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반지
신앙의 신비
예비신자 교리 중 수녀님께서 천주교의 7성사에 대해 설명해 주시던 날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7성사가 무엇인지 간단한 내용을 덧붙인다.
- 세례성사: 물로 씻어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 견진성사: 성령의 인침을 받아 신앙을 성숙시키고 교회 일원으로 봉사하게 합니다.
- 성체성사: 미사에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성변화되어 일치와 영적 양식을 줍니다.
- 고해성사: 통회와 고백, 보속으로 하느님과 교회와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 병자성사: 질병·노쇠 중 위로와 치유의 은총을 주며, 죽음을 앞둔 이뿐 아니라 수술·노환 등에도 받을 수 있습니다.
- 성품성사: 사제·부제·주교를 서품해 성사를 집전하고 교회를 섬기게 합니다.
- 혼인성사: 남녀가 하느님 앞에서 사랑과 생명을 나누는 거룩한 계약으로, 이혼이 아닌 무효만 인정됩니다. (출처 : 네이버 AI브리핑)
수녀님은 학창 시절에 친구 따라 성당에 다니다가 세례도 받았다. 그때 대모님께 선물로 받은 십자가는 가장 잘 보이는 거실 벽에 걸어두었다. 어느 날은 동네 용한 무당이 수녀님의 어머니께 어떤 용무가 있어 찾아왔다가, 십자가를 보고 두려워하며 저것을 치우라고 했다고 한다. 수녀님의 어머니께서는 '저건 내 딸이 성당에서 받아온 거라 마음대로 뗄 수 없다.'며 거절하셨는데 그때 마침 대문을 열고 여고생이었던 수녀님이 귀가를 했다. 무당은 수녀님을 보자 '무서운 사람이 왔다. 이마에서 빛이 난다.'며 허둥지둥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고 한다. 수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 영혼에 인호가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마에 새겨진 인호는 우리가 중간에 성당에 나오지 않거나 마음이 바뀌어도 죽을 때까지 남아있는 표식이라고도 하셨다. 그때 그 무당이 모르긴 몰라도 가짜 무당은 아니었던 모양이라며 웃으셨다.
교리 공부를 마치고 소모임에 가서는 봉사자님께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봉사자님의 친한 친구가 불교 집안에 시집을 가서 성당에 못 나오고 있었는데, 집안에 우환이 있어 굿을 하던 날 무당이 가족들을 둘러보더니 "저 사람은 여기 있지 못하게 나가라"고 했다고 한다. 세례 받는 게 진짜 인호가 새겨지기는 하는가 보다 하며 예비신자반 동기들이 모두 신기해했다. 봉사자님은 웃으시며 그 무당도 '진짜 무당'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가톨릭 신자가 되는 세례식 중에는 온갖 미신 행위를 끊어버리라고 하고 큰 소리로 다짐을 받는다. 점쟁이한테 가서 점도 보지 말고 타로점도 치지 말고 무당도 만나지 말라고 하는데, 그 무당이 마치 귀신을 본 듯 인호를 알아본다는 게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밌었다. 무당을 믿지 말아야 하지만, 인호를 알아보는 무당은 '진짜 무당'으로 인정받는 모양새가 말이다.
반지의 신비
내가 예비신자과정을 시작했다는 말에 가장 기뻐하신 건 시부모님이셨다.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 생일을 맞은 며느리에게 금 한 돈 값을 송금해 주시며, 금값이 더 오르기 전에 '18k 묵주반지를 사라'라고 하셨다. 회전반지는 고장이 금방 나니 피하도록 하고, 예쁜 묵주 반지는 명동성당 성물방에 많다더라는 고급 정보까지 주시며 말이다. 속으로 '묵주 반지가 예뻐 봤자지, 뭐.' 하며 인터넷에 묵주반지를 검색해 본 나는 그 다양함과 화려함에 깜짝 놀랐다.
어머님께서는 그 묵주반지가 정말 영험하다며 본인의 경험담을 들려주셨다. 30년쯤 전이려나, 원인 모를 병으로 몸져누우신 어머님께서는 걸음도 걷지 못할 정도로 위중하셨다. 내 짐작으로는 그때 병자성사(*위의 7성사 참고)를 받고 나서 점차 회복하셔서 성당에 본격적으로 다니신 듯하다. 그때, 어머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 주던 어떤 천주교 지인이 묵주반지를 낀 손으로 당신의 몸을 쓰다듬었는데 어머님께서는 그 손이 닿는 순간 온몸에 전기가 통한 듯 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웃음을 터뜨리며 너무나 간지럽다고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게 기도가 통했던 건지 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이후 건강을 점차 회복하셨다. 처음엔 없던 신앙심도 생겼으리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무튼, 내 묵주반지
집에서 명동성당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보니 나는 차일피일 묵주반지 구입을 미루었다. 온라인으로 그 큰 돈을 쓰는 건 좀 아닌 것 같고, 평소 반지나 액세서리를 즐기는 편도 아니어서 더더욱 그랬다. 어머님께서는 이후로 나를 만날 때마다 반지 구입 여부를 물으시며 금값이 더 오르기 전에 사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하셨다.
"세례 받고 나서 살까 봐요." 하는 게으른 며느리가 답답하셨는지, 안방에 숨겨두신 두툼한 묵주반지 하나를 꺼내오셨다. 절대 사지 말라고 했던 '회전형 반지'였다. 누가 준건지도 모르겠고 남자용 반지일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오동통한 내 검지손가락에 딱 편하게 잘 맞았다. 결혼반지도 꽉 끼는 불편함에 빼버린 지 오래인 나인데, 빙글빙글 돌아가는 묵주반지의 착용감이 꽤 좋아서 마음에 들었다. 속으로는 저번에 받은 반지값을 반납해야 하는 의문이 생겼지만 여쭤보지는 않았다.
묵주란, 천주교에서 기도를 할 때 사용하는 구슬 목걸이 같은 것인데 원래는 목에 걸 만큼 길다. 기본적으로는 10알씩 5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묵주기도'라는 기나긴 기도를 바칠 때 사용하는 성물이다. 이것을 좀 더 간단한 형태로 만든 팔찌가 '묵주팔찌'이고, 더욱 간단한 형태로 만든 게 바로 '묵주반지'인 것이다.
어머님께서 진작에 주신 가벼운 나무 묵주, 부모교리 시간에 구슬을 꿰어 직접 만든 묵주팔찌, 그리고 장롱에서 꺼내주신 묵주반지까지 다 갖추었지만 정작 나는 '묵주기도'를 다 외우진 못했다. 묵주기도 안에 들어가는 성모송과 사도신경, 주님의 기도 등을 부분적으로 외우긴 했지만 완벽하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세례식 때 축성받은 뒤로 손가락에 끼고 있는 묵주반지를 빙글빙글 돌리다 보면 왠지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든다. 검색하다가 알게 된 것인데, 김연아 선수나 아이돌 카리나도 묵주반지를 끼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든다며 반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나도 자꾸 하다 보면 묵주기도가 저절로 입에서 술술 나오는 경지에 이르려나? 그렇다면 그게 언제쯤일까?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조만간 시간을 내어 명동성당에 반지 구경을 가기는 가야겠다. 어머님의 염려와 달리 금값이 조오금 떨어지고 있다고 하니 금테크... 아니 묵주반지테크를 하러 갈 절호의 찬스이다. 반지값으로 받은 돈과 실제 지불하게 될 금액 사이의 남는 돈은 하느님이 주신 용돈으로 생각해도 큰 무리가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