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信心)은 미모 순이 아니잖아요
신부 하기 좋은 얼굴
우리 성당의 부주임 신부님은 입담이 좋으시다. 어린이 미사를 뒤에서 듣고 있다 보면, 아이들의 반응도 좋지만 어른들의 웃음 코드를 겨냥한 유머도 많이 구사하시는 걸 알 수 있다. 지난봄 어느 강론 시간에는 외모에 관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외모가 너무나 훌륭하고 아름다우면 괜히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본인의 외모에 대한 에피소드를 꺼내셨다.
신학대 다니던 시절, 교수님이신 신부님과 식사를 하는데 그 자리에 무지하게 잘 생긴 신부님도 계셨어요. 정말로 영화배우처럼 미남이셨단 말이에요. 교수님께서는 그 신부님께 "어딜 가나 조심해라. 특히 여자 신도들하고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마라. 구설수에 오른다."며 조언을 해주고 계셨어요. 저는 옆에서 가만히 들으며 밥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는 참... 신부 하기 딱 좋은 얼굴이다!"
(신자들 웃음)
이때 웃음을 터뜨린 자리는 어린이들이 앉은 앞쪽이 아니라 대부분 뒤쪽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신부 하기 딱 좋은 얼굴'이라는 말이 그저 칭찬으로만 들렸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전까지 나는 우리 신부님의 외모가 어떻다는 것에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당시 주임 신부님은 칠순이 다 되신 분인 데다 키가 작으셨기 때문에 함께 다니는 부주임 신부님은 훨씬 젊고 키가 크시고 머리숱이 많으시다는 것만 인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멀리서 볼 때 우리 부주임 신부님이 사제복을 입은 모습이 썩 잘 어울렸기 때문에 '아, 신부님도 허우대가 멀쩡하니까 저렇게 카리스마가 느껴지고 좋네.'라고 여기며, 왠지 신부님의 외모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럽게 느껴져서 입밖에 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스스로를 '조금 덜 생긴' 쪽으로 분류하시는 자학(?) 개그를 들은 후, 조금 더 가까이서 신부님을 뵐 때마다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게 되었다. 듣고 나서 보니 정말 피부도 별로 깨끗하지 않고, 눈도 조금 작으면서 쪽 찢어진 듯하게 느껴졌다. 그전에는 몰랐는데 말이다.
미모의 함정
학창 시절, 수려한 외모를 가진 많은 친구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화려한 꽃에 꿀벌이 모이듯, 예쁘고 멋진 모습에 끌려 모인 주변인들로 인해 다양한 사건 사고에 휘말리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노는 걸 좋아하는 선배나 친구들에게 발탁되어 함께 어울려 다니다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전학을 가기도 하고, 이성이 다니는 학교에 예쁜 사진 같은 것이 거래되어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은 커녕 삐삐도 절반 정도만 가지고 있을 때여서 실제로 인화된 사진이 돈다는 것은 그녀 주변에 파파라치가 있거나, 측근을 통해 유출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들 사이 연예인이나 다름없던 그 친구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많은 학생들의 관심사였고, 그 주변에서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더러는 주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학업에 전념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멋진 외모를 가진 배우들이 일류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을 알면 나도 그렇지만 대중들도 더 관심을 갖고 환호하는 듯하다.
새 신부님의 등장
젊고, 키가 크고, 머리숱이 많은 우리 부주임 신부님의 포지션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8월 말에 예전 주임 신부님의 이임미사를 준비하면서부터 이미 신자들은 '새로 오실 신부님이 누구실까'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발령을 담당하는 서울대교구 부서에서 관계자를 통해 며칠 먼저 알아낼 수 있는 모양인지, 성당을 오래 다닌 어르신들 사이에서 정보가 새어 나왔다. 나도 딸 친구 엄마를 통해 어깨너머로 그분의 사진을 구경했다.
그분은 우리 부주임 신부님보다 더 젊어 보이고, 키도 덩치도 크고, 머리숱이 많았다.
근데... 너무 젊지 않아요?
기존 신부님은 할아버지 신부님이셔서 기 센 어르신들 기강을 꽉 잡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엔 너무 젊은 신부님이어서 걱정하는 마음과 기대하는 마음이 공존하는 분위기였다.
