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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Feb 03. 2022

사십 살 인생 #012

꿈을 지배하는 어린이

올해로 일곱 살이 된 딸아이가 아직 잠자리 독립을 완전히 하지 못했다. 자기로 맘먹고, 약 4~5권의 책을 읽고 나면 -어린이집에서 아직 낮잠을 자는 다섯 살짜리- 동생이 거실에 나가 아빠와 놀고, 졸릴 때 다시 엄마를 소환하는데 그 사이에 잠들어야 하는 일곱 살짜리. 잠들면 엄마가 나가서 동생도 재우고 마지막엔 안방에서 잔다는 것을 알지만, 자다가 깨서 엄마가 없으면 꼭 찾으러 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나도 점점 통잠을 자는 날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긴 한데, 가끔은 무서운 꿈을 꿨다며 울고 있을 때가 있어서 마음이 쓰인다. 모 보험사에서 나눠준 걱정인형 다섯 마리와 함께 자면서 이 걱정인형들이 나쁜 꿈을 안 꾸게 도와줄 거라고 했는데, 어느 날은 훌쩍이며 "엄마, 왜 걱정인형도 있는데 나쁜 꿈을 꾸는 거야?" 하고 물어왔다.

나 : 응, 키가 크려고 그러는 건가 봐. 무서운 꿈을 꾸면 키가 큰데.

딸 : 무서운 꿈을 안 꿀 수는 없어?

나 : 음. 꿈을 꾸면서 '이건 꿈이야' 하고 생각하면 무섭지 않지. 나는 이거 깨면 내 방에 있을 거니까~ 하고 맘먹고 꿈에서 나올 수 있으면 하나도 안 무서워.


이렇게 설명하고 나서 다시 재웠는데, 말하고 나니 나의 어린 시절 꿨던 온갖 꿈들이 떠올랐다.



나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꿈을 많이 꾸는 편이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고르라면 단연 '부처님께 상 받는 꿈'이다. 당시 여섯 살, 부처님을 모시는 큰 강당이 있는 불교식 유치원을 다니던 중이었는데 꿈속에서 나는 수북이 쌓인 잿더미 산을 오르고 있었다. 아마도 강당에 있는 향을 피우는 향로가 산처럼 커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발도 푹푹 빠지고 손도 푹푹 빠지는 그 잿더미를 열심히 기어오르는 아이는 나뿐만 아니라 여럿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고생 끝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라서 황금색 눈부신 부처님을 만났는데, 부처님이 무척 환하고 인자하게 웃으시며 나에게 상장을 주셨다. 당시 까막눈이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내용이 대강 기억났다. 무슨무슨 반 홍 OO이라고 내 이름이 적혀있었고, 내용은 이런저런 이유로 착한 어린이여서 부처님이 상장을 주신다는 것이었다. 나는 깨자마자 기분도 좋고,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엄마에게 자랑삼아 이야기했고 - 엄마는 불자 셨기에 아마도 더 좋은 꿈이라 여겼는지 그 후로 한동안은 만나는 어른들마다 자랑을 했다. 엄마가 이야기한 것은 아니고 나에게 말을 걸며 "OO아, 그 부처님께 상 받은 꿈 이야기 좀 해봐라" 라며 내 입을 빌려서 말이다.


얘들아, 여기는 내 꿈속이니까 내 손을 꼭 잡고 꿈에서 탈출해보자


 번은 꿈속에서 전쟁이 났고, 나와 또래 친구들은 모두 6.25 전쟁 당시 국군들처럼 군복도 입고 머리에 철모도 쓰고 이상한  같은 것도 휘감고 있었다. 우리는 아파트 비상계단을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분주했고, 옥상도 감시하고, 기둥 뒤에 숨어있고 .. 그러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 이건 꿈이잖아' 하고 깨달았다. 왜냐하면 겨우 유치원생인 우리가 이렇게 총을 들고 있는  너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얘들아, 여긴 내 꿈 속이야. 너네랑 똑같은 친구들이 꿈 밖에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 다 같이 손을 꼭 잡고 하나 둘 셋 하면 눈을 뜨자. 그러면 내가 꿈 밖으로 데려가 줄게. 알았지?"

