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내 몸이다
지난 9월은 첫째 아이의 세례식과 첫 영성체가 있어 주말마다 준비할 것도 많고, 성당에 평소보다 자주 가게 되었다. 세례와 첫 영성체가 무엇인지는 앞서 13화에서 언급 적이 있어 링크로 첨부하겠다.
첫 영성체 준비
첫 영성체 때에 부모가 준비해야 할 것은 대략 다음과 같다.
복장 (남아 - 정장과 구두, 여아 - 흰 드레스나 원피스 + 미사포 + 흰 신발), 기도초, 헌금
우리 성당에서는 기념으로 사진을 예쁘게 찍어 액자로 만들어주는 전통(?)이 있다고 해서 8월에 미리 따로 복장을 갖춘 채 모여서 촬영하는 날이 있었다. 외부 사진작가를 불러서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당일에 보니 성당 사진촬영 봉사자님께서 정성껏 찍어주셨다. 그리고 첫 영성체 전 일주일 간 로비에 아이들이 써낸 성경필사(마르코복음)와 함께 사진 전시 기간을 가졌다.
우리 아이는 세례도 받지 않은 상태였는데, 영성체 전에 세례부터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 앞서 세례식이 잡혔다. 첫 영성체반 아이들 중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아이들이 그 대상이었다. 지난번 둘째 아이 세례식 때 눈물이 다 나와서인지, 이번에는 직계가족도 모두 뒤쪽에 모여 앉아서 직관하지 못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때 만큼의 감흥은 덜했다.
대신 첫 영성체를 위해 3월부터 6개월간 아이가 땀 흘려 이룬 것들이 떠올라 이날은 또 다른 감회가 몰려왔다.
여름 방학 중 채워야 했던 10회의 새벽미사는 함께 간 친구(역시 13화에서 언급) 덕분에 무사히 다닐 수 있었다. 지유(가명) 엄마는 우리 딸의 대모도 흔쾌히 되어주시고, 새벽미사마다 우리 모녀를 태우러 와주어서 생각보다 훨씬 편하게 끝낸 것이다. 우리에겐 세상 어떤 알람보다도 강력하게 서로의 아이들을 깨울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 있었다
OO이 지금 성당 간대
마르코복음 필사는 두툼한 공책 같은 것에 성경을 옮겨 적는 것인데 열 살 아이가 적기에 줄 간격도 좁은 편이고 장수가 꽤 많았다. 처음에는 매일 한 장씩 쓰면 금방 하겠다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매일 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름방학 즈음부터 매일 네 쪽씩 쓰느라 아이도 나도 힘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친구들은 부모님이 슬쩍 몇 쪽을 도와주시기도 했다고! 우리 아이는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제출하는 날 아침에 겨우 스스로 마무리했다. 나도 예비자반에서 똑같은 부분을 필사했는데, 손은 좀 아팠지만 그 덕에 마르코복음의 전체적인 내용을 한 번 꼼꼼하게 훑어볼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었다.
기도문은 매주 성당에 갈 때마다 외워서 검사받고, 새벽미사 때도 틈틈이 외워가서 마지막 '저녁기도'만 빼고 모두 통과되었다. 어른들도 힘겨워하는 기도문 외우기를 씩씩하게 해내는 모습이 대견했다.
세례 받기 전에 '찰고'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신부님과 일대일로 면담하는 것이다. 단순히 면담이 아니라 기도문 같은 것도 임의로 출제를 하셔서 일종의 테스트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당일에 어떤 행사가 길어져서 찰고가 끝나고 어린이미사가 시작된 후에 겨우 도착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이를 들여보내고 사정을 말씀드렸는데, 신부님께서 아이를 미사 후에 따로 불러 찰고를 진행하시며 따끔하게 야단을 치셨던 모양이다. 요즘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내 아이도 크게 야단맞아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신부님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전해 들었다. 그 이야기를 하며 또 우는 아이를 보니 나도 마음이 아프고, 늦게 들여보낸 것에 대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아이가 겪어야 할 과정이고 그사이 마음이 더 단단해졌다고 믿기로 했다.
