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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night Jun 27. 2023

슈뢰딩거의 아이들이 보일 수 있도록

2023. 6. 26

작품: 슈뢰딩거의 아이들 / 최의택 / 아작

출처: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846646


장면 1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당연히 자가용도 없다. 무엇보다 4년마다 임지를 옮겨 다녀야 하는 공립학교의 교사에게 자기 소유의 자동차가 없다는 건 꽤나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어느 날, 고속도로를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지인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면허도 빨리 따고 시내 운전용으로 조그만 거라도 하나 사라. 요즘 니 나이에 차 안 몰고 다니면 장애인이라 카드라.” 


그날부터 나는 ‘장애인’이 되었다. 소아마비 같은 장애가 있으면서 자가용을 운전하는 많은 사람들도 동시에 의문의 1패를 당했다. 한국에서 전용 이동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건 휠체어를 타는 신체 장애인들처럼 이동권이 제한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일 테니 아주 틀린(?) 비유는 아니었다. 지인의 한마디 말은 나의 대꾸나 반박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어색한 공기 속에 사그라져버렸지만, 그날을 계기로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거나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장면 2

2022년 3월 출근길.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 역사에 진입해서 시위를 벌였다.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는 이를 두고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 ‘억울함과 관심을 호소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지하철을 점거해서 최대 다수의 불편에 의존하는 사회가 문명인가.’라고 말했다.* 그는 집 밖을 나서는 것 자체가 투쟁인 교통약자들의 이동권과 각자의 사연을 짊어진 채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고 지체 없이 달려가야만 하는 또 다른 약자들의 이동권이 조우하는 지하철에서 벌어진 시위 풍경을 한쪽이 한쪽의 희생을 볼모로 잡은 인질극에 비유했다.  


장면 3 

언젠가부터 한국 문학과 드라마, 영화에서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출산 후 노동시장에서 거부당한 여성으로, 다리가 불편한 선생님으로, 자폐증세가 있는 변호사로,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콜센터 실습생으로.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매력적인 서사의 주인공으로 여겨지지 않던 이들이 서사의 중심으로 대거 등장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그렇다면 신체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도 나와 있지 않을까.  그러던 차에 발견한 소설이 바로 ‘슈뢰딩거의 아이들’이다.  


가상현실 속 학교, 증강현실용 고글을 끼고 펼치는 혼합현실 게임이라는 배경, 나 같은 SF 잘알못들도 느낄 수 있는 간지 나는 SF스러움, 그 속에서 ‘장애’나 ‘소외’ 같은 묵직한 주제를 그리면서도 그것이 소설 속 인물들의 정체성 전체를 집어삼키지 않고 그들의 일상이나 행동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한 점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완전 슈뢰딩거의 아이들이야. 가상현실이라는 미시 세계에서 확률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88쪽)

2050년이라는 가까운 미래와 가상현실 중고등학교인 ‘학당’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사고실험에서 착안한 ‘슈뢰딩거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에는 다양한 유형의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자폐증이 있는 하랑,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한 건이, 그리고 듣지 못하는 시현의 엄마. 

“알아. 지금 여기 우리 있다는 걸 왜 증명해야 하지? 답답해. 속 터져. 그런데 때로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단지 그 이유로 해야 하는 게 있어. 존재의 증명? 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지워져. 그러니까 억울해도 해야 해.” (209쪽)

20년이 넘도록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시위를 벌인 사람들은 세상을 조금은 바꾸어 놓았다. 지하철엔 엘리베이터가 생겼고, 시내버스의 일부가 저상버스로 바뀌었고, 대중교통엔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런데 정작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길거리에서도, 공연장에서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현재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등록된 사람이 265만 명이라고 한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장면 4

“이거(의족) 달기 전까지 휠체어 타고 지냈거든. 그거 타는 순간 세상이 높아져. 나만 빼고 모든 게 저 위에 있는 느낌이야.” (231쪽)

