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기만 하는 기분
친구 따라 축구 교실
하율(가명)이는 둘째가 다니던 어린이집 친구 중 한 명으로 얼굴이 아주 예쁘고 성격도 좋았다. 단체 사진 속에서 눈에 확 띌 정도의 미모여서 아들에게 얘는 어떤 아이냐고 물어보곤 했다. 학부모 모임에서 만나보니 하율이 어머니도 서글서글한 성격에 대화가 잘 통했다. 그 어머니의 소개로 하율이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동네 축구 교실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다시 만난 하율이는 축구 유니폼을 갖춰 입고 스포츠 머리띠를 한 모습도 잘 어울려서 축구공을 몰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마치 '아육대(아이돌 육상 대회)'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장소는 교회 옥상, 코치는 목사님
약 석 달의 기간 중 토요일마다 진행되는 15회 남짓의 축구 수업은 놀랍게도 그 비용이 학기당 4만 원에 불과했다. 폭염과 한파는 피해서 봄가을에 개강한다는 점과 장소가 집에서 멀지 않은 동네 교회라는 점 역시 매력으로 작용했다.
'교회에 축구장이 있다고?'
궁금한 마음을 안고 기다렸던 봄학기 개강의 날, 공지된 장소에 시간 맞춰 가보았다. 승용차로 다니며 늘 지나쳤던 교회의 옥상에 야외 풋살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에어바운스와 방방장이 있고, 팝콘 기계에서 캐러멜 팝콘이 튀겨져 끊임없이 제공되며, 아이들 수준에 맞춰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축구 수업이 열리는 그곳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아직 학교도 가지 않은 미취학 어린이여서 대단한 실력 향상을 꿈꾸는 것은 아니었다. 날씨 좋은 주말 낮, 점심 식사 후 부담 없이 가서 뛰어놀며 간식도 얻어먹고 오는 일정은 우리 가족에게 금세 편안한 일상으로 젖어들었다. 교회에서 봉사하러 나오신 듯한 어른들이 무더운 날에는 아이스커피도 주시고, 아이들에게 시원한 쭈쭈바도 사다 주셨다.
축구 교실을 운영하시는 아버님의 본업은 목사님이다. 지금은 목사님이지만 대학 때 전공은 체육이었다는 말을 사석에서 들은 듯도 했다. 키가 크고 훤칠하며 축구 유니폼이 무척 잘 어울리는 그분이 신도들 앞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모습은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내가 보기엔 완벽한 축구 코치님 그 자체였다. 처음 축구 교실에 오겠느냐는 권유를 받을 때부터, 사모님(하율맘)으로부터 '종교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이 오셔도 된다.'는 당부를 들었기에 우리 가족은 정말 부담감 제로의 마음으로 즐겁게 교회 옥상의 풋살장을 오갔다.
호기심의 시작
축구 수업 전후로 화장실에 갈 일이 있어 아이들과 아래층에 내려가곤 했다. 토요일이라서 교회 사람들은 없었다. 유아실 어린이실 등 다양한 팻말이 달려있고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강의실 같은 공간들이 넓고 좋아 보였다.
"교회는 뭐 하는 곳이야?"
"왜 아무도 없어? 일요일엔 사람이 많아?"
"하나님이 뭐야? 하율이 아빠는 직업이 목사님이래. 목사님은 무슨 일을 해?"
아이들은 교회 시설을 둘러보며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이 언제 성당을 다니기 시작할까 늘 궁금해하고 기다리시는 어머님께 이런 상황을 말씀드린 적이 있다.
“어머님, 요즘 아들이 토요일마다 교회에서 하는 축구 교실을 다니더니 교회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리고 같이 축구하는 목사님 딸이 엄청 예쁜데 축구까지 제일 잘하더라고요.”
그러자 어머님은 일시정지된 듯 나를 바라보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잘됐다! 종교에 관심이 생긴 김에
성당에 데려가면 되겠다.
교회 다닌다고 하기 전에 얼른
성당에 가봐라.
행운의 가시방석
봄학기의 마지막 날에는 즐거운 이벤트가 있어서 축구 수업 대신 아래층 행사장으로 갔다. 토요일마다 옥상에서 뵙던 봉사자 몇 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긴 테이블에는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멋진 경품이 잔뜩 놓여있었다.
게임의 방식은 아주 간단했다. 구멍이 뚫린 현수막에 공을 차 넣고, 공이 구멍을 통과하면 경품 상자에서 번호표 쪽지를 뽑는 것이다. 테이블에 놓인 선물 중 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가져갈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제대로 공을 차지 못하면 세 번 이상의 기회를 주며 어떻게든 선물을 주려는 어른들의 노력이 이어졌다. 현수막을 일부러 공 쪽으로 움직여 굴러오는 공이 저절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며 말이다. 성별이나 취향이 맞지 않으면 번호를 슬쩍 바꿔치기해서 더 좋은 선물로 교체해 주는 듯도 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둘 다 공을 잘 찬 데다 번호표까지 잘 뽑았다. 행운의 당사자인데도 조작이 의심될 정도였다. 테이블에 놓인 선물 중 가장 비싸 보이던 RC카와 축구공은 우리 아들 차지가 되었고, 딸은 축구 수강생도 아닌데 함께 이벤트에 참여해서 학용품 세트와 5천 원짜리 문화상품권을 받았다. 원래 하나는 축구공이었는데 동생이 뽑은 문화상품권과 맞바꾼 것이다. 처음에는 무척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는데 지나친 행운이 계속되자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회비도 얼마 안 냈는데 자꾸만 좋은 것을 받으니 점점 머릿속에서 커져가는 어떤 진리가 내 양심을 건드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경품 추첨 후에 실내 에어바운스장에서 더 놀다가 올 수도 있었지만, 나처럼 뭔가 불편한 느낌을 받은 남편이 얼른 집에 가자고 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사실은 나에게 귓속말로 ‘도망치자! 지금 당장!’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오후 내내 선물을 가지고 놀며 좋아했지만, 우리 부부는 안방에서 가을 학기에도 수강을 할지 말지에 대해 조용히 의논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