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실망하지 말자
3월부터 아이들을 성당 주일학교에 등록하고, 나도 가톨릭 신자가 되기 위한 예비자교리를 신청했다. 학기 초 새로운 스케줄을 짜고 적응시키느라 아이들 학원 가방을 주렁주렁 메고 동네 상가의 한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있던 어느 오후의 일이다.
달달한 라테를 한 잔 주문하고 앉아 숨을 돌리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두 분이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 '복사' 하기로 했어요?
- 아뇨, 우리 애는 복사할 그릇이 안되어서.. 하하. OO이는 요즘 잘하죠?
여기서 '복사'란 어떤 문서를 카피하는 것이 아니라 성당에서 신부님이 하시는 미사를 곁에서 돕는 보조 역할의 어린이들을 말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예전 같았으면 관심 없었을 대화 주제인데 '복사'라는 단어가 내 귀에 꽂혔다.
성당 복사(服事, altar server)는 천주교와 성공회에서 미사 집전 시 사제를 돕는 역할을 하는 평신도를 의미합니다. 복사는 성찬 전례 시 사제를 도와 성작, 성반, 성작 수건 등을 나르거나, 촛불을 들고 행렬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봉사를 합니다. - 구글 AI Overview -
파워 E(외향인)에 오지라퍼인 나는, 내 커피잔을 들고 그 테이블에 찾아가
"혹시 OO동 성당 다니세요?" 할 뻔했다.
우리 가족이 막 다니기 시작한 그 성당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미리 친해지고 싶었다. 오버하지 말고 참자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는데 그분들의 다음 대화가 이어졌다.
- 근데... 복사 괜히 시켰나 봐요.
- 왜요?
- 6시 미사면 5시 반까지 가야 하는데, 조금 늦게 갔더니 수녀님이 촛불부터 켜라고 뭐라고 하셨나 봐요.
- 초에 불 붙일 줄 알아요?
- 잘 못하죠. 근데 아직도 안 했냐고 막 무섭게 이야기하셔서 … 혼났다고, 이제 하기 싫대요.
- 그 수녀님 좀 말투가 좀 그렇긴 하죠. 애들이 그러는데 저번에는...
다음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느낌상 아이들에게 다소 엄격하게 대하시는 수녀님의 태도에 대한 불만이 있는 듯했다. 아직 제대로 된 성당 생활을 하기도 전에 수녀님이 좀 엄격하신 편이라는 정보를 알게 되었고, 동시에 성당 사람들이 하는 뒷이야기를 듣게 되어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저녁 식사 때 남편에게 카페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내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아이들이니 더욱 말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로 눈짓을 하고 급히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
며칠 뒤, 글쓰기 모임에 가서 오랜 가톨릭 신자인 문우(文友)께
"저도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아이들 주일학교 미사부터 다니고 있는데 신부님 너무 좋으시더라고요." 했더니 무척 반가워하시며 응원과 동시에 걱정 어린 조언을 해주셨다.
"... 그런데 성당도 결국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오래 다니다 보면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실망하는 일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니 너무 기대하지는 마시고, 성당 다니는 사람이라고 다 좋은 사람은 아니니까 천천히 알아가시는 게 좋아요."
카페에서 있었던 일을 말한 것도 아닌데,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해주신 말씀에 깜짝 놀랐다.
신부, 목사, 스님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나타나면 대중은 더 크게 분노하고 손가락질한다. 성직자에게 기대하는 대중의 기대치가 아무래도 일반인보다는 높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성당에 가서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좋은 사람이고, 나에게 친절하게 대할 것이라는 기대는 내려놓아야겠다. 그곳도 결국 사람들이 모여서 소집단을 꾸리고, 봉사한다는 명목 하에 모여서 이런저런 일을 도모하다 보면 의견 충돌이 충분히 생길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좋은 의도를 가지고 어떤 일을 추진하는 총대를 메었다가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투덜대는 것을 보고, 크든 작든 실망을 하는 경우가 생기곤 하니 말이다.
성당 다니는 사람이 왜 그래?
예비자 교리 시간에 봉사자님께서 우리 신자들도 이런 말은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성당 다니는 사람이라고 다 좋은 사람은 아니니 신앙생활 하면서도 사람에게 너무 기대지 말고, 우리끼리도 서로에게 실망했을 때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씀이셨다. 다만, 성당에 다니는 사람은 좀 더 좋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상처받아서 성당에 나가지 않는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인간에게 의지하지 않고 나와 내 가족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만 생각해야 할 텐데 나에게 과연 그런 믿음이 생길 수 있을까? 믿음으로 가는 과정에서 이왕이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과한 욕심은 아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