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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night Mar 25. 2023

혼자 마시는 커피가 견딜 수 없이 외롭게 다가올 때

2022. 4. 24

작품: 빨간 코의 날 (원제: nenä päivä) / 미코 림미넨/ 리오북스

출처: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67516

복지국가도 외로움을 해결해 주진 못한다

핀란드에서 난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동양인 유학생인 내게 그들은 때론 영어로, 때론 그보다 더 유창한 핀란드어로 먼저 말을 걸어왔다. 


“지금 몇 시나 됐냐?” 

“깍시..또이스따 뀜메넨 (열..두시 십 분이요).” 

“이 버스가 카타리나 락소에 가는 거 맞아?” 

“(아니, 현지인이 왜 나한테 이런 질문을...) 네에.” 


2010년이었던가.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이후로 사라진 줄만 알았던 질문들을 그들은 하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두 눈을 스마트폰에 내리꽂고 있지 않은 거의 유일한 젊은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핀란드에서 대중교통으로 여행을 하다 보면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노인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2016년의 11월 어느 일요일도 그랬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은 급격히 짧아지고, 나무가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리면서 바깥 풍경이 급격하게 무채색으로 바뀌어 가고, 인간은 샛노란 빛의 전등으로 집안 곳곳을 밝혀 우울한 마음을 달래는 시기. 뚜르꾸 시내에서 루이쌀로라는 섬으로 가는 8번 버스를 탔다. 의자가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는 자리에 앉았고 곧이어 할머니 한 분이 버스에 탔다. 마리아라는 이름의 할머니는 대뜸 내게 말을 걸었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핀란드 근현대사의 한가운데 내던져졌다가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온 어느 여성의 이야기를. 핀란드 까렐리아 지방에서 태어난 그녀의 삶에 예고 없이 찾아왔던 러시아와의 겨울 전쟁. 그녀는 간호병으로 최전선에 서게 된다. 결국 전쟁에 패한 핀란드는 배상금의 명목으로 까렐리아 영토의 대부분을 러시아에게 넘겨주게 되고 전쟁에서 가족을 모두 잃은 그녀는 이웃 주민들과 함께 하염없이 서쪽으로, 서쪽으로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다고. 그러다가 핀란드 남서부의 끝인 뚜르꾸까지 와서 정착하게 되었고 간호사로 일하다가 은퇴하셨다고. 그리고 이젠, 암에 걸린 몸이 되었다고 하신다. 8번 버스의 차창 너머로 루이쌀로의 처연한 늦가을 들녘 풍경이 한 장씩 지나갈 때마다 역사의 중심에서 살아남은 그녀의 이야기가 한쪽씩 지나갔다. 나는 마리아에게 온 마음을 담아 당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쓰실 것을, 또 핀란드어를 열심히 배워 그 책을 읽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우린 종점인 루이쌀로 바닷가에 도착했다. 마리아는 주머니에서 종이 조각을 꺼내 손을 달달 떨며 그녀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한 자 한 자 새겨 넣듯 적기 시작했다. 마리아의 손등처럼 주름이 자글자글한 종이를 내 손에 건넸다. 시간이 될 때 전화를 달라고 했다. 힘이 잔뜩 들어간 삐뚤빼뚤한 글씨를 보는 순간 그만 내 눈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그렇게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나는 연구실에 두고 한동안 치우지 못했다. 


이르마가 외로움에 대처하는 법

혹시 이르마도 그랬을까. 미코 림미넨의 소설에는 어느 날 문득 커피를 혼자 마시는 외로움이 몸서리쳐지게 싫어서 낯선 이의 집을 노크하고 얼떨결에 신분까지 시장조사 설문연구원으로 꾸민 다음 이 집 저 집을 드나들게 되는 이르마라는 여성이 있다. 


내가 왜 이렇게 거짓말을 하며 낯선 사람들을 방문하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단 하나, 내가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 나은, 더 행복한, 더 편안한, 그것이 무엇이 됐든, 이전의 것이 아닌 무언가를 말이다 (p.69).


