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신자는 아무나 되나?(2)

준비물은 두 가지

by 계쓰홀릭

5월 초, 가족 여행 중 드디어 기다리던 문자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OO동성당 예비자 교리 봉사입니다. 5월 11일 교리 시작이라 성당 1층 로비에 10시 40분까지 오세요. 그때 뵈어요. 꼭! 답 주세요.

해외 로밍을 하지 않아서 전화를 받지 못했더니 답답한 마음에 보내신 듯한 문자였다. 가정의 달 황금연휴가 끝나고 바로 다가오는 주말에 나오라는 일방적인 통보에도 뛸 듯이 기뻤다. 드디어 -신자도 아닌- ‘예비’ 신자가 되었다며, 남편과 축하의 건배를 하고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대체 이게 뭐라고!


성당 엄마 두 달이면 성가를 읊는다.

토요일은 어린이 미사가 있어 가족이 모두 똘똘 뭉쳐 하루를 마무리하게 마련인데, 주일 아침에 혼자 개운하게 씻고 마을버스에 오르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소중한 일요일 아침에 혼자만의 일정이라니! 게다가 천주교 집안인 시댁과 남편의 지지를 받아서 든든한 백을 등에 업은 듯 그 마음이 더욱 좋았다. 아침을 먹지 않고 길을 나섰지만 이미 배부른 느낌이랄까?

아이들 일로만 내려가보았던 지하 1층 강의실에 모여 환영의 간식도 받고, 나눠주신 빨간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 예비자용 교리공부 교재와 안내장을 배부받고, 담당하시는 봉사자님과 인사를 나누고 11시 미사에 올라갔다. 성당이 완전 처음인 분들 사이에서 그래도 나는 미사 순서를 꽤 잘 아는 축에 속했다. 3월부터 어린이미사를 다니며 어깨너머로 눈치껏 배운 '풍월'로 성가 번호를 보고 성가책을 휙휙 넘겨가며 입을 벙긋거리니 그동안 아이들 따라다닌 게 허사는 아니었구나 싶었다.


천사들의 합창

대성전에서 하는 주일미사는 4월 부활미사 때 처음 가보았었다.

성당에서 가장 큰 두 행사가 바로 성탄절과 부활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의미를 잘은 모르지만 부활미사를 가보고 싶어 가족들을 설득해 가보았던 것이다. 토요일과 달리 성당 앞마당에 주차가 되지 않아 남편은 우리만 내려주고 주차할 곳을 찾아 떠났다. 평소처럼 마당의 성모님께 인사드리고, 계단을 올라 대성전에 들어가는데 큰 공간을 가득 채우며 울려 퍼지는 성가가 내 귀에 와닿았다. 아직 성가대는 목을 풀고 있을 뿐이었는데도 그 아름다움에 반해 온몸에 전율이 흐르며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는 젬병이고 음악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음에도, 어린이 미사에서 들을 수 없었던 아름다운 성가대의 목소리가 내 심금을 울렸다. 토요일 미사에서 다소 격의 없는 말투로 위트 있게 말씀을 전하시던 부주임신부님이 아니라 사뭇 진지하신 주임신부님의 말씀도 그날 처음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말씀이 어렵고 지루해 몸을 베베 꼬았지만 말이다.


천주교 신자가 되기 위한 여정

강의실에 모여 우리 성당의 예비신자 과정에 대해 안내받은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5월부터 11월 말까지 총 6개월의 과정임.

주일 아침 또는 화요일 저녁에 예비신자 교리가 있으니 스케줄에 맞게 택 1 하여 들을 것.

사정이 있을 때는 담당 봉사자와 상의하여 다른 반 수업을 대체해서 듣거나 따로 보강할 것.

통과해야 할 과제 : 기도문 외우기, 마르코 성경 필사, 성지순례 1~2회, 수녀님 신부님과 상담 2회 등

성당마다 조금씩 다르다고는 하는데, 첫 영성체반을 다니고 있는 우리 첫째 아이와 몇 가지 겹치는 게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6개월 휴직이어서 딱 연초부터 시작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휴직 중에 절반 이상은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첫 모임에서 서로 자기소개를 하면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 생각해서 갔는데, 시간 관계상 서로 소개는 생략한다고 하셔서 내심 아쉬웠다.

나중에 차츰 서로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니 나처럼 결혼을 계기로 오게 된 젊은 사람들과 오랫동안 성당에 오고 싶었는데 이제야 오게 되었다는 어르신들이 반반 정도였다. 어렸을 때는 교회에 다녔는데 지나치게 외향적인 사람들과 함께하느라 성정에 맞지 않아서 성당으로 옮겼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성당에서는 서로 깊게 터치하지 않고 내향인들이 많은 편이어서 더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듯했는데, 외향인인 나는 적당한 선을 지키며 성당 사람들과 천천히 사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니면 성격상 개신교가 맞는 것일까?


성당의 여러 미사 중 가장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일 오전 11시 미사는 원래 주임신부님이 하시는 것인데 마침 내가 예비신자로 처음 참석한 날은 부주임신부님이 하셨다. 주임신부님이 피정을 떠나셔서 '주임신부대리'의 자격으로 몇 주간 대신하신 것이었다.

"요즘 주임신부님 대리로 일을 하고 있어요. 전에는 얼른 주임신부가 되고 싶었는데 막상 주임신부대리를 맡아보니 불편한 점도 있어요. 눈도 더 침침해지고, 무릎도 아프고, 흰머리도 느는 것 같더란 말이에요. 그냥 부주임신부로 돌아가서 다시 젊어지고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신자들은 모두 잔잔한 웃음을 터뜨렸다. 익숙한 신부님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가장 크게 웃은 건 아마 나였을지도 모른다. 부주임 신부님께서는 강론 말미에 우리가 앉은 예비신자석을 바라보며 환영해주셨다. 그리고 덧붙여 말씀하셨다.

예비신자분들은 성당 사람들이
좀 개인적인 성향이 있어서
혹시 서운하다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그러니 다들 환영해 주고
따뜻하게 대해주시기를 바라고,
예비신자분들도
너무 상처받지 않길 바랍니다.


내가 방금까지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걸 딱 말씀해 주셔서 조금 놀랐다. 교회를 다니거나 성당을 다니는 지인들이 속으로 고민하고 있거나 요즘 생각하고 있던 문제에 대해서 목사님 또는 신부님이 말씀하시면 큰 깨달음을 얻는다고 들었는데, 나도 이제 그런 응답을 듣는 '진정한 신자'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준비물은 두 가지

간절한 기다림 끝에 예비신자교리를 듣기 시작한 지 어느덧 3개월이 넘게 지났다. 처음에는 30~40명쯤 되어 보였던 교리반 사람들이 하나 둘 줄어 지금은 20여 명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 평일반의 사정을 다 아는 것은 아니라 세례 받는 날까지 가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회사가 바빠서 못 오거나 건강이 나빠졌거나 또는 6개월간의 긴 여정이 부담되어 초반에 그만두었거나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예비자교리를 끝까지 듣고 세례를 받기 위한 준비물은 딱 두 가지라고 생각된다. 그건 바로 가톨릭 신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과 거기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다. 지난 10여 년간 '언젠가 성당에 가긴 해야 하는데...' 하던 나의 마음이 차곡차곡 쌓이고, 둘째의 초등학교 적응을 위해 큰맘 먹고 시작한 6개월간의 육아휴직이라는 시간이 만나 지금의 나를 성당으로 이끌어주었다.


수녀님과 성당사람들 말처럼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면, 부르심 뒤에 무엇이 있을지 기대가 되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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