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으로 얻은 칭찬 도장 두 개
우리 성당의 경우 어린이미사는 매주 토요일 오후 4시에 있다. 주말이면 전국 각지로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성당에 다닌 이후로 많은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 금요일 밤에 출발해서 토요일 점심까지 먹고 성당으로 바로 오거나, 토요일 저녁에 출발해서 일요일에 돌아오거나 하는 식으로 대부분의 일정을 1박 2일로 짧게 잡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일요일 아침에는 나의 예비신자 교리까지 있어서, 여행을 계획한 주에는 미리 화요일 저녁에 직장인반 수업을 들어두어야 했다. 그래도 토요일에 어린이미사를 가면 아이들이 2시간 정도는 부모와 떨어져 미사 및 교리 공부를 하고, 든든하게 간식도 챙겨 먹일 수 있으니 미사 시간을 은근히 기대하게 되었다. 옆에서 조잘대는 아이들 없이 뒤쪽에 앉아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면 집중도 잘되고 재미있었다.
가족미사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 미사를 맡고 계신 부주임 신부님께서 갑자기
"뒤에 앉아있는 부모님들도 다 앞으로 나와서 아이들 사이에 앉으세요!"라고 하셨다.
아이들만 성당에 넣어두고 밖에서 노는(?) 보호자들을 보신 모양인지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생각해 왔던 '가족미사'를 가끔 불시에 할 테니 어디 가지 말고 있으라고 하셔서 우리는 마치 야단이라도 맞은 듯한 기분으로 아이들 자리에 갔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가까이 오자 기뻐하며 손짓했다. 보호자 없이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는 나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도 하셨다.
이후 가족미사가 있으면 아이가 둘이라 남편과 한 번씩 번갈아가며 이쪽저쪽에 나눠 앉았다. 1학년인 둘째는 거의 제일 앞쪽에 앉고, 3학년인 첫째는 조금 더 뒤쪽인데 친구들이 많아서 각각 장단점이 있었다. 그날은 남편이 둘째와 함께 맨 앞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빠찬스?
일련의 순서대로 미사가 진행되고, 신부님께서는 강론을 하시며 아까 나온 성경구절 중 몇 가지로 퀴즈를 내겠다 하셨다. 몇 번인가 재미있는 퀴즈를 내시기도 했고, 아이들은 상품으로 과자 같은 것을 받고는 해서 퀴즈를 낸다고 하면 반응이 뜨겁다. 신부님께서 그날 내신 퀴즈는 방금 들은 내용으로 바로 대답할 수 있는 것이어서 많은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내 주변의 아이들은 손부터 들고 나서 나에게 "답이 뭐예요?"하고 속삭이며 물어왔다. 내가 눈치 없이 답을 알려주었는데 신부님이 "부모님들 알려주시면 안 됩니다!"라고 소리치셔서 뜨끔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와 동시에 앞쪽에 앉은 우리 둘째가 지목을 받았다.
조금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이가 뭐라고 대답을 하자, 신부님께서는 "정답!"이라고 외치셨다. 그러고는 아이에게 혹시 옆에서 아빠가 알려주신 것은 아니냐고 물어보셨다. 성당 안은 시끌벅적했지만, 어색하게 뒤를 돌아보는 남편과 눈이 마주친 내 마음은 갑자기 무척 복잡해져서 마치 MUTE 버튼을 누른 것처럼 고요하게 느껴졌다. 분위기상 아빠가 알려준 게 맞는 것 같은데... 과연 우리 아이가 양심을 지켜낼 것인지 아닌지 긴장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아까보다 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양심 고백을 했고, 신부님은 다른 아이에게 기회를 주셨다. 아... 집에서는 개구쟁이지만 밖에서는 모범생으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아이인데, 기특하기도 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남은 미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뒤통수만 봐도 상심한 아이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지금 눈물이 쑥 나올 것 같겠지?
울면 어떡하지?
'미사 마치면 잘했다고 칭찬해 줘야지... 아까 못 받은 과자도 그냥 사줘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사가 모두 끝난 후 신부님은 다시 마이크를 잡으셨다.
"맨 앞에 앉은 1학년 친구? 이름이 뭐죠? 아까 정직하게 말한 상으로 칭찬도장을 두 개 찍어주겠습니다. 앞으로 나오세요."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기쁨통장’을 가지고 나갔다. 신부님께서는 약속대로 도장을 두 개 찍어주며 아까 용감하게 잘 말했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아이는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달려와서 품에 안겼다.
아이들이 교실에 교리를 들으러 간 사이, 남편과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아들이 울 듯 말 듯 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신부님이 예리하게 캐치하셔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신 것 같았다. 상품이 욕심나기도 했을 것이고 마음이 들켜 무안하기도 했겠지만, 양심껏 고백한 것에 대해 따로 칭찬해 주셨기 때문에 아이는 앞으로 또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 때 양심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 번 더 챙겨주셔서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진실의 총각
큰 아이네 반 교리 공부를 마칠 즈음에 간식을 배부하는 봉사활동이 있어서 주방으로 내려가는데 둘째가 졸래졸래 따라왔다. 마침 지나가던 신부님과 마주쳐서 인사를 하며, 둘째도 인사를 시켰다. 아까의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인사라도 드려야 하나 생각하는데 신부님께서는 아이를 알아보고 이렇게 부르셨다.
어이~ 진실의 총각!
아이는 쑥스러우면서도 좋은지 상기된 얼굴로 몸을 베베 꼬며 배시시 웃었다. 이후 한동안 집에서 아이가 할 일을 미루거나 잔소리 들을 행동을 하면 우리는 자주 "어이~ 진실의 총각이 왜 이러지?"하고 써먹었는데 어느 순간 놀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만두었다. 아름다운 양심의 별명인데 우리가 자꾸 불러서 그 순수함을 훼손시키면 안 되니 말이다.
나는 과연 지나온 삶을 진실되게만 살았는가? 순도 100% 양심적으로 살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는 없다. 대체로 그렇게 살려고는 했지만, 유년기부터 지금까지를 돌이켜보면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되는 부분도 있고 어디 가서 말하기 민망한 양심 가책의 순간들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가 순간의 욕심에 눈이 멀어 거짓을 말하고 보상을 받았다면 당장은 괜찮을 수 있겠지만 점점 그 괴로움이 커졌을 게 분명하다. 신부님이 부모님에게 주의를 주기 전에 이미 아빠에게 정답을 들어버렸고, 바로 손을 번쩍 들고 있었는데 마침 지목을 받은 그 기막힌 타이밍! 평소에는 아무리 손을 들어도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왜 지목을 받아서!! 짧은 순간 엄청난 갈등을 하게 되었을 1학년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직 속마음을 잘 감추지 못하는 어린이여서 표정에 그 마음이 다 드러났을 텐데 그것을 눈치채고 아이가 양심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신부님께 큰 감사함을 느낀다.
아…! 어쩌면 하느님이 주신 기회일지도?
양심 고백의 후련함과 기쁨을 알려주신 그 분께.
아이의 삶에서 또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양심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시기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고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