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필기장

버거맨, 그곳에선 편안하시길

영철버거 사장님, 굿 굿바이.

by 계쓰홀릭


고려대생은 아니지만 고려대학교 앞에서 한 학기 하숙을 한 적이 있다. 나는 1학년, 언니는 4학년 때였다.


언니를 따라가 고대 명물이라는 영철버거를 한 번 맛본 후로도 딱히 단골은 아니었고, 심부름으로 몇 번 포장해 간 게 다였다. 영철 사장님이 아무리 친절하게 버거를 내주셔도 나는 고대생이 아니니 친해져 봤자 뭐 하겠어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커다란 철판에 양배추와 고기를 쉼 없이 볶으시면서도 늘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던 영철 사장님의 가게는 언제나 손님들로 붐볐다. 만드는 과정을 보면 별 것 없는 것 같은데, 고기보다 야채가 훨씬 많고 기름 주룩 후추 톡톡이 전부인 것 같은데,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육즙이 터지는 것 같은 착각. 그게 영철버거의 매력이었다. 고작 천 원에 이만큼 푸짐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고작 천 원이라는 가격 때문인지 돌아서면 배가 꺼지는 기분. 그래서 더 부담 없이 식사 사이 간식으로 사 먹기에도 딱 좋은 그런 음식이 나에게는 영철버거였다.


월드컵으로 대한민국이 내내 들썩거리던 여름이었다. 16강에 오르면 햄버거가 1600원! 8강에 오르면 피자 한 판이 8천 원! 하는 식으로 대한민국 축구팀의 성적에 따른 이벤트가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에이 ~ 말도 안 돼. 16강이라고?' 하다가도 연이어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는 국가대표 축구팀에 열광하며 축제 같은 매일을 즐겼고, 대기업에서는 앞다투어 새로운 이벤트를 기획했다.


나는 대학 신입생다운 패기를 자랑하며 매 경기를 각기 다른 장소에서 응원했다. 스페인을 누르고 4강에 진출하던 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학 친구들과 열띤 응원을 하고 뒤풀이까지 마친 나는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채 안암역에 내려 하숙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영철버거에서는 경기 승부에 따라 가격 할인 이벤트 같은 것을 벌였지만 매번 나의 귀가 시간과 맞지 않아 번번이 놓치곤 했다. 8강을 하던 날은 800원에 판매하거나 16강이던 날은 선착순 160개를 무료로 나눠주거나 하는 영철버거의 이벤트. 그날은 왠지 아직 내 몫이 남아있을 것만 같아서 영철버거 앞에 들러보았다. 사장님이랑 친하지는 않아서 먼발치에서 이벤트 여부만 확인하고 끝났다 싶으면 그냥 집에 가면 될 일이었다. 고려대 앞 골목골목에서는 월드컵 4강 진출의 기쁨이 아직도 흥청망청 흘러넘치고 있었다.

박스종이에 매직으로 휘갈겨 적어둔 이벤트 내용은 '대한민국 4강 확정! 선착순 400명 영철버거 무료 증정'이었고, 마침 고려대학교의 상징이기도 한 빨간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이 차례대로 무료 버거를 받아 들고 있었다. 고려대 앞에 살지만 고려대생이 아닌 나는 그날 입은 빨간 티셔츠의 힘 덕분인지 용기 내어 그들 뒤에 한자리 차지하고 줄을 섰다. 단골도 아닌데 공짜로 받아도 되려나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과 함께였다. 영철아저씨는 381, 382, 383,... 카운트를 하며 즐겁게 하나씩 만들어주고 있었다. 왜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하는지... 슬슬 불안하던 내 바로 앞에서 그만 400명이 마감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사장님과 눈이 마주치자 머쓱하게 웃으며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아, 저 좀 전에 많이 먹고 와서요.. 괜찮아요."

그러고는 공짜여서 줄 선 것처럼 보이는 게 민망해 지갑에서 꺼낸 2천 원을 내밀며 말했다.

"두 개 포장해 주세요. 언니랑 먹게요."


영철사장님은 나와 2천 원을 번갈아 보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자, 이 아가씨부터 열 명 추가요!
무료 버거 아홉 명 더 여기 줄 서세요.

분명 배고프지 않았는데, 눈앞에서 다시 조리되는 모습을 보며 거짓말처럼 군침이 돌았다. 내가 언니 몫까지 하나를 더 샀던가? 아닐거다. 아마도 공짜로 하나만 먹고 다음에 또 와서 사 먹어야지 생각하며 신나게 나왔던 것 같다.


겨우 한 학기. 짧았던 고대 앞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영철버거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가끔 고대 앞에서 친구를 만나도 치킨집이나 가지 일부러 영철버거에 들르지는 않았다. 삼통치킨에서 생맥을 마시며, 이 앞에서 살던 때를 회상하며 영철버거 이야기를 잠깐 했던 것 같기는 하다. 인터넷 뉴스를 통해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사장님이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는 소식도 듣고, 가격을 올렸다가 비난을 받는다는 이야기에 '요즘 물가에 천 원은 너무 싸지 않나?' 하고 사장님을 두둔하는 마음이 든 적도 있지만 어쩐지 그 그리움의 크기가 일부러 찾아갈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2015년 경영난으로 결국 영철버거가 폐업했다는 뉴스를 듣고 나서야 졸업 후에 사회인이 되고서도 한 번을 가지 않았다는 생각에 후회가 되었다.

가격 인상 소식을 들었을 때 한 번 찾아가서, 마지막에는 2500원이었다는 스트리트버거를 4개쯤 주문해서 포장해 올걸. 매장에 사장님이 계셨다면 - 기억은 못하시겠지만 - 2002년 월드컵 때 이벤트 해주셨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그때 내 앞에서 딱 끝났는데 나 때문에 추가로 더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는 이야기를 10년 만에 했어도 사장님은 기쁘게 웃어주었을 텐데.

출처 : 인스타그램


보름 전, 58세의 젊은 나이에 영철사장님이 세상을 뜨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뒤늦게 여러 소식을 검색해 보니 내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마음고생을 하셨으리라 짐작된다. 인터넷 뉴스에 달린 댓글 중 기억에 남는 글이 있었다.


아저씨, 그곳에서는 버거 그만 만드시고
편안하게 쉬세요.


냉장고에 있는 양배추와 불고기, 모닝빵으로 아이들에게 한 번 비슷하게 흉내 내어 만들어줘 볼까? 엄마가 스무 살 때 맛있게 먹었던 '영철버거' 맛이 이것보다 좋았다고, 그곳에 아주 친절한 사장님이 계셨다고 이야기하며 말이다. 어쩌면 사장님은 부지런한 천성을 버리지 못하고, 천국에서도 꼬마천사들에게 공짜로 버거를 만들어 나눠주고 계실지도 모른다. 영업을 종료하던 마지막 날, 축제 중이던 고대생들의 기차놀이에 무료로 버거를 나눠주셨던 그 모습 그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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