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다니는 친구들

드러나는 믿음

by 계쓰홀릭


친구들의 종교를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건 사실 스무 살 이후이다. 중고등학교 때는 다들 학업에 치여 별다른 종교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관심을 갖지 못했던 것인지 친구들의 종교를 잘 몰랐다. 그 당시 내 친구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하게 '친불교적 무교'에 가까웠던 것 같기도 하다. 수능을 치르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학교 안에 있는 여러 동아리 중 종교와 관련된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나는 당연히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거나 취미로 삼고 싶은 분야의 동아리를 알아보았는데, 신기하게도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은 교회와 관련된 동아리부터 가입했다.


교회소녀 J양

입학식도 하기 전, 대학교 예비 신입생들끼리의 모임에서 먼저 알게 된 J양은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고 했다. 대학에 입학하고도 매주 고향에 내려가 교회에 다녀오는 성실한 신자인 J양은 매주 그곳에서 만나는, 자매처럼 지내는 오랜 교회 친구도 있었다. 대학에서 몸담고 있는 기독교 동아리에는 고향 교회 오빠가 있어서 입학할 대학을 결정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친 듯했다. 기숙사 방을 오가며 알게 된 것은 J양이 매일 아침 일어나 '큐티(QT)'라는 성경공부를 한쪽씩 하고 기도를 한다는 것이었다.

구글검색에서 찾은 AI 답변


밥 먹을 때나 자기 전에 기도하는 것도 모자라 매일 아침 성경공부를 스스로 하고 주일마다 교회를 가는 삶이라니! 대학에서 가입한 동아리는 기독교 동아리 딱 하나였는데 그 모임도 매주 무슨 요일마다 빠짐없이 나가곤 했으니 참으로 독실한 신자였다. 친구는 나에게 한 번도 같이 교회에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함께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동아리 선배들과도 안면을 트게 되어 교회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다정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곤 했었다.


목사님의 아들 J군

앞서 말한 J양과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던 J군은 워낙 둘이 붙어 다녀 JJ커플이라 오해를 받기도 했으나 개의치 않고 함께 종교활동을 열심히 했다. 재수를 해서 우리보다 한 살 많았던 그는 현역으로 먼저 신학대학에 합격했었다고도 했다. 재수하지 않았으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님이 되었을 수도 있는 J군. 우리 과에 몇 안 되는 남학생 4인방 중 하나였던 그는 나머지 셋과 달리 여학생들에게 자연스럽고 살갑게 굴어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교회에서 많이 만나보았을 '여성'에 대한 이해가 깊었기 때문인지 피부나 머릿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이질감없이 잘 끼어들었고, 교회에서 반주를 오래 한 덕인지 피아노를 무척 잘 쳤다. 교대에서는 남학생들이 무척 힘들어하는 과목들로 무용, 실과, 피아노가 꼽히는데 J군은 타이즈를 입고도 무용실을 폴짝폴짝 잘 뛰어다녀 무용 교수님께 사랑을 받고 피아노 건반 위에서 긴 손가락을 자유롭게 움직여 음악 교수님께도 총애를 받았다. 속으로 저 친구는 그야말로 교대에 특화된 남학생이라고 생각했다.


교회에 다니는 뭇 여성들의 흠모를 한 몸에 받았을 것이 분명한 'born to be 교회오빠'인 J군. 그는 나와 함께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 그 진가를 더욱 드러냈다. 여초집단 그 자체인 교생들 사이에서 준수한 외모와 다정한 에티튜드로 단연 선생님들의 눈에 띄었고, 수업 시간에는 피아노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모습으로 여학생들의 환심을 샀다. 그런 J군과는 딱 한 번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너는 어쩌다 보니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나서 저절로 종교가 정해졌는데, 사실 너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 기독교(개신교)는 세상의 많은 종교들 중 하나인데 네가 하나님을 그렇게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게 무척 신기하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했더니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짧고도 단호했다.


나에게 하나님은 종교가 아니야.
그냥 내 삶이지.


모태신앙은 아니지만, K양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신기한 모임이 있는데 그건 바로 '기도모임'이다. 첫 학교에서도 두 번째 학교에서도 소수의 기독교인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성경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모임인 듯한데, 서로 고민 상담도 하고 속사정을 털어놓아서인지 무척 친밀해 보였다. 두 번째 학교에서 알게 된 K양은 그 기도모임을 열심히 하는 후배였는데, 교회를 다니게 된 계기가 남들과는 조금 달랐다.

