서했었을 것이다.
나는 은중에게 감정이입하고 있었다.
나도 너무 좋아했고 믿었던 친구에게 그저 솔직한 마음을 듣고 싶었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그렇게만 했었더라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고 사실 나는 피해자 주제에 친구를 위로하고 싶었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말이 없고 솔직하지 않으니 위로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다. 그렇게 위로도 용서도 못 한 괴로운 감정은 미움이 되었다.
우정은 참 하찮은 것이었다. 아니 우리의 우정이 참 하찮았다. 그 하찮은 우정 때문에 슬퍼하고 힘들었던 내가 하찮았다.
사과는 사과를 받는 사람이 아직은 그 사람에 대한 아끼는 마음이 남아 있을 때만 할 수 있다. 사과를 하는 사람이 원하는 때 하는 사과는 폭력이다. 화해도 사랑처럼 쌍방 통행이라 일방적인 사과는 사랑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 없다.
드라마에서는 드라마니까, 은중은 상연의 사과를 받아준다. 상연은 어릴 때부터 은중에게 느껴왔던 자격지심과 박탈감을 솔직하게 쓴 글을 은중에게 보여준다. 상연은 솔직했고 진심을 다 해 사과했다. 그리고 은중은 아직 그런 상연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용서와 화해가 가능했다.
늦은 사과에는 많은 노력이 들어가고
어쩔 수 없을 때 하는 사과는 힘이 없다.
물론 끝까지 본인의 잘못을 모르거나 혹은 인정하지 않는 애초에 그냥 질이 나쁜 인간,
본인의 과오를 마주하고 용서를 구할 용기조차 없는 비겁한 인간보다는 백번 낫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