외로움은 이르마가 술 한 모금 들이키지 않고도 시장조사 설문연구원으로 가장하고 낯선 이의 집 초인종을 누르게 만드는 매우 강력한 감정이다. 자발적인 선택인 고독과 달리, 외로움은 반갑지 않은 감정이다. 아마도 외로움은 접촉과 다정함을 통해 사회적인 동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온 호모 사피엔스가 가장 두려워하는 감정일 것이다. 그것은 비어있고 쓸쓸하며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고통스러운 정서적 상태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건강과 심하게는 생명도 위협할 수 있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취약해지기 쉬운 건 주인공 이르마와 같은 장년층이나 노년층에게만 찾아오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사회적 관계 자원, 그러니까 (비록 근원적인 외로움을 해결하지 못할지라도) 외로울 때 물리적으로 누군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심리적 안전망을 내려놓고 단신으로 디아스포라의 삶을 자청하는 한국인들이 유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이르마가 물러설 듯 물러서지 않으며 이르야, 얄카넨 부부, 비르타넨의 집 초인종을 누를 때마다 북구의 긴 겨울과 가족 명절 가운데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노트북으로 삼시 세 끼와 스페인 하숙을 틀어놓고 화면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던 내가 있었다. 혼자 있기 싫은 토요일 밤엔 펍에 가서 맥주나 와인 한 잔을 시켜놓고 소설책을 읽다 오던 내가 있었다. 또, 모든 것이 문을 닫아버리고 현지인들은 가족의 품으로 숨어버리는 크리스마스 연휴에는 (비록 지금은 기후위기로 인해 예전 같진 않지만) 눈마저 집채만큼 쌓여 버리면 완벽한 고립무원을 경험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스페인이나 남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끊어 탈출하기도 했다. 블로그글과 신문 기사도 쓰고 한국 친구들이 활동하는 시간에 맞춰 페이스북도 했다. 


아들의 말마따나 www로 시작되는 인터넷 공간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제껏 인류가 만들어낸 공간 가운데 이토록 작고 외로운 곳이 또 있을까(p.28).


이르마의 독백처럼 인터넷 공간은 세상에서 가장 작고 외로운 곳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인터넷 세상에선 이르마처럼 오프라인에서 타인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기 위해 설문조사라는 구실을 만들 필요도 없고 거절당할 확률도 낮다. 하지만 보잘것없고 남루한 일상을 적당히 카메라 앵글 밖으로 밀어낸 다음 올리는 포스팅에 달리는 수백 개의 ‘좋아요’는 파동은 일으키지만 공명하지 못하는 소리처럼 어딘가 허전하다. 이르마는 인터넷 세상이 아닌 집밖으로 길을 나선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커피를 마시기 위해. 그런 그녀의 모습은 때론 우스꽝스럽다가도 용감하며, 때론 결연한 그 모습이 애잔하기까지 하다. 그 길엔 낯선 이에게 직접 내리고 구운 커피와 케이크를 대접하고 일상의 가볍고 무거운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이르야가 있었고, 편견 없이 이르마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믿어주는 알콜중독자 비르타넨이 있었다. 


