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솔뫼와 신리

by 계쓰홀릭


우리 성당 예비신자 교리의 과정 중에는 두 번의 외부 활동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지난 7월 초에 다녀온 '성지순례'이다. 성지순례라 하면 왠지 산티아고의 순례자길이 생각나서 멀고도 험한 길인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 곳곳에도 '성지'로 지정된 곳이 꽤 많다.

아침 7시에 출발하는 일정이라 빠듯하게 준비해서 성당 앞마당으로 갔는데 많은 분들이 와계셨다. 성모상 앞에서 다 같이 기도드리고, 기념사진을 찍고 출발하는데 봉사자님께 간식 꾸러미를 선물로 받았다. 지금 막 떡집에서 쪄 온 듯한 떡과 견과류 등 다양한 먹거리가 들어있어서 하루 종일 야금야금 먹을 수 있었다.


솔뫼성지

솔뫼성지 - 공식 홈페이지 참고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이다.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 종조부 김종한(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1846년 순교)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으로 김 신부의 신앙이 싹튼 곳이며,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김대건은 이곳(현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당시에는 면천 고을 솔뫼)에서 1821년 8월 21일 태어났다. 그러나 이미 증조부와 종조부가 순교한 천주학 집안이어서 가세는 기울 대로 기울었고 또 어느새 새로운 박해가 닥칠지 몰라 조부 김택현은 김대건이 7세 무렵에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골배마실’이라는 산골로 이사했다. (이하생략)

김대건 신부님의 이름만 들어서 알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솔뫼성지는 온통 그분의 업적과 가족들의 순교에 대해 알려주고 있었다. 2014년에 프린치스코 교황님이 방한하여 아시아 청년들과 만남을 가진 곳이 바로 이 솔뫼성지여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건물도 지었다고 한다. 우리 성당 예비신자반은 이날 11시 미사를 그곳에서 드리고, 미리 예약된 점심 식사를 했다. 성당을 다녀본 경험이 이전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 성당 외에 다른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것이 처음이었다. 세계 어디를 가나 미사의 순서는 같기 때문에 그 나라의 언어를 몰라도 미사 참배가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예전에는 기념사진만 찍고 나오곤 했던 유럽의 근사한 성당들에 다시 방문한다면 그 나라의 언어로 드리는 미사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우리 성당에서는 예비신자들이 영성체 시간에 일어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데, 이곳에서는 예비신자들이 양팔을 엇갈려 몸통을 감싸 안고 나오면 신부님께서 머리를 만지며 축복을 내려주셨다. 어린이 미사 때 아직 영성체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걸 보고, 아이들이 참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 자리에 서니 예비신자로서 스스로 귀여워지는 느낌이 들었달까? 비록 신부님이 나보다 젊은이인 듯 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축복이란 참 기분 좋은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을 데리고 새벽미사에 가게 되었을 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우리도 나가볼까?"하고 속닥이더니 친구들과 우르르 나가서 신부님의 축복을 받고 돌아왔다. 처음에는 눈치만 보던 다른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자 용기가 생겼는지 몇 주 후에는 축복받는 인원이 늘었다. 신부님도 정성스럽게 아이들의 머리에 축복을 내려주셨다.


신리성지
출처 : jm여행사 유튜브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경관으로 내륙의 제주도라 불리는 신리성지는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시기 가장 큰 신자 공동체를 형성했던 장소로 원래의 위치와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박해 시대의 주교관인 다블뤼 주교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에 첫걸음을 내디딘 후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조선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내포지방 천주교 유력자였던 손자선 토마스의 집에 은거하면서 황석두 루카의 도움을 받아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거나 한글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 천주교사와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하였습니다. 이 자료들은 훗날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의 기초가 되었고, 103위 성인을 탄생시키는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신리는 천주교 탄압기의 가장 중요한 교우촌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조선에서 가장 큰 교우 마을이었으며,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처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천주교 전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곳은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시대 비밀교회)로 불리기도 합니다. 다블뤼 주교가 신리에서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발달된 삽교천 수계를 통해 중국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었던 점과 내포지방의 문화적 개방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리성지 내 순교미술관은 로마 지하무덤인 카타콤의 이미지를 형상화하여 건축한 우리나라 최초의 성화미술관으로 다섯 성인의 영정화와 순교기록화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순교미술관 밖에는 다섯 성인의 삶을 기억하고 기도할 수 있는 작은 경당들이 있는 푸른 잔디밭의 순교역사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출처 : 당찬 당진 문화관광 사이트)

솔뫼성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신리성지는 소문대로 이국적인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포토스폿으로 알려진 탓인지 70년대 잡지모델처럼 화려한 패션을 자랑하는 장년 여성 예닐곱 분이 전문 포토그래퍼를 동반하여 출사를 나와있는 모습도 무척 이색적이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우리는 경치 구경도 좋지만 얼른 시원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분들의 열정이 우리 예비신자들의 그것보다 뜨거운 듯했다.

다른 예비자가 찍어주신 나


한국식 화풍의 순교 기록화를 전시해 둔 '순교미술관'에서의 관람이 기억에 남는다. 성화라고 하면 서양인들이 주로 등장하는 유화를 떠올리는데, 그곳에는 먹과 담채로 표현된 한국의 성인들의 모습을 담은 대형 작품들이 걸려있었다. 우리나라 화폐의 인물화를 그리신 이종상 원로화가께서 몇 년 간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그리셨다고 한다. 천주교 박해 속에서 목숨을 잃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성인들의 모습이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게 느껴졌다.


성지순례가 남긴 울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오늘 성지순례를 다녀온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칠순이 넘은 어르신들도 계셨고,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봉사자님의 도움으로 다녀오신 분들도 계셨는데 각자의 사연과 소감이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나는 씩씩하게 이렇게 말했다.

"저희 남편이 신자인데 물어보니 성지순례도 안가보고, 십자가의 길(솔뫼성지에서 예수님의 삶을 표현한 14처를 순서대로 돌며 함께 기도한 방식)도 모르더라고요. 이제 제가 더 잘 배워서 가족들에게 알려주고, 아이들과 가까운 성지를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집 주변에는 합정 절두산 성지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가 있고, 주말에는 나들이 삼아 명동성당에 가보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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