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식, 끝이자 시작
대모님과의 운명
세례식을 앞두고 미리 챙겨야 할 것 중 하나는 대부모님을 모시는 것이다. 대부모는 혈연관계가 아닌, 신앙 안에서 부모 역할을 대신하는 '신앙의 부모'이며 대자녀가 신자로서 바르게 성장하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예비신자반에서는 세례식 준비의 일환으로 약 한 달 전부터 대부모를 구해오라고 했다. 마땅한 사람이 없을 경우 성당에서 주선해서 적당한 사람을 찾아줄 테니 빨리 말해달라고 했는데, 내 마음속에는 혼자 찜해둔 분이 있어서 신청하지 않았다.
재작년 여름, 지역 도서관에서 진행한 글쓰기 교실에서 만나게 된 그분은 수업이 종료된 후 따로 만들어진 소모임에서 더 잘 알게 되고 가까워졌다. 글쓰기 교실에서 서로 잘 모르는 사이였을 때에도 친정어머니의 늦깎이 공부 도전에 대해 따뜻한 응원의 글을 쓰셔서 인상 깊었다. 글쓰기 모임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릴 때부터 성당에 다녔고, 가톨릭 관련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동네도 가깝고, 나이는 나보다 네댓 살 정도 많으면서 신앙심이 깊으신 분! 나의 대모님으로 모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넘칠 정도였다. 톡으로 물어보지 않고 일부러 만남을 기다렸다가, 나의 세례식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한 후 이렇게 여쭈었다.
혹시... 견진성사 받으셨어요?
대모님은 마치 무슨 말을 할지 알겠다는 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모님이 되어달라는 나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셨다. 오예!
세례식 전야
세례식은 주일 11시 교중미사 중으로 계획되어 있었고, 바로 전날인 토요일에 예비신자와 대부모가 함께 모여 연습을 했다. 시작이 저녁 7시였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 미리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다. 따끈한 우동과 돈가스로 배를 채우고, 우리 성당으로 대모님과 처음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이 마냥 설렜다. 나는 다른 성당에 가보지 않았지만, 요 근래 가족의 세례식과 첫 영성체식 등으로 지인을 초대해 보니 다들 우리 성당이 크고 멋지다고 칭찬해 주어 마치 내 집을 자랑하듯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오며 가며 첫 예비신자 교리반에서 만나 뵀던 동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모님은 내 글을 통해 우리 성당의 주임 신부님과 부주임 신부님에 대해 익히 알고 계셔서인지, 작은 농담에도 까르르 웃으며 '이 성당 왜 이렇게 재밌어요?' 하고 속삭였다. 나도 우리 신부님들의 입담이 좋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글을 통해 자랑하던 것을 실제로 보여줄 수 있어서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엄숙하고 진지하면서도 틈틈이 치고 들어오는 우스갯소리에 다 같이 웃으며 세례식 연습을 마쳤다. 집에 와서도 왠지 쉽게 잠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다 얕은 잠에 겨우 들었다.
드디어, 세례식
6개월 간의 예비자 교리 과정을 마무리하며 마치 졸업식과도 같은, 아니 입학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례식이 시작되었다. 어제 배운 대로 줄을 맞춰 나가니 ‘우리 가족 세례 전문’ 부주임 신부님께서 기름도 바르고 성수도 뿌려주셨다. 대모님께서 명동성당에서 사다가 '미사보'도 씌워주었다. 이마에 십자가 모양으로 기름을 바를 때에는 속으로, 오호 이게 말로만 듣던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인호'를 새기는 것인가? 하고 기대감이 차올랐다. 앞으로의 내 삶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보호막이 씌워지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긴장했는데 앞으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반복되다 보니 점점 여유를 되찾았다. 뒤쪽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와서 미소를 주고받기까지 하니, 행복이 전율처럼 온몸에 번졌다.
남편과 첫째 아이가 매주 받아 모시는 첫 영성체의 맛은 듣던 대로 밍밍한 쌀과자의 맛이었다. 그런데 그 맛을 음미하다가 그만, 주임신부님이 강조하셨던 '첫 기도'를 깜빡하고 말았다. 세례식 9일 전부터 하는 '9일 기도'에서 세 가지 지향을 정해 열심히 묵상했던 게 생각나서 신부님이 "기도를 깜박하신 건 아니지요?" 할 때 급하게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하필 그때 신부님과 눈이 딱 마주쳐서 그저 웃기만 할 뿐 차마 깜박했다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하느님의 용돈
세례식 때문에 평소보다 더 길어진 교중미사를 마치고, 축하하러 와주신 시부모님은 식당에 모셔다 드렸다. 며칠 전까지 독감을 앓았던 가족이 둘이나 있어서 전염을 막고자 식사는 각자 하기로 한 것이다. 첫째 아이는 근처 키즈카페에서 하는 친구생일파티까지 가야 해서 가족이 일단 뿔뿔이 흩어졌다. 평소 같으면 차로 식당에 가느라 바빴을 텐데, 우연찮게 걷게된 한적한 성당 앞 대로변 보행로는 노란 은행잎이 융단처럼 깔려있었다. 청룡영화제의 레드카펫 부럽지 않은 화사함이었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 우수수 떨어지는 노란 낙엽비는 마치 나에게 뿌려주는 축하 컨페티처럼 느껴졌다. 나는 두 아이의 작고 통통한 손을 잡고 즐겁게 걸어가며 외쳤다.