휠체어가 아니더라도 짐가방이나 유아차, 보행기를 끌고 버스에 올라보면 저 말의 뜻을 몸의 근육이 먼저 알아차리게 된다. 보도블록에서 버스 바닥까지 높이가 십 센티만 넘어도 버스 안은 범접하기 힘든 높은 세상이 된다. 핀란드에서 사는 동안 나는 늘 저상버스를 탔다. 모든 시내버스가 저상버스였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시내에 가서 마트 두 곳과 아시아 식료품점 한 곳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가장 저렴한 가격에 골라 담고 나면 준비해 온 장바구니 두 개가 꽉 찼다. 그걸 들고 버스에 탔다. 공항을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택시는 나 같은 유학생에게 사치재였기 때문에 짐가방과 함께 버스를 탔다. 보도블록에서 버스 바닥까지 5센티미터 정도 차이가 났는데, 몸의 반동을 이용하면 그리 힘들지 않게 짐가방을 버스에 실을 수 있었다. 휠체어에 탄 승객들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항상 중간문을 이용해서 오르고 내렸다. 중간문이 있는 버스 바닥에는 수동으로 조작하는 휠체어 경사로가 장착되어 있었는데 운전기사님이 내려서 펼치고 접기도 하고, 어떨 땐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해주기도 했다. 전동 리프트에 비해 설치비용도 저렴하고 고장 날 일도 거의 없는데다가 고리를 잡고 들어 올려 인도에 내려놓기만 하면 끝일 정도로 사용법이 간단해 보였다. 내가 살았던 뚜르꾸시에서는 시내버스로 대부분 SCANIA 사에서 만든 시티와이드 모델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한국의 시내버스보다 1.5배 정도 긴 차체에 문도 앞, 중간, 뒤쪽에 모두 세 개가 달려있었다. 버스 문 또한 바깥쪽으로 열리게 되어 있어 문 근처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승객들이 안쪽으로 열리는 문에 부딪힐 염려가 없어 더 안전해 보였다. 겨울철 눈발이 날리는 도로에서 그 육중한 덩치로 유연하게 코너를 도는 모습은 기술점수와 예술점수 모두 10점 만점을 주어도 될 만큼 멋졌다. 저상버스에 들어가 앉으면 조금 과장을 보태 시O스 침대에 올라탄 것 같은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짐가방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면 버스 중간쯤에 나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유아차 사람, 휠체어 사람, 보행기 사람, 그리고 나 같은 짐가방 사람까지 중간칸은 늘 뭔가를 달고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핀란드 뚜르꾸 시내버스를 애용하는 유아차 승객들.  ⓒ starry night


핀란드 뚜르꾸 시내버스의 안과 바깥. 버스 바닥에 휠체어 경사로가 보인다. ⓒ starry night

면 5 

“결국 소수와 다수라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계가 허물어지기 쉬운, 그래서 언제든지 입장이 뒤바뀔 수 있는.”
“하지만 그래도 장애인이 다수가 되진 않아. 핵전쟁이라도 나서 죄다 기형이 되지 않는 한.” (227쪽)

2050년을 살고 있는 시현과 수리가 나누는 대화이다. ‘핵전쟁이라도 나서 죄다 기형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2050년 비장애인들은 여전히 ‘다수 정상인’의 지위를 누리며 살고 있을까? 아니면 신체증강인(유전자 편집을 통해 유전적 결함을 제거하여 신체적으로 강화된 인간), 인공지능 증강인(인간의 뇌에 칩을 넣는 식으로 인공지능기술을 통해 지적 능력이 강화된 인간), 기계인(자의식을 지닌 AI로봇)과 같은 신인류의 등장 속에서 결함 많은 ‘자연인’으로 전락한 채 살아가고 있을까.*** 미래를 단언하긴 힘들지만, 혁신적인 신체 업그레이드와 노화방지에 투자할 재력이 되는 소수의 인류 외에는 누구나 늙을 것이지만 빨리 죽을 수도 없으며, 크고 가벼운 장애를 지닌 몸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프거나 불편하거나 느린 몸들이 충분히 접근할 수 있도록 더욱 세심하게 설계된 대중교통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소수와 약자들이 집콕하거나 출근 시간 지하철에서 존재를 절박하게 증명해 보이는 부조리극에 출연하도록 등 떠미는 사회가 다름 아닌 ‘야만’이다. 


2023년 6월 퇴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잠시 눈을 감는다. 2050년 근미래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본다. 오늘도 휠체어 사람들은 게임에 접속할 아이디를 받지 못한 걸까. 휠체어가 보이지 않는다. 휠체어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일터에 가고, 기차와 고속버스로 놀러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짐가방 사람, 보행기 사람, 유아차 사람이 대중교통만으로도 존엄하게 일상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SF가 아닌 현실 속에서라면 좋겠다.


* 장나래, 오연서, 박지영. 2022. 장애인 이동권 마저 ‘혐오’ 덧씌운 이준석의 정치. 한겨레. 2023년 6월 13일 접속.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36451.html

** 보건복지부. 2023. 2022년 장애인 등록 현황. 2023.6.27 접속. https://www.mohw.go.kr/react/jb/sjb030301vw.jsp

*** KBS. AI시대, 위기인가 기회인가. 카이스트 이광형 총장 유튜브 강연(2022.09.11. 방송)을 참고할 것. https://www.youtube.com/watch?v=_oykXGFNEOw

****  커버 출처: 아작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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