최선을 다해서 눈을  떴는데 허무하게도 나만  밖으로 빠져나와  방에 누워있었다. 다시 친구들을 데리고 와보려고 급히 눈을 감고 꿈이 이어지길 바랐지만  전쟁 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려서 아쉬웠다.


언젠가는 꿈속에서 꽤 큰돈을 용돈으로 받았는데 그때도 나는 이게 꿈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꼭 이 돈을 꼭 쥐고 나가야지 생각하며 엄지와 검지 사이에 지폐를 꽉 잡고 눈을 떴는데!! 손가락 두 개는 꼭 붙어있었지만 지폐는 없었다. 진짜 그 돈이 있을 것만 같아서 꿈에서 깨고 눈을 뜨기까지 그 사이에 얼마나 기대를 하고 눈을 천천히 떴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꿈속의 것을 밖으로 가지고 나올 수는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던 것 같다.


꿈속에서 이게 꿈이라는 것을 깨닫는 능력(?) 가진 후로 나는 별로 무서울 것이 없었다. 내가 주로 공포를 느끼는 꿈은   복도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다가 복도 쪽에 있는 우리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문이  열리지도 않고, 타이밍에 맞게  닫히거나 잠기지도 않아서  틈에 나쁜 사람(또는 괴물) 손이나 발이  끼며 따라 들어오는 식이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이   눌러지거나 눌렀는데 불이  들어오거나 아님 닫힘을 눌렀는데 너무 느리게 닫히거나.. 암튼 뭔가에 쫓기는데 문이   닫히는 꿈은  악몽의 주된 레퍼토리였다. 그런데 이게 꿈이라는  깨달은 뒤에는 복도에서 마구 쫓기다 말고 갑자기 "메롱 메롱" 하고 괴물을 놀린 다음  하고 눈을 떠서  밖으로 도망치는 초능력(?) 발휘하기까지 했다. 물론 눈이  하고 바로 떠지지는 않아서 혹시나 뒷덜미라도 잡힐까  조금 쫄깃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꿈에서  나는 너무 신나서 깡충깡충 뛰고 싶을 지경이었다. 근데 다시  꿈을 꾸게 되어 결국 잡힐까  걱정스럽긴 했다.


꿈에 관해서 나는 또 대단한 능력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꿈속에서 나는 방법을 터득했던 것이다. 무서운 꿈이든 재밌는 꿈이든 내 꿈속에서 나는 허공에 자전거 타듯 발을 굴리면 둥실하고 어느 정도 떠오를 수 있었다. 피터팬처럼 휙휙 날아다니면 좋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고, 잘 안 되는 날에는 실내에서 천장 정도까지 오르기도 힘들었고 잘 되는 날에는 지상 3~4층 정도는 떠오를 수 있을 정도였다. 현실에서도 해보려고 시도해본 적이 있지만 우선 몸이 무거워 허공에서 다리를 굴리는 것 자체가 안되었기 때문에 - 당연한 이야기지만 - 성공한 적은 없다. 꿈속에서도 이 능력은 아주 특별한 것이어서 위기 상황에 내가 둥실 떠오르면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그래서 나는 꿈속에서도 이 능력을 몰래 사용하거나 진짜 친한 친구들에게만 귓속말로 알려주었는데 그다지 믿는 눈치는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성인이 되면서 꿈을 소재로 한 여러 가지 영화를 보면서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아니, 저 감독도 저런 생각을 했단 말이야? 천잰데? 분명히 나처럼 어렸을 때 꿈을 많이 꿨나 보군' 이라며 혼자 동질감을 느꼈다. 역시 다들 유년시절의 경험은 비슷한데,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철학가가 되기도 하고 영화감독이 되기도 소설가가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내 딸아이는 앞으로 어떤 재미있는 꿈을 꾸고 나에게 들려줄지 무척 기대된다. 나를 닮았다면 어린 시절의 나처럼 '꿈을 지배하는 어린이'로 자라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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