세례식 하고 나니까 너무 개운하다!
아이들은 덩달아 자기도 무엇을 해서 개운하다며 엄마를 흉내 내어 소리쳤다. 그렇게 맞잡은 손을 흔들며 신나게 걸어가는데, 저쪽에서 다가오는 두 분의 얼굴을 살펴보니 우리 바로 위층에 사는 노부부가 아닌가? 집에서는 꽤 떨어진 곳인데 이런 곳에서 두 분을 만나다니! 특히나 위층 할아버지는 늘 포마드를 멋지게 바른 듯한 헤어스타일로 다니셔서 우리끼리는 '멋쟁이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바로 아래 O층에 사는 이웃인데, 여기 어쩐 일이세요?"
두 분은 나를 잠시 못 알아보는 듯하시다가 아이들을 보고는 반가워하셨다. 언제나 똑같이 하시는 말씀. "어머, 얘(초1 둘째)가 이사 올 때 뱃속에 있던 앤 데 이렇게 컸네요!" 라고 하시며…
두 분이 어딜 다녀오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우리 성당 바로 앞이기도 하고 뭔지 모를 자신감이 차올라서 나는 두 분의 대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냅다 내 이야기부터 했다.
"저희는 여기 성당 다녀요. OO동 성당이요."
"어머나, 우리도 지금 성당에 다녀오는 길인데!"
"정말요? 저 방금 세례 받았어요!! 아하하하하"
같은 성당인가 하고 반색하며 이야기를 나눠보니 두 분은 예전 주소를 따라 OOO성당을 다녀오시는 길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거리상으로 걸어 다니기는 불가할 정도로 먼 곳인데, 날씨가 좋아 산책 삼아 걸으셨던 건지도 모르겠다. 난데없이 '천(주교)밍아웃'을 한 내가 민망할까 봐 그랬는지 두 분은 크게 기뻐하며 축하해 주셨다. 그리고 갑자기 멋쟁이 할아버지께서 지갑을 열더니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아이들에게 주셨다.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라'는 말에 둘째가 냉큼 받아 들었다. 축하와 감사 인사를 서로 연발하며 우리는 각자 가야 할 방향으로 헤어졌다.
아이들은 엄마의 붙임성 덕분에 용돈을 받았다며 그 돈을 곧바로 나에게 돌려주었다. 나중에 아이스크림 사 먹자고 말하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까 내가 봉헌금으로 낸 금액이 딱! 만원이었는데?! 평소에는 주머니 뒤져서 천 원 정도만 내곤 했는데 그날은 세례식도 있고 하니 평소보다 열 배나 튀겨서 나름 거금을 냈는데 이렇게 집에 가는 길에 다시 그대로 돌려받다니!
이것도 혹시 하느님이 주신 용돈인 걸까?
‘이렇게 많이 낼 필요는 없다. 허허허. 아까 감사헌금도 냈으니 이건 돌려주마. 축하한다. 그리고 앞으로 성당 열심히 다녀라.’ 하는 말씀이 느껴지는 듯도 했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성당이라는 낯선 곳. 천주교라는 낯선 종교의 세계에 발을 내딛으면서 겪는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기록하고 싶었다. 아직 신앙심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는 상태에서 성당을 다니기 시작한 나에게 어떤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면밀하게 관찰하고 싶었다.
성당을 다니면서 생긴 긍정적인 변화는 온 가족의 공통된 대화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는 것, 주말마다 성당에 가서 좋은 말씀도 듣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온다는 것, 또 우리 가정을 둘러싼 여러 복된 일들에 감사함을 느끼고 그것을 표현할 대상이 생겼다는 것 등이 있다.
연재를 하면서 좋았던 점은 꾸준히 내 주변을 살피고 글감으로 할 만한 이야기들을 수집하는 힘이 생겼다는 것과 성당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사진과 글로 남겨 개인적으로도 즐거운 기록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비신자인 지인들로부터 '성당 이야기가 흥미롭다', '나도 다시 성당에 다니고 싶어 졌다.'라는 소감을 전해 들은 것이 무척 보람 있었고, 신자인 독자들에게서는 '예비신자만이 쓸 수 있는 참신한 시각의 글이다.'라는 후기를 들은 것이 가장 뿌듯했다. 내가 연재를 시작하면서 어떤 농도의 글을 써야 할까 고민하며 색깔을 정할 때 딱 그 정도였으면 좋겠다고 여겼던 지점이 그 후기들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제 정식으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고는 해도 아직은 '신앙 어린이'에 불과하다. 이러한 내가 이제 감히 어떤 주제를 가지고 성당 이야기와 종교 이야기를 엮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 되어, 반년 간의 예비신자 여정에 대한 후기를 여기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동안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시고 공감해주신 독자분들께, 그리고 바쁜 저녁 시간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응원해준 가족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믿는 사람은 뭐가 달라?
이 글의 제목처럼 앞으로도 계속 의심하고 고민하며, 한 곳에 고여있지 않고 더 나은 곳을 향해 흘러나가는 신앙생활을 이어나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