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과의 인연

10년을 돌고 돌아

by 계쓰홀릭

그동안 성당에 다닌다는 사실을 가까운 지인 외에는 오픈하지 않았었다. 혹시 다니다가 그만두게 될까 봐서이기도 했고, 뭐라도 좀 이루고 나서 공개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의 세례식을 마치고서야 인★에 사진을 올린 것도 그래서이다.

아들 세례 받은 것 축하해!
근데 그 성당 신부님 혹시... 이 분 아니야?


SNS에 올린 세례식 사진을 보고 연락 온 30년 지기 친구가 보내온 메시지의 첨부파일을 확인해 보았다. 무려 10년 전, 기억도 가물가물한 신혼 초에 친구네 부부 혼인성사 때 증인으로 섰던 우리 부부의 사진이었다.


지금보다 한결 젊은 신혼부부였던 우리 넷 사이엔 낯익은 얼굴의 신부님이 서 계셨다. 헤어스타일은 조금 다르지만 입매와 눈매는 그대로이신 그분은... 이번에 우리 아들의 첫 세례를 주신 부주임 신부님! 정말로 10년 전 그분이 바로 이 분이었다!


2016년 초. 겨울. 하계동 성당 혼인성사

2015년에 결혼한 우리 부부는 이듬해 초에 결혼하는 친구네 부부 혼인성사에서 증인이 되어주었다. 나는 당시 비신자였지만 남편이 신자여서 크게 상관은 없다고 했다. 코트로 가린 뱃속에는 7개월 된 아기가 있었다. 나도 결혼할 때에 친한 친구네 부부가 증인을 서주었고 그에 대해 무척 고마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증인이 되어 그때에 받은 마음을 다른 성당에서 갚아줄 수 있어 기뻤다. 절차 같은 것은 기억나지 않고, 행사 끝나고 먹은 골목집 쌈밥이 맛있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사진을 보고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공유하였다. 그곳이 어디였는지 물으니 당시 친구네 본가가 있던 하O동 성당이라고 했다. 찾아보니 정말 그 시기에 우리 신부님이 그곳에서 보좌신부 생활을 했던 기록이 있었다. 그 사이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나는 두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후에야 비로소 우리 동네 성당의 문을 두드렸다. 우리 가족이 성당생활을 시작하기 불과 한두 달 전에 그 신부님이 우리 성당의 부주임 신부님으로 발령받아 오셨다는 사실이 그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이들도 모두 손뼉을 치고 폴짝 뛰며 재미있어했다. 꼭 다음 주에 신부님께 말씀드려 보자고도 했다.


친구네 부부의 혼인성사에서 증인이 되어주고 있을 때 뱃속에 있던 아이가 열 살이 되어 같은 신부님께 세례와 첫 영성체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둘째가 첫째보다 더 일찍 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그 역시 같은 신부님께서 주셨다는 게 꼭 누가 정해준 인연처럼 느껴진다. 곧이어 나까지 같은 성당에서 세례를 받을 테니 우리 가족과 뭔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2025년 여름. 두 아이의 세례와 첫 영성체

둘째가 세례 받은 것만으로도 벅차게 기쁘던 저녁, 오랜 친구로부터 전해받은 사진은 잊었던 기억을 소환했다. 나는 기억에도 없는 그때 신부님의 얼굴을 친구는 어떻게 기억했을까? 결혼 전에 혹시 하O동 성당을 열심히 다녔던 거냐고 물으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니라고 한다. 혼인성사 때 처음 뵌 신부님인데, 생김새가 어쩐지 뇌리에 박혀서 내 아이의 세례식 사진을 보고 '이 신부님 어디서 봤더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친구의 눈썰미이기도 하다.


서울대교구의 성직자 현황을 보면 추기경 1명, 주교 3명, 몬시뇰 6명, 신부 994명, 서울대교구의 본당 수는 233개입니다. (출처 : 천주교 서울대교구 홈페이지)

서울대교구 내에서도 233개나 되는 많은 성당, 많고 많은 신부님 중에 하필 그때 그 신부님이 우리 아이들의 주일학교 어린이미사를 맡으신 게 너무나 신기하다. 이것도 다 하느님의 뜻인 걸까? 가끔 뜻밖의 장소에서 우연히 오랜 친구를 만나거나, 건너 건너 지인과의 인연을 발견할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이거 트루먼쇼 아니야?

만약 이게 정말 트루먼쇼라면, 10년 전에 지나가는 단역에 불과했던 신부님이 그사이 연기력이 늘어 이제 꽤 비중 있는 인물을 맡게 된 것 같다며 남편과 우스갯소리를 나누었다. 만약 이게 정말 트루먼쇼라면 총감독은 - 비록 영화 속에서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하느님인 걸까? 나는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감동과 깨달음을 줄 만한 리얼리티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고 봐도 될까?


주위에서는 얼른 신부님께 가서 말씀드리라고 재촉했지만, 어쩐지 먼발치에서만 뵙게 되고 따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없어서 아직이다. 매주 신부님이 강론을 마치고 본당을 빠져나가실 때나 복도에서 스쳐 지나갈 때면 언제나 찬스를 노리고 있다. 신부님의 유쾌한 에피소드에 내 지분이 조금 생기길 욕심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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