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분명한 변화
성당 생활이 처음인 나는 미사의 정해진 절차라든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야 하는 기도문 같은 것들이 무척 형식적이게 느껴진다. 신자가 되기 위한 예비신자 과정이 무려 6개월이나 되는 것도 놀랍다. 나와 함께 예비신자 교리를 들으시는 분들 중에는 70대 이상의 노인도 계신데, 기도문 외우기가 너무 어렵다고 봉사자님께 불만을 토로했다. 봉사자님께서는 "틀려도 괜찮아요. 틀리면 뭐 어때요 마음이 중요하지 형식이 중요한가요?"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자꾸 하다 보면 저절로 외워진다고 하셨다. 이 모든 것이 '형식'으로 느껴지는데 왜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시는 걸까? 속으로 의문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소년 소녀 복사단
내 또래의 엄마들과는 아이들 주일학교 내 첫 영성체반 학부모 모임을 통해 안면을 트고 이야기 나눌 기회가 생겼는데, 아이들이 이 과정을 마친 뒤 복사단에 지원을 하느냐 마느냐가 화두였다. 아이들이 복사단을 하려면 새벽미사도 계속 나와야 하고, 주어진 임무도 많아지기 때문에 뒷바라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런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고 성당에서 인정받는 역할이기 때문에, 복사단 하는 애들은 다들 괜찮은 걸로 인정받은 셈이기도 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들은 어린 시절 성당을 다녔기 때문에 복사단이나 성가대, 전례부(미사 시간에 성경 구절을 읽어주는 것)가 하는 일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었다.
저 어렸을 때는 복사하고 싶어도 못했어요. 남자애들만 시켜줬거든요.
지난번에 언급한 바 있는 영화에서도 두 교황님의 논쟁이 많이 나오는데, '복사단에 소녀를 세우기까지 우리 교회는 몇천 년이 걸렸습니다.' 하는 식의 대사가 있어 기억에 남았다. 급진적인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베네딕토 교황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이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장면이었던 걸로 생각된다.
외국인 신부님과 라틴어 미사
여자아이들은 복사를 설 수 없었던 것보다 더 충격적인 이야기는 어떤 일 때문에 모였다가 할 일이 없어져서 1시간 정도 다른 봉사자님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듣게 되었다. 군대 간 아들을 두신 60대 봉사자님께서는 본인도 아이들 초3 때 첫 영성체반 하면서 다시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고 옛날일을 회상하셨다. 지금 첫 영성체반에서 하는 것들은 그때에 비하면 아주 부담이 줄어든 것이라는 레퍼토리와 함께 들려주신 두 가지 이야기.
나 어렸을 때는 성당에 외국인 신부님이 많으셨어요.
우리 아버지는 예전에 라틴어로 미사를 보고 복사도 섰대요.
복사가 되기 위한 어려운 과정 중 하나는 라틴어 공부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배우는 외국어라고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 정도였을 텐데 일상적인 언어도 아닌 문자로만 남아있는 '라틴어'로 미사에 쓰이는 용어들을 외워서 했다고 하니 그 정성과 열정이 대단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한 영화「두 교황」에서 베네딕토 교황님은 전 세계 추기경이 모인 자리에서 라틴어로 이야기하면 바로 알아듣는 사람이 절반 정도여서 좋다고 했다. 그래서 추기경들이 싫어할 만한 이야기는 라틴어로 하곤 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라이브방송으로 본인의 은퇴를 발표할 때에 라틴어를 사용해서 그것을 TV로 보고 있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웃는 장면이 나온다.
외국인 신부님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한국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외국인 신부님들을 떠올렸다. 그분들 연세를 생각해 보니, 60대 봉사자님들의 유년기에는 외국인신부님들이 왕성하게 활동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
성당은 보수적이고 잘 변화하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예전에는 신부님이 신자들이 아니라 벽에 붙은 십자가를 향해서 미사를 드렸기 때문에 신부님들 뒤통수만 보았다고도 하는데, 그 방향을 신자들을 향해 돌리느냐 마느냐를 두고도 로마 교황청에서 굉장한 논의를 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 성당의 신부님께서는 성당이 이제는 일인가구 및 독신자가정을 위한 것들도 고민하고 마련해야 한다고 언뜻 말씀하신 적이 있다. 잘은 모르지만 성당이 '성가정'을 이룬, '결혼'으로 맺어진 가정과 그 가족들에 대해서만 제도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는 뜻으로 느껴졌다. 예전에는 이혼에 대해서도 전혀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얼마 전에 일곱 가지 성사에 대해 배우던 날에 수녀님께서 '이 결혼은 어떤 복잡한 사정에 의해 무효라고 인정될 경우에...'라고 말씀하셔서 속으로 놀란 적이 있다. 칠 성사 중에서 일생에 한 번뿐인 성사는 세례와 견진.. 등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혼인성사는 빠져있었다. "그럼, 재혼하면 혼인성사를 다시 할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질문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대신 천주교의 변화에 관한 서적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도 변하십니다" 영화 「두 교황」을 소개한 프로그램 영상
6개월이라는 예비신자의 과정이 길다고 투덜대기는 하지만, 수천 년이 넘게 이어져 내려온 천주교의 역사를 이해하고 성경을 읽기에는 사실 무척 짧은 시간이다. 얕은 신앙심에 비해 깊은 호기심을 가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부지런히 더 많이 읽고 보고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