드레스는 성당에서 빌릴 수도 있지만 조만간 있을 피아노 콩쿠르도 있고 해서 ㅋㅍ으로 저렴하게 구입했다. 흰 구두는 딱히 신을 일이 없을 것 같아서 하얀 실내화에 리본을 달아 신겼고, 미사포는 대모님이 선물해 주셨다. 기도초는 첫 영성체반에서 단체로 캘리그래피 초를 주문해서 아이의 이름이 새겨진 것으로 받았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고, 드디어 첫 영성체식이 거행되었다.
첫 영성체식
멋진 복장을 갖춰 입은 아이들은 미사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식순을 익히고 자리 배치를 받았다. 천주교 신자이신 시부모님께서도 축하해 주러 오시고, 아이들 못지않게 내 마음도 설렜다.
초를 들고 본당 대성전으로 걸어 들어오는 아이들의 모습은 - 식상한 표현이지만 - 마치 천사와도 같았다. 가족은 뒤쪽에 앉아야 해서 아이들을 가까이서 볼 수는 없었지만 나중에 전해 받은 사진으로 그 모습을 남겨본다.
첫 영성체 후기
첫 영성체는 특별한 행사이기 때문에 얼마 전 새로 부임하신 주임신부님도 함께 하셨다. 그동안 앞에 나가 축복만 받던 아이들이 가장 궁금했던 것은 아마도 '영성체의 맛'이었던 모양이다. 우리 가족 중에 유일한 신자였던 남편이 영성체를 받아 모시고 돌아오면 항상 아이들은 "맛있어?"라고 묻고는 했다.
신성한 분위기 속에 첫 영성체를 받아 모신 아이들을 둘러보며 주임신부님이 물으셨다.
"첫 영성체를 받은 소감이 어때요?"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맛있었어요!"라고 말해 어른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주임신부님께서는 본인이 어렸을 때 처음 영성체를 받고 기도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영성체를 처음 받고 하는 첫 기도이기 때문에 하느님이 특별히 더 그 기도에 귀 기울이고 잘 들어주신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말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시면서.
저는 여러분 만할 때 첫 영성체를 받고 기도를 이렇게 했어요. 우리 아빠처럼 좋은 사람, 좋은 아빠가 되게 해 달라고요. (신자들 일동 웃음) 그런데 하느님은 정말로 그 기도를 들어주셨어요. 결혼은 할 수 없지만, 사제가 됨으로써 많은 신자들에게 '신앙의 아버지'가 되게 해 주신 거죠. (일동 감탄)
우리 아이는 어떤 기도를 했을까? 물어보았지만 비밀이라며 알려주진 않았다. 또래보다 속 깊은 소리를 하곤 해서 인생 N회차로 의심받는 딸아이기에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비밀을 지켜주기로 했다.
누나를 따라, 꼭 가지 않아도 되는 새벽미사를 몇 번이나 따라간 막내는 자기가 먼저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 나이가 되지 않아 먹어보지 못한 '영성체의 맛'이 무척 궁금한 모양이다. 무슨 맛이냐고 누나에게 물으니
"별 맛은 안 나는데 약간 달콤하고 얇은 쌀과자 같아. 암튼 맛있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들이 성경필사도 지금부터 미리 시작한다고 호들갑 떠는 걸 말렸다. 2년 뒤에는 마르코복음이 아니라 다른 것이 될 수도 있고, 지금도 글자 몇 자 쓰는 걸 괴로워하는 아이가 금세 질려서 성당에 안 다닌다고 할까 봐 걱정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기어이 엄마가 쓰다가 만 '잠언' 필사 한쪽을 끄적여본 아들... 나중에 진짜 해야 될 때를 위해 에너지를 좀 아껴두렴~!
정성을 다해 6개월간의 여정을 마치고 첫 영성체 식을 치른 서른여 명의 아이들을 축복해주고 싶다.
아이들의 앞날에 평화가 함께하기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