외로움이 질병이 된 시대를 살아가는 법주거 공동체

영국에서는 외로움부 장관이라는 직책을 만들 정도로 외로움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질병으로 대두되고 있는 시대다. 이 책을 읽으며 이르마처럼 일생의 어느 시기엔 혼자 사는 삶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는 주거 형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핀란드의 노인 주거 공동체 아파트 로뿌끼리(Loppukiri)*가 그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전력 질주’라는 이름답게 이곳에 집을 소유하고 있는 노인들은 직원들을 고용하지 않고 인생의 마지막을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간다. 공동시설 관리부터 식사 준비까지 조를 짜서 서로 돌아가며 함께 해결해 낸다. 다양한 클럽 활동을 통해 재능 나눔도 하고 단체로 공연을 보러 가거나 당일치기 여행도 한다. 그렇게 노년의 가족을 얻고 또 떠나보내기도 한다. 역시 핀란드에서 진행 중인 제너레이션 블록(generations block)**을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로뿌끼리와는 달리 거주자가 노년층에 국한되지 않는다. 월세주택, 학생주택, 자가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집(총 262채 중 20채는 장애인 전용 집)이 섞여 있는 아파트 단지로 어린이부터 청년과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독립된 자신의 집에서 혼자만의 생활을 이어나가도 되지만 정원, 거실, 세탁실, 사우나, 극장, 음악실, 목공실 등과 같은 공용공간을 사용하면서 다른 거주민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언제나 열려 있다. 세 개의 건물이 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는 제너레이션 블록은 휠체어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실내 복도로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어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거의 모든 공용공간에 다다를 수 있다. 사람들은 거주자 게시판에 정보와 규칙을 올리고 여가활동과 행사를 통해 소통하면서 공동체성을 도모한다. ‘혼자 있어도 되지만 혼자일 필요는 없다’, ‘당신이 혼자 살든 누군가와 함께 살든 당신의 세 번째 방은 블록(주거단지)이고 네 번째 방은 바로 도시(헬싱키)’라는 게 이 주거공동체의 철학이다.*** 고밀화된 도시에서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친환경적인 주거 형태일 뿐만 아니라 ‘따로 또 같이’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이다. 공용 공간 중에서 인기가 제일 좋은 곳은 공용 부엌 겸 거실인데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로 활기에 넘친다고 한다. 이르마가 그토록 원했던 것처럼 말이다. 일인당 커피 소비량 세계 1위의 나라답게 사람들은 커피 한 잔으로 겨울철 긴 어둠에 딸려온 졸음도 몰아내고 외로움도 덜어낸다.  


하카니에미의 조나단과 마리아를 생각하며

타인과 직접 상호작용을 해야만 해결되는 외로움이 있다. 유학시절 내내 한국 음식을 무던히도 만들었다. 식당에 가서 한 끼를 해결하기엔 주머니가 가볍기도 했고 누군가와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 느끼는 온기가 그리웠다. 한국 음식 재료를 사기 위해 뚜르꾸에서 헬싱키까지 장바구니용 가방을 메고 소설에도 등장한 하카니에미 역 앞의 까우빠또리(광장에 들어선 노천시장)에 도착하면 한겨울 무겁게 내려앉은 잿빛 하늘과 같은 색깔의 돌이 평행선을 그리며 늘어서 있었다. 시장이 파하고 노점이 빠져나간 뒤 텅 빈 광장을 접수한 채 바닥에 떨어진 생선 도막을 노획하던 갈매기 무리들이 생각난다. 그중 유독 눈길이 가던 한 갈매기에게 조나단이라 부르며 손을 흔들고 끼룩끼룩 갈매기의 언어로 인사를 건네곤 했었다. 하카니에미 광장의 고참 갈매기 조나단은 오늘도 생선 대가리를 하나 물었을까.


‘그리고, 마리아 할머니는 잘 계실까.’


버스에서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내게 건네주신 할머니. 결국은 그 번호로 연락을 드리지 못했다. 책은 쓰셨을까. 암이 많이 전이되지 않고 큰 탈 없이 잘 지내고 계실까. 이미 돌아가셨을까. 따뜻한 커피잔을 손에 쥐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손에서 마음으로 온기를 느끼고 싶게 만드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마리아를 가만히 가만히 떠올려 본다.


* 로뿌끼리 홈페이지  https://www.loppukiri.com/english-summary/

** 제너레이션 블록 홈페이지  https://setlementtiasunnot.fi/en/jatkasaaren-setlementtiasunnot/

***https://setlementtiasunnot.fi/en/setlementtiasunnot-showcases-two-blocks-at-the-international-social-housing-festival-in-helsinki/

 https://www.one4all.fi/en/generation-quarter-sukupolvienkortteli/

https://popupcity.net/insights/the-latest-trend-in-co-living-multiple-generations-under-one-roof/

**** 커버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redcow/3350050686 (사진: rich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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