마침내 새로 발령받은 주임 신부님이 오신 날, 부주임 신부님께서 환영의 꽃다발을 전달하는 모습을 성당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었다. 나도 어떤 분이 오셨을까 궁금한 마음에 일부러 사진첩에 들어가서 사진을 열어본 것이다. 실제로 부주임 신부님보다 두 살 더 어리다고 했다.
새로 오신 주임 신부님은 그 주 어린이미사에 오셔서 본인을 소개하셨다. 맑은 목소리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처음 주임으로 발령받은 본당이 이렇게 큰 곳이어서 조금 당황스럽지만 열심히 해보겠다는 포부를 밝히셨다.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니 길에서 자기를 발견하면 인사해 달라고도 하셨다. 사진으로만은 알 수 없었던 밝고 선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신부가 되기 위해 태어나신 분 같은 느낌이랄까?!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 후 오며 가며 만나는 - 특히 예비신자 교리 때 뵙는 - 어르신들은 거침없이 두 신부님의 외모에 대한 평가를 나누셨다. 새로 오신 신부님 '얼굴이 미남이고 훤칠하다'는 이야기부터, 환영식 때 온 가족 중 형님도 신부님이신데 그분 보다 '아우가 인물이 훨씬 더 좋다'는 비교까지...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나도 한마디 보태야 하는 분위기에서 마지못해 '목소리가 정말 좋으시더라고요.'라고 했다.
어느 주일 교중 미사에 참석했는데, 예전 신부님의 말씀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에 비해 새로 오신 신부님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디서 성우 학원이라도 다니신 건지, 성경 구절을 읽으실 때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목소리를 서로 다른 톤으로 들려주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둘째 아이 세례식 이후, 측근의 제보로 알게 된 부주임 신부님과 우리 가족에 관한 어떤 신기한 사연이 있다. (*그 사연은 다음 편에 연재 예정) 예비신자 교리 때, 옆에 계시던 다른 반 봉사자님께 그 이야기를 들려드렸더니 너무 재밌는 인연이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때도 지금처럼 못생기셨던가요?
나는 순간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네?"하고 되물으며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랬더니 그분은 "아니, 부주임 신부님이 스스로 워낙 자기가 못생겼다고 하시니까... 편하게 말씀하시니까 우리도 그렇게 말하는 거지요."라고 변명하듯 대답하셨다. 예전에 나이 드신 신부님과도 잘 맞춰서 생활하신 훌륭한 분이시니까 두 살 어린 주임신부님과도 잘 지낼 게 분명하다고 두둔하는 말도 덧붙이시면서 말이다.
잘 웃지는 않으시지만 퉁명한 말투 너머 따스함을 간직하신 분. 아이들과 친근하게 잘 지내시면서, 아닌 건 따끔하게 야단치기도 하시는 분.
요즘 보기 힘든 마성의 '츤데레'력을 가지신 우리 부주임 신부님은 이제 얼평을 멈추셔야 한다. 물론 신부님은 자존감도 높으시고 본인을 충분히 사랑하셔서 그런 농담을 하신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잘 생겼다는 말은 평생 들어도 질리지 않고 짜릿하기만 하다는 한 미남배우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신부님도 사람이신데, 신자들이 신부님 없는데서 쉽게 ‘못생겼다’고 말하고 다니는 게 좋으실 리가 없지 않은가?
멋진 우리 신부님,
외모를 웃음의 소재로 삼지 마시고,
매력적인 강점을 어필해 주세요!
웃자고 하신 말씀이었을 텐데, 그 덕에 많은 신자들이 편하게 신부님의 외모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논하는 현실이 나는 마뜩잖다. 오히려 아이들은 신부님이 잘생겼네 못생겼네 말하지 않는데, 이럴 때 보면 어른들이 더 철이 없는 것 같다.
신심(信心)은 미모 순이 아니잖아요? 신부하기 딱 좋은 얼굴을 가지신 우리 부주임 신부님께서 이제는 농담처럼일지라도 본인을 미남이라 하고 다니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