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부부 교리와 혼인성사

성(聖) 가족을 이루겠습니다

by 계쓰홀릭


나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결혼을 염두에 두었기에 부모님과의 식사나 예식장 계약 같은 것이 짧은 시간 안에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혼기가 꽉 찬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던 그의 어머니께서는 나의 존재를 알기 전 마지막으로, "교회 다니는 아가씨 한 번 만나볼래?" 라며 선자리를 하나 주선하려 하셨다고 한다. 아들은 그제야 만나는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했고, 어머니께서는 “응, 그렇구나.“하고 거실에 나가셨다가 한참 후 다시 들어와서는 "… 반지 맞춰야 하냐?" 물어보셨다고 한다.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성당에 다니신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는 절에 다녀요.‘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그는 어느 날 조금 미안해하는 느낌으로 결혼식 하기 전에 성당에 같이 가서 뭘 좀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성당에 다니는 사람끼리는 결혼식 할 때 '혼인성사'라는 것을 하는데, 내가 신자가 아니어서 일단 '예비부부 교리'라는 것을 이수한 다음에 혼인성사를 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부부가 되기 전에 듣는 그런 예비부부 교실 같은 게 있는데 다녀보니 좋더라는 이야기를 교회 다니는 친구한테 들은 적이 있어서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오, 재밌겠다! 나 그런 거 좋아해요."라는 말에 그는 고맙다고 말했다.


혼인강좌 (예비부부 교리)
2015. 2. 15.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보내주신 일정표를 보고,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마들역 '노원성당'에서 하는 혼인교리를 신청했다. 퇴근 후 바로 갔더니 김밥 한 줄과 귤, 생수를 주셔서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자세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부부는 이렇게 지내야 한다는 내용의 좋은 말씀을 들었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도 가졌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던 것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시는 분들 굉장히 존경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20년이 넘게 혼자 살고 있는데 지금 너무 편하거든요? 혼자 큰 침대 쓰고, 옆에 아무도 없어서 너무 좋아요. 옆에 누가 같이 누워있으면 불편해서 잠을 못 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편한 생활을 포기하고, 두 분이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가정을 꾸리시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절대 못합니다. 정말 멋지세요!

가뜩이나 덩치도 크신 분인데 얼굴빛이 불콰한 것이 딱 애주가 같다고 생각하며 남자친구와 쑥덕거리던 참이었다. 혼자 사시면서 자유롭게 음주를 즐기고 늦게 귀가하시는 모습이 상상되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혼인성사(혼배성사)
2015. 3. 29

몇 주 뒤, 혼인성사는 예비 시부모님이 다니시는 성당에서 치러졌다. 천주교인 증인이 두 명 필요하다고 했는데 마침 우리 둘 모두와 같은 대학, 같은 동아리에서 제법 친하게 지냈던 커플이 천주교인 부부여서 고맙게도 시간을 내주었다. 아직 진짜 결혼식은 하기 전이어서 결혼식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작지만 아름다운 성당에 들어서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성당에는 우리처럼 혼인성사를 받는 커플이 몇 쌍 더 있었다. 예식에 어울리는 원피스와 정장을 차려입고 신부님이 진행하시는 어떤 의식에 따라 눈치껏 대답하며 성사를 받았다. 의미는 잘 모르지만 신부님께서 우리 부부더러 사이좋게 잘 살라고 축복해 주시는 것 같았다. 예비 큰 형님께서 준비해 주신 꽃다발을 받으니 영락없이 부케를 든 신부가 되었다. 진짜 결혼식에 앞서 약혼식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미리 축하받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사전에 미리 신부님과의 면담 시간을 가졌는데, 어떤 서약서에 서명을 하기도 했다. 비교적 쉽게 ”네 “하고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는데, 결혼 후 자녀들도 성당에 데려가 성(聖) 가족을 이루기로 약속하는 대목이 마음에 걸렸다. 자녀란 아직 상상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인데 성당에 데려오겠다는 다짐을 하는 게 맞는 건지, 내가 잘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신부님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스스로 그러기로 다짐을 한 후 대답을 했다.


예, 그렇게 기르겠습니다.


혼인성사 예식서의 일부 (출처:원신흥동성당 홈페이지)

결혼을 하고 올해로 딱 10주년이다. 어쩌면 10년 내내 나의 마음속에서 '성당에 가긴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것은 혼인성사에서 한 저 약속 때문인지도 모른다.




요즈음 다니고 있는 예비신자교리에서 첫날에는 어떻게 성당에 오게 되었는지를 서로 이야기했다. 시댁 어른들과 남편이 신자여서 나도 혼인성사를 받았고, 언젠가는 다녀야지 하고 늘 마음에 버킷리스트로 저장해 두었다가 이제야 오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다. 수녀님께서는 예비자들의 사연에 모두 귀 기울이신 후, 그것이 바로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하셨다. 아이들 주일학교에서 만난 학부모들은 80% 이상이 엄마들인데, 본인이 신자이지만 남편이 아직 성당에 다니지 않아서 내심 아쉬워하는 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어쩐지 종교에 대한 강요처럼 느껴질까 봐 혼인성사도 하지 못했는데, 흔쾌히 성사를 받고 예비자 교리까지 열심히 다니는 나를 보며 '부부가 함께 다녀 좋겠다'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워낙 종교에 대한 궁금증이 많고, 천주교에 대한 막연한 호감을 가지고 있던 내가 배우자로 선택한 사람이 마침 천주교인이었다. 이러한 우연의 연속은 마치 한 판에 한 색만 찍을 수 있는 실크스크린처럼 내 삶에 연이어 찍히며 예상하지 못했던 형태의 그림을 완성해가고 있다.

이건 운명일까, 나의 선택일까,
그것도 아니면
아주 먼 과거부터 내 귀에 작게 들려온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었던 것일까?

혼인성사 후 강산이 한 번 변하는 시간이 흐른 뒤, 나는 기어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성당 문을 두드리 고야 말았다. 세례성사는 우리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영적 표시인 ‘인호’를 새기는 것이라고 하는데, 혼인성사를 마친 나의 영혼에도 어떤 작은 표시가 새겨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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