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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음식의 맛

by 김세은


책은 음식이고, 독서는 그 맛을 음미하는 일이다.


책방에 들어서면 온갖 다양한 음식들이 즐비한 뷔페 집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마냥 마음이 들뜨고 아직 맛보기도 전에 설렘으로 가득하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듯 책을 고르는 손길은 접시를 들고 먹음직한 음식을 고르는 모습과 어딘지 닮아 있다.


보기 좋은 떡 고르듯 일단 제목이 그럴싸하고 표지가 마음에 꽂힌 것부터 손이 간다.

가볍게 한 두 장 넘겨보며 내용을 한번 쓱 써핑하듯 훑고 지나간다.

마치 무한 스크롤되는 컨텐츠처럼.


요즈음은 좋아하는 작가의 산문 집이나 에세이에 자주 눈길이 간다.

익숙한 맛에 싫증이 날 때 새로운 메뉴를 찾듯, 때때로 베스트셀러 소설을

찾아 보기도 한다.

그렇게 뽑혀온 도서들을 책장에 채우며 흐뭇하게 바라보다 뭐부터 읽을까

행복한 고민도 해본다.

침샘을 자극하는 음식처럼, 책도 때론 갈증과 공복을 부른다.


처음 몇 장을 넘길 때의 설렘, <흐르는 강물처럼>이란 소설처럼 술술 읽혀

멈춤 없이 하루 만에 다 읽어버린 책. 제법 두꺼운 책이었는데도 말이다.


단편보다는 장편소설, 그 중에서도 역사소설, 관심 많은 작가의 여행기나 그림에 대한 이야기 들을 좋아한다.

놓치고 싶지 않은 멋스런 글귀나 문장들을 필사하면서 벅차 오르는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편식하듯, 읽고 싶은 책 만 골라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느 유명작가의 어둠, 가난, 무지 등에 천착해있는 소설처럼, 읽고 난 후에 오래도록 어두운 여운이 남는 책. 하지만 자꾸 다시 펼치게 한다.


입맛에 맞지 않아 몇 번을 시도하다 결국 덮어버린 책도 있다.

쓰다만 구겨진 편지처럼, 먹다 남은 밥처럼, 책장 한 켠에 남아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언젠간 읽어야지! 솔직히 다시 펼치기 어렵다.


음식의 맛을 느끼는 것, 책을 읽으며 얻는 감정과 참 많이 닮았다.

팥빙수 같은 시원함, 초콜릿의 달콤함, 오래된 된장찌개 같은 깊은 맛,

쓴 약 삼킬 때처럼 개운치 않은 뒷맛을 느끼게도 한다.


예전엔 책을 한번 펼치면 무조건 끝까지 읽어야만 다른 책에 손이 닿았다.

요즈음 책 읽는 습관이 많이 달라졌다.


지루한 책은 몇 페이지씩 나누어 편하게 읽고, 하루에 여러 장르의 책들을 바꾸면서 보기도 한다


집에서 불과 100m 거리에 ‘보라 도서관’은 내게 참 소중한 공간이다.

창 밖 풍경이 있는 쪽에 앉아 책을 펼칠 때 주는 짜릿함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행복을 안겨 준다. 솔솔 김이 나는 커피의 진한 향기와 함께라면 금상첨화!


요즈음은 오디오 북을 듣다가 마음을 움직이는 내용 있으면 급한 마음에

‘쿠팡’에서 바로 주문하기도 한다.

기대했던 것만큼 좋은 책일 수 있고,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게 하기도 한다.


가끔은 직접 발 품 팔아 책 향기 뿜어내는 분위기를 느끼며 책 사이를 걷는 즐거움도 놓치고 싶지 않다.


요즈음 나이 탓인지 욕심껏 읽긴 하는데 무슨 내용인지 전혀 기억 나지 않는다.

어디 선가 본 낯익은 내용인데 어느 책에서였는지, 누구의 글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먹기 싫은 밥 꾸역꾸역 입 속으로 넣는 것 같이 지루하고 난해한 책은 이제 그만 놓아 주자. 죄책감에 몇 번을 시도해 보지만 여전히 실패하는 책에도 미련 갖지 말자.


맛난 음식처럼 유익하고 흥미로운 책, 아직도 읽지 못한 책은 세상에 넘칠 만큼 많다. 굳이 억지로 삼킬 필요는 없다.


음식을 섭취해 건강을 유지하듯 좋은 책 벗삼아 건강한 내면을 채워가자!

책의 향기가 있는 그곳으로 가끔은 발걸음을 옮겨 보자.


책은 언제나 어디서나 끝나지 않은 내 사랑이다.





202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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