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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월(丹月) 박경희, 그녀의 붉은 달빛에 물들다.

문래도서관 '문학한상차림' 참여후기

by 계쓰홀릭

문래도서관에서 마련한 ‘문학 한상차림’ 시리즈의 첫 문을 연 것은 박경희 작가였다. 상주작가 프로그램의 글쓰기 수업을 통해 몇 달째 이런저런 글을 열심히 써내고 있는 우리 수강생들에게 조하연 작가님은 특히 이 한상차림과 그 이전에 있는 ‘미니합평’에 참여할 것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이미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문래도서관에 가서 뭘 배운다고 육아에 공백이 숭숭한데 일요일 오후에까지 나간다고 하려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내 글에 딱 맞춤인 합평과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하고 괜한 눈치를 보며 집을 나섰다.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그런 마음은 사라져 버리고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미리 도착해 박경희 작가님의 작품을 몇 권 읽어보려고 찾아보았는데 청소년 소설부터 에세이까지 작품이 굉장히 많아서 놀랐다. 제목만 훑어보고는 ‘혹시 북에서 오신 작가님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인간극장’에 나오는 멋쟁이 중견배우 같은 복장으로 나타난 작가님은 외모만큼이나 시원시원하고 호탕한 합평을 해주었다. 작년에 쓰다가 뒷부분을 나중에 마저 쓴 내 어설픈 소설도 소설 다운 구성을 가지고 있고, 이중으로 직조하듯 신경 써서 써 내려간 흔적이 보인다고 했다. 다른 분들의 글도 함께 훑어보며 합평을 공유했다. 작가님은 우리가 모두 흙 속의 진주처럼 재능을 가지고 있다며 응원의 말로 합평을 마무리했다.

합평이 끝나고, 5층 공간마루에서 열린 북토크에는 미리 신청하지 않고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 사람이 더 많았다. 40대가 넘어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분들의 이야기는 알 듯 모르게 나에게 위로가 되는데, 작가님이 방송작가로 일하다가 처음 장편소설을 출간한 때가 정확하게 내 나이와 같았다.


꿈을 꾸는데 늦은 나이는 없다.

그녀는 방송작가로 바쁘게 일하고, 유명 인사들과 인맥이 생기는 것도 매력 있었지만 365일 내내 1000장이 넘는 원고를 쓰는 생활에 점점 지쳐갔다. 열심히 쓴 대본이 1회성 방송으로 끝나고 휴지통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을 보면 마음이 쓰라렸다고 했다.

‘내 이름 석 자가 작가로 박힌 나만의 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기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그녀의 사춘기 아들들이 한창 속을 끓이고 있었다. 또 마침 소년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에게 글쓰기 수업을 해 줄 기회가 생겨서 학교 밖 청소년들의 문제를 다룬 첫 소설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잘 쓸 수 있는 소재로 써야 한다.

첫 책을 출간하고, 그 책을 인상 깊게 보신 탈북청소년들의 ‘하늘꿈중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연락을 주셨다. 처음에는 직접 인터뷰를 따고 르포 형태의 글을 쓰려고 했으나 아이들이 마음을 잘 열지 않아서 <박경희 작가와 함께 하는 인문학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고 한다. 거기서 작가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북한 청소년들의 생생하고 마음 아픈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잘 모르던 세계를 다룰 때에는 많은 자료 조사가 필요하다.


인연이 닿아 나에게 오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첫 책 출간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공들여 쓴 첫 원고를 유명한 출판사의 ‘제1회 청소년문학상’에 투고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분명히 내 소설이 더 재밌는데 왜 떨어졌지’ 생각하며 술을 마셨다는 대목에서 웃음이 나왔다. 왜냐하면 그때 1등을 했던 작품은 나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유명한 배우들을 주연으로 영화화되기까지 했던 아주 유명한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술을 마시며 작가님을 위로해 주던 한 후배가 마침 자기네 출판사에서 청소년 소설을 내려고 찾고 있었다며 원고를 보내보라고 했다. 그것이 기회가 되어 그녀는 본격 소설가가 된 것이다.


여러 번 떨어지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더 많은 기회를 찾아봐야 한다.

인맥과 기회도 좋지만, 그러한 행운을 거머쥐려면 내가 우선 준비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작법서에서 본 듯한 팁들이지만 생생하게 겪은 경험으로 직접 들으니 마음에 와닿는 정도가 달랐다. 경기도 양평군 단월(丹月)면에서 태어나 붉은 달의 열정을 가진 박경희 작가가 두 시간가량 쏟아내듯 들려준 그녀의 인생 이야기는 작가가 되고 싶은 나의 작은 꿈에 붉은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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