내가 다니던 대학에는 '나도 여기 졸업한 선배인데요…' 하며 접근해 와서 함께 성경공부 하자고 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나는 지금 대학 생활이 즐겁기만 한데 자꾸만 다가와서 '뭔가 힘든 일 있거나 공허하지 않냐'면서 내 삶의 충만함을 의심하는 분들이었다. K양은 대학을 다니던 중 그분들의 말씀에 이끌려 교회에 발을 들이게 된 케이스였다. 그분들이 사이비거나 이단이 아닐까 의심했던 게 조금 미안할 정도로 K양은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본인도 졸업 후 종종 모교에 찾아가 그 선배들처럼 활동을 한다고 했다.


이름부터 바이블, P군

J양을 만났던 예비 신입생 모임에서 P군도 처음 만났다. 이름만 들어도 '아 이 친구는 교회에 다니나 보다' 싶었는데 혹시 그냥 돌림자를 따서 지은 이름일 수도 있으니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만약 내가 오해한 거라면 그동안 그런 질문을 얼마나 많이 받았을까 싶어서였다.

빈 강의실에 둘러앉아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 P군은 출신 지역과 입학 예정인 학과, 나이 등을 간단히 소개한 뒤 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에 목을 흠흠 가다듬고는

"그럼 CCM을 부르겠습니다."라고 했다.

당시에 CCM이 뭔지도 몰랐던 나는, P군이 눈을 꼭 감고 정성스럽게 부르는 그 노래의 가사와 분위기를 보고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내 옆에 앉아있던 K군은 "나도 교회 다니니만 이런 데서 찬송가 부르는 거 딱 질색"이라며 투덜거렸다.

구글 검색 ‘CCM’

사실 P군과는 이후에 별다른 교집합이 없어서 4년 내내 인사만 하는 사이로 지내왔는데 최근 우연히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마주쳐서 근 20년 만에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만나자마자 '너 자기 소개할 때 CCM 불렀잖아!‘라고 알은체 하고 싶었지만 본인에게 ’ 이불킥‘ 흑역사일지도 몰라서 그 말을 삼켰다. 가만 생각해 보니 흑역사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장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솔로’ 11기에 출연한 순자 님이 아침에 찬송가를 부르는 장면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동료 출연자들과 가볍게 소개를 나누는 자리에서 기쁨에 충만한 얼굴로 노래하는 그녀는 마치 그녀만의 세계에서 사는 듯 행복해 보였다. 인터넷 기사에서 접한 댓글에는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사람들보다 '찬송가는 교회에서나 부르지' 하는 반응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때 기사와 댓글들을 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20여 년 전 눈감고 열창하던 P군을 떠올렸었다. 비신자로서 어쩐지 불편한 마음과 거리감을 동시에 느꼈던, 스무 살의 나와 같은 감정을 인터넷 댓글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교회 안에서 남자친구를 찾고자 했던 여학생들에게는 어쩌면 멋진 모습으로 비쳤을 수도 있으려나?




막대한 부의 세속을 위해 대형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어떤 목사의 이야기를 접할 때, 동아리방에서 새벽에 흘러나오던 통성기도 소리를 떠올릴 때, 서울역 앞이나 지하철 1호선에서 '불신지옥' 푯말을 들고 다니는 노인들을 마주할 때면 기독교(개신교)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들 안에서 무엇이 이단이고 사이비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경험을 통해 확실히 아는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아는 '교회 다니는 친구'들은 대부분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정성껏 가꾸며 성경 말씀대로 선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고맙게도 나의 생각을 존중해 주어 한 번도 교회에 같이 가자는 부담스러운 권유를 하지 않았다. 혹시 나에게 그런 권유를 했다면 나는 괜한 반발심을 가졌을 수도 있고, 종교로써가 아니라 삶의 양식 그 자체로써의 교회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삶이 흘러가는 방향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100% 내 의지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것을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팔자 또는 누군가의 계획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성당에 다녀보기로 마음먹은 것 역시 누군가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표현하시니 말이다.

내가 아는 교회 다니는 친구들의 모습은 이렇게 다양한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본인들이 교회에 다닌다는 것이 자의든 타의든 잘 드러난다는 것이다. 성당에 다니는 친구들은 조용하고 은밀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느껴지던 것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모든 신자들을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다루는 ‘일기장’이므로 태클은 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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