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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night Oct 21. 2023

작가의 말

2016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교육학과의 친구, 동료들과 조촐하게 파티를 했다. 산타에게 선물도 받고 사진도 찍었다. 박사과정 친구 M이 한 시간 전에 산타 옷을 주워 입고 얼굴에 흰 수염을 붙이는 걸 몰래 목격했고, 선물은 각자 5유로 정도 되는 물건을 미리 들고 와 산타의 선물 주머니에 넣어 둔 걸 다시 산타가 나눠준 것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인생은 다소 유치한 이벤트 덕분에 재미와 의미를 더하는 것을. 이번 크리스마스 휴가 때 한국에 가면 뭘 할 거냐고 친구들이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나는, 요즘 한국 사람들은 주말이면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른다고 말해주었다. 핀란드 친구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크리스마스 연휴에는 산타와 루돌프를 제외한 모든 이가 휴무에 들어가고, 크리스마스이브 오후부터는 대중교통마저 끊겨 거리엔 정적이 감돌고,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과 사우나를 즐기는 나라의 사람들에겐 실로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며칠 후 한국에 도착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광화문 광장에서 보냈다. 아무리 경력이 많은 산타라도 혼자서는 그 밤 거기 모인 모두에게 도저히 선물을 다 나눠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북악산 골짜기에서 불어온 겨울바람이 16차선 대로에 그대로 밀려들어왔다. 바람이 패딩과 핫팩으로 중무장을 한 틈을 비집고 들어와 살을 에이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포커페이스의 얼굴을 한 채 입을 굳게 다물고만 있는 정부종합청사 건물 벽에다가 ‘조기 퇴진’과 같은 문구를 빔으로 쏘았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도 불렀다.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 공화국의 시민 일부는 헌법재판소로, 나를 포함한 다른 일부는 경복궁 왼쪽 담을 끼고돌아 효자동과 청와대 쪽으로 행진했다. 그렇지만 경찰이 친 차벽과 바리케이드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갈 순 없었다.

     

2021년. 사람 일은 모를 일이다. 어쩌다 보니 오 년 전 광화문 광장에서 겨울바람에 오들오들 떨며 올려다보았던 그 회색빛 청사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광화문 근처에 거처를 마련했다. 당시 내가 일하던 교육기관에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광장을 열어 2022년에 개정될 새 교육과정에 반영할 시민들의 의견을 받고 있었다. 나는 의견을 모아 교육과정 개정작업을 총괄하는 교육부에 전달하기 위한 작업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토론회를 며칠 앞둔 밤, 야식 파티를 즐기기 위해 집요하게 달려드는 모기에게 살을 뜯겨가며 시민들의 의견을 읽었다. 의견들 중에는 ‘00 교육을 간소화해서 학교와 교사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실천할 수 있게 숨통을 터 주어야 한다는 것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이 불거지거나 비극적인 사건이 터질 때마다 00 교육을 수립하여 실시하라는 지시가 일선 학교에 내려온다. 그러면 교사들은 모두 합쳐 일 년에 수십 번이 넘는 00 교육들을 이미 학습량을 기준으로 고도비만에 해당하는 교과 진도표 사이 어딘가에 비집어 넣고, 그것들을 실시하고 보고하느라 용을 쓴다. 00 교육을 의무적으로 설정해서 교육계획 문서를 각종 교육이 고개를 내밀고 인정투쟁을 벌이는 각축장으로 만들지 말고, 교사들이 이미 존재하는 교육과정 속에서 민주시민을 기르는 데 필요한 내용을 가르칠 수 있도록 자율성을 인정해 달라는 의견이 많았다. 주말 저녁, 밥을 먹고 운동복 차림으로 경복궁 돌담을 돌다가 광화문 앞에서 송곳니를 드러낸 채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해태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학교는 00 교육으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건강한 부분과 병적인 부분을 그대로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아닐까.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의 일원으로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고 있는 걸까. 우리의 학교는 무탈하게 잘 있는 걸까. 

