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살기 종료

비워내기

by 쑴이

2025년 5월 14일 ~ 2025년 12월 12일까지, 나의 지난 7개월은 여행이었다.

집도 회사도 없이 떠도는 기분은 어떨까 궁금했었다.

한 달 후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생활이었다. 당장 내일모레 어디에 있을지 결정되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마냥 신나고 즐거웠고 중반즈음에는 울적한 날도 있었고 막판에는 짐을 싸고 풀고 돌아다니는 생활에 지쳤었다.


한 달 넘게 보낸 산티아고 순례길과 유럽은 12kg 배낭 하나로

제주도, 여의도와 상도동까지는 기내용 1개와 27인치 1개, 이렇게 두 개 캐리어로 다녔다.

마지막으로 지리산과 공덕동, 제기동은 기내용 캐리어 하나를 더 추가해서 차에 작은 짐들과 함께 싣고 다녔다. 중간에 날씨가 추워져서 어쩔 수 없이 짐이 좀 더 늘었다고 생각했지만 가지고 다녔던 짐을 다 꺼내 쓰지 않았으므로 사실 캐리어 2개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나름 미니멀리즘 생활을 하다 보니 마침내 6개월 넘게 이삿짐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나의 짐들을 풀었을 때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짐을 싸면서 이미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운동복류만 해서도 서랍장 몇 칸을 차지했다.

SNS 광고에 현혹되어 샀던 물건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그 사이에 유통기간이 지난 인스턴트 음식과 영양제들, 여행에서 기념품으로 사 왔는데 타이밍을 놓쳐 주지 못해 가지고 있던 것들, 쓰지 않는 문구류, 수년 째 입지 않는 옷들...


광고에 혹해서 샀다가 한두 번 쓰고 쟁여 놓았던 물건들은 앞으로 쓰면 된다는 명목으로,

비싸게 샀던 물건들은 버리기는 아깝고 중고거래는 귀찮다고 어쩌지 못하고 창고에 내내 보관되어 있다가 여기까지 따라와서 다시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번에는 기부물품 상자와 50리터 쓰레기 봉지에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냈다. 그중에는 한때는 소중했고 내가 좋아했던 물건들도 있었다. 이번에 과감히 떠나보내기로 결정한 것도 있고, 불필요하긴 해도 아직은 정을 뗄 수 없어 미쳐 놓지 못하는 것도 있긴 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최근 몇 년은 사람들과 잘 만나지도 않았고 연락을 자주 하고 있지 않았다. 더욱이 지난 7개월은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그래서 연락하는 사람들하고만 연락했다. 그것도 충분했다.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줄어서 마음이 편안했다.


제주도에서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고 나서부터는 재취업을 위해 평소 잘 사용하지 않던 링크드인을 거의 매일 접속했는데 나를 검색한 사람들 리스트에는 취업에 필요한 사람들이 아닌, 예전 회사사람들의 불필요한 검색이 너무 많았다.

회사 다닐 때도 거의 교류가 없었고 안부를 물을 사이도 아닌 사람들이 그저 호기심에,

아니면 그냥 안부를 물을 겸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도 될 사람들이지만 연락은 따로 하지 않으면서 클릭 몇 번으로 편하게 정기적으로 나를 체크하고 있는 사람들,

그것도 아니면 직접 연락하는 것이 껄끄러운 관계인데 어디에 취직하나 궁금은 해서 몰래 보고 있는 사람들,


사실 그 사이트의 목적과 기능이 그것이기도 하고 별거 아닌 일이긴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보는 게 내내 조금 거북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책상 정리를 하면서 링크드인 계정을 비활성화했다.


나는 이제 나의 공간과 마음에 쉽게 물건과 사람을 들여놓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짐을 싸고 풀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배운 것은 '비움'이다.

비움의 기본은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것인데 그 결정을 힘들게 하는 것은 '추억'이다. 이제 더 이상 필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데 물건에 깃든 추억, 그 사람들과 나눴던 시간들이 마음을 약하게 만든다. 비우고 정리하면서 깨달았다. 추억은 과거이고 그 시간은 내 마음에 남기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앞으로 나에게 필요한 것들과 미래 인연들을 위한 공간은 비워두어야 한다.


앞으로 나는 또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울 것인가.

이삿짐은 거의 정리가 되었지만 50리터 종량제 쓰레기 봉지는 여전히 버릴 것들로 채워지고 있는 중이다.




제주도: 2025년 7월 1일 ~ 8월 2일

걱정 없이 마냥 즐겁던 제주도 생활
매일 바다를 보고 일어나고 바다를 보면서 잠들었다.

여의도: 2025년 8월 5일 ~ 8월 31일

꽁냥 꽁냥 맛있는 거 해 먹으면서 지인집에 살았던 때

상도동: 2025년 8월 31일 ~ 9월 26일

낯설었던 주택 생활,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다산동: 2025년 9월 26일 ~ 10월 19일

장기 여행 간 친구네 집에서 친구네 냥이와의 동거 생활
남산도 있고 산책로도 있어 걷기만으로도 운동이 되는 동네였다.

지리산(남원): 2025년 10월 19일 ~ 11월 15일

잊지 못할 시골 생활
직접 빚어 먹은 손만두
동네 한 바퀴, 참 좋은 계절에 다녀왔다.


안녕, 변화무쌍했던 나의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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