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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Jan 31. 2022

사십 살 인생 #011

시집살이는 대물림된다?

아빠는 경남 함안에서 오 남매 중 늦둥이 막내로 자라 고모들이 업어 키웠다고 하고, 엄마는 경남 신반에서 육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언니 오빠들이 차례차례 심부름하다 보면 엄마 차례까지는 오지도 않아 책만 읽었다고 한다.


엄마가 시집왔을 때에 아빠는 워낙 늦둥이 막내에다 노총각이었어서 먼저 시집오신 형님들이 낳은 우리 아빠의 조카들이 아빠와 비슷한 또래였고, 곧이어 질부들이 시집을 와서 엄마는 흔한 시집살이   하지 않았다고 전해 들었다. 게다가 엄마는 시골에서 흔히 보기 힘든 ‘선생님 며느리였기 때문에 가끔 시골에 오더라도 할머니께서 농사일이나 부엌일을 시키지 않으시고, 새참이나 날라오면 할아버지께서 ‘며느리는 거기 앉아만 있어도 쌀이  이랬다나 뭐랬다나.. 암튼    고된 육체노동과는 거리가  삶을 살았다고   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명절은 항상 시골 할머니 댁에 명절 전날이나 당일 새벽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거기는 이미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밤을 잤는지 모를 - 이미 어른이 되어 오빠라 부르기도 뭣한 - 사촌 오빠들과  아내인 새언니들, 그리고  또래인 조카들이  그득그득 자다가 나와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인사했다. 또래이지만 ‘고모라고 불렸기에  아이들과 나는 마지막까지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기는 어려웠다. 엄마는 그때 이미 나이에 비해 촌수가 높아서 별다른 부엌일은 하지 않는 대신 제사비를 챙겨가 큰어머니께 드렸고, 큰어머니는 며느리들이 며칠간 부쳐댄 전과 제사음식과 농사지은  등을 트렁크 가득 실어주셨다.


나보다 두 달 먼저 시집간 언니는 크리스천에다 시댁 식구들 모두 독실하셔서 차례나 제사와는 거리가 멀게 살고 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시아버지께서 막내 셔서 … 결혼하고 몇 번 시댁 큰집(남편의 큰 사촌형네)에 차례를 지내러 간 적이 있다. 새벽에 차로 10분이면 가는 거리라 어린 아기 데리고 서둘러 가면 이미 음식은 그 큰집의 안주인인 남편의 ‘형수님’과 며느리들 및 딸에 의해 다 만들어져 있었고 나는 차례 지내는 동안 문간방에 다른 여자들과 모여서 조그만 소리로 수다를 떨다가 나가서 음복을 하고 떡국을 나르고 수저를 놓는 등 잡다한 일을 도왔다. 그마저도 다들 연세 드셔서 갑자기 규모가 축소되고, 또 코로나로 2년이 넘게 만나지 못하면서 내 인생에 앞으로 그렇게 많은 설거지를 - 그마저도 혼자 한 것은 아니지만 - 할 일은 없어진 것 같다.


나의 진짜 핵심 시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부모님 댁은 차로 20분 거리이고, 남편의 누나인 시누이 두 분은 그 근처에 살며 지난날 육아에 많은 도움을 받으셨다. 그런데 그분들도 시댁이 딱히 심각하게 시집살이라고 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어서 명절 당일에 그 집에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손주가 다 같이 모일 수 있을 정도였다. 맘 카페에는  ‘지저분한 시댁에서 명절에 자고 오기 싫다.’ ‘왜 음식은 쓸데없이 많이 하는지…’ ‘시누이 오기 전에 나도 친정 가고 싶은데 자꾸 시누이를 만나고 가라고 하신다.’는 글이 명절마다 어김없이 올라온다. 내 입장에서는 연휴 중 날짜를 서로 맞춰서 다 같이 삼 남매가 본다는데 나만 빠지기도 그렇고, 지척에 살면서 자고 가라고 하시는 분들도 아니고, 연락 없이 불쑥 찾아오시는 것도 아니고, 명절에도 부침개는커녕 딱 먹을 만큼만 요리하시고 그마저도 미리 다 해놓으시니 그다지 불만스러운 점이 없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시누이나 아주버님들과 나누는 대화도 즐겁고, 주말에 딱히 할 일 없으면 아이들 데리고 가서 몇 시간 놀고 점심 얻어먹고 설거지나 하고 오는 스케줄도 좋아한다.


그걸 누가 먹어? 왜 해? 다음 명절까지 얼려놓으려고 전 부치는 거야?


신혼 때만 해도 시어머니께서는 그래도 명절이고 며느리가 들어왔는데 부침개라도 좀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꺼내셨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요리도 좋아하고, 명절 부침개에 대한 환상 내지는 로망이 있던 터라 - 김장도 안 담가본 집에서 자라서 불러주시면 김장도 돕고 싶을 지경이다 - 귀가 솔깃했는데, 늘 몸매 관리에 철저하신 작은 시누께서 엄마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며 받아치셨다.


딸 : 그걸 왜 해? 누가 좋아해? 누가 먹어?

모 : 아니, 넉넉하게 해서 남으면 얼리지.

딸 : 얼리면 누가 먹어? 다음 명절에 싹 버리고 또 부쳐서 얼리게? 엄마 그냥 먹고 싶은 만큼 사드셔~


그리고 산더미처럼 나온 설거지는 나보다 손 빠른 시누이 두 분이 후딱 해치우신 적도 많고, 요즘은 식세기도 들이셔서 나도 한결 편해졌다. 우리 친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는 절대로 설거지를 못하게 하시는데, 어머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 정도? 하지만 나는 친정에서도 사위와 나란히 서서 설거지하고, 시댁에서도 아들 며느리가 나란히 서서 설거지하는 모습을 늘 꿈꾸기만 할 뿐 적극적으로 어필하지는 못하고 있다.


자세히 들은 바는 없지만 우리 할머니 세대에서부터 나의 엄마, 그리고 나에게 이르기까지 시집살이라는 게 이렇게 파격적으로 줄어들고 없어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일일드라마나 맘 카페에는 아직도 상식을 벗어난 이상한 시어머니나 시댁 식구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그 정도로 심각한 경우를 보지 못했다.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요소들이 있긴 하지만, 상대방을 충분히 배려하지 않고 무심하게 내뱉은 말들이 상처가 되거나 육아나 살림에 대한 간섭이 지나칠 때 발생하는 것 같다.


우리 시댁에 장가오신   사위께서는 아주 모범적인 사위들이시다. 코로나 이전에는 식구들이 모일   사위가 스테이크부터 드립 커피까지 코스요리를  해주기도 하셨다. 그러면 작은  내외는 설거지도 하고, 나는 아기  보느라 바쁜데 우리 남편만 막내아들 놀이하며 낮잠도 한숨 자곤 했었다. 우리 남편도 처가에서 저렇게 해주면  좋겠지만 일단 물리적 거리가 멀기에  년에 두세  가서 2 정도 자고 신세 지다 오는 처지에 운전을  시간씩 해주는 남편이 고맙고 미안해서 지금도 괜찮다고 여기기로 했다.


지금 같은 분위기 안에서 자란  아이들이 서는 더더욱 존중받는 며느리, 사랑받는 사위가 되면 좋겠다. 결혼을  한다고 해도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이왕  거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자기들끼리 즐기면서 살아가면 좋을 것이다. 나는 어디서 못된 시집살이를 배워먹질 못해서 못된 시어머니도 장모도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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