     

2023년 7월 18일. 방학을 며칠 앞둔 여름날, 한 선생님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매일 폭염을 경고하는 재난문자가 날아드는 날씨에 교사들은 검은 옷을 입고 광장에 모였다. 얌전하게 시키는 대로 하는 집단으로 알려진 교사들이 주말마다 광장에 모여 죽은 동료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이례적인 현상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과연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하고 말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한 때 학생이었고, 지금은 학부모이거나 교육세를 납부하는 시민이며, 학생 또는 교사의 가족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카이캐슬이나 더글로리 같이 대중매체가 주목하는 자극적인 소재를 빼고 나면 막상 그곳의 일상에 대해 얼마나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부모라는 이름의 특수노동자가 아이를 경쟁에서 생존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갖게 되는 양육 불안과 욕망을 담임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특수노동자에게 민원과 소송이라는 이름으로 표출하는 상황이다. 시민과 시민이 서로 환대하고 연대하는 관계로 만나야 할 공적 장소에서마저 갑을관계와 감정노동으로 대표되는 시장의 권력질서가 스며들면서 상대에게 갑으로 군림하여 위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교사와 학생, 보호자(학부모)가 위태로운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동안 공교육을 지원하고 보살펴야 할 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학생인권조례 탓을 하거나 학생이나 학부모 또는 교사 개인의 문제로 돌리면서 또 한편으로는 학령인구 감소라는 경제논리를 앞세워 교사 정원과 교육예산을 줄이려고만 하고 있진 않은가. 


핀란드와 한국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여전히 시차 적응 중이다. 아이들이 부모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의해 차별받지 않고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교육복지의 최전선이 되겠다는 학교의 포부와 교사들이 돌봄 서비스를 독박으로 제공하는 고객 응대 노동자로 변해버린 학교의 현실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현기증을 느낀다. 오랜만에 돌아온 학교는 여러모로 더욱 안 좋은 쪽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과 묵직한 공기를 시원하게 가르는 돌고래 웃음소리, 동료 선생님들의 빛나는 실천, 그리고 부모님들의 든든한 응원과 협력이 여전히 멸종되지 않고 남아 있다. 무엇보다 거의 모든 인간관계가 자본의 증식과 이해관계를 위해 기능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는 개인이 돈을 직접 내는 소비자로 행동하는 사적 기관이 아니라 시민으로 참여하는 공적 장소이다. 또, 돈벌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인간사회와 지구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다. 어느 순간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를 뛰어넘어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고 함께 성장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정말 몇 안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세 번의 광장을 경험하며 한 사회의 학교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학교교육이란 누구나 누려야 할 필수 공공재이며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건강상태를 알려주는 지표 생물인 것 같다. 그래서 아는 것도 경험한 것도 부족한 내가 복지와 민주주의 얘기까지 하게 되었다. 핀란드 사람들은 나에게 ‘너무 늦게 왔어. 우린 이미 신자유주의 물을 많이 먹었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복지국가의 물맛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던 내가 어쩌다 보니 석사공부를 하고 현장에 복귀했다가 다시 박사과정을 마치기까지 삼십 대의 전부를 핀란드와 한국 사이를 오가며 보낸 이야기, 그리고 다시 교사로 돌아와 보고 겪은 학교 이야기를 당신에게 조곤조곤 들려드리고 싶었다. 민주적인 사회의 시민으로 살아가려는 열망을 지닌 당신에게. 여러 해에 걸쳐 쓴 이야기라서 부족한 점도 많다. 한 인간의 성장일기라고 받아들이시고 너그럽게 읽어주셨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이 책을 쓰는데 영감을 주고 도움 주신 분들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꼭 언급하고 싶다. 이 책의 1, 2, 3부에서 편지의 수신인으로 등장하는 두 친구에게 특별히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대상을 감각하는 생활이 좋은 자극이 될 수도 있지만 자칫 외로움에 빠질 수 있기에 먼저 편지 쓰기를 제안해 주신 선생님, 연구실 복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한국인 타자를 환대하며 왕성한 호기심으로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뉴스를 찾아 읽고 비교문화를 주제로 수다를 나눠 준 A, 두 사람의 우정이 있어서 버거운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쓸 수 있었다. 스마트폰만 켜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실시간으로 대화가 가능한 시대지만 일부러 온라인 거리 두기를 실시한 채 모니터 반대편에 앉은 친구를 상상하며 편지로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반가움, 고마움이 가득 차오르곤 했다. 그리고 이 책의 소재가 된 여러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준 핀란드와 한국 사회에 늘 고마운 마음이다. 두 사회를 오가는 과정에서 문화적 충격과 역충격을 경험하면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사춘기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한 감정도 느껴보고 나의 편협한 세계를 조금이나마 확장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은 한국에서 교사로 일했던 경험, 핀란드에서 학생이자 연구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경험, 그리고 다시 한국에서 교사로 돌아와 정신없이 맞닥뜨린 학교생활 속에서 그동안 배운 것들을 떠올린 경험을 가지고 쓴 것이라서 두 사회와 함께 썼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유학생의 신분으로도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무사하게 유학생활을 보낼 수 있게 해 준 공공복지 덕택에 4부에 실린 글들을 쓸 수 있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사회문화적 충격과 이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긴장되고 설렌다. 


2023년 가을, 

starry night


* 커버 사진 ⓒ starry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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