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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에서의 하루

by 김세은


캠핑장에서의 하루


당일 아침, 우리는 기대 반, 우려 반의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며칠째 쏟아지는 비와 요란한 천둥, 번개. 일기예보는 연일 강수 확률 80%를 고집했고, 모처럼의 가족 캠핑은 물거품이 될지도 몰라 불안했다.

하지만 출발 직전,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차창 너머로 고개를 들어보니, 파란 하늘이 구름 가장자리로 슬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조심스레 웃는 아이의 눈웃음 같았다.

캠핑장은 그리 멀지 않았다. 교회 입구를 지나 좁고 급경사진 길을 따라가다 보니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남아 있었다. 조심조심 차를 몰아 들어선 캠핑장의 첫 인상은…

저으기 실망스러웠다.


천막들은 바람에 쓰러진 채 흩어져 있었고, 바비큐 도구들은 여기저기 내동댕이쳐져 마치 폐허 된 공간을 연출한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조금 더 안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잔디밭 옆으로는 백일홍이며 이름 모를 노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알록달록한 천막들이 그늘을 드리운 오솔길과 어우러져 제법 낭만적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주차장 쪽을 바라보니 여동생네 가족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미 달려가고, 어른들은 바리바리 짐을 들고 캠핑장을 분주히 오갔다.


긴 식탁 위에 펼쳐진 음식들은 마치 작은 주방 하나쯤 옮겨온 듯 이사짐을 방불케 했다.


넓은 마당에는 이제 막 에어바운스로 미끄럼틀 모양과 아이들 물놀이 할 수 있게 풀장이 만들어 지고 있었다.


등심, 삼겹살, 소시지, 새우, 버섯은 바비큐 석쇠 위로, 김치와 상추, 깻잎과 오이, 청양고추는 식탁 위에 보기 좋게 놓였다.

나는 준비해 온 감자채에 달걀을 풀어 감자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냄새 속에서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에, 한여름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실감한다.


오늘은 제부의 생일이다.

목 디스크 수술 후유증으로 제대로 걷기도 힘든 그를 조카들이 부축해 의자에 앉히는 모습은 짠하기 그지없었다.

힘겨운 듯 한숨을 토해내는 그의 얼굴엔 고통이 묻어 나고 그 옆에서 묵묵히 바라보는 여동생의 표정이 안스럽고 애틋하다.

감자전을 부치는 동안에도 내 귀는 동생 부부의 짧은 대화 속 이야기에 쫑긋 세워져 있었다.


멀리서 아이들이 물총을 쏘며 까르르 웃고, 한 아이는 아빠의 물세례에 놀라 대성통곡을 했다. 어른들은 “아이쿠 저런” 하며 웃음을 터뜨렸고, 나 역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우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웃음이 났다.


쌍둥이 아들과 조카, 조카사위까지 듬직한 청년들이 고기를 굽고 서로 땀을 닦아주며 소주잔을 부딪칠 때, 이게 바로 인생의 멋진 한 장면이 아닐까?


행복한 웃음소리와 함께, 문득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는 제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즐거움 속에서도 마음 한켠에 그늘 하나 드리워지는 듯했다.

하지만 고기 한 점을 상추에 싸서 서로 입에 넣어주고, 검게 구운 새우 껍질을 벗겨 초장에 찍어 건네는 가족들의 손길은, 그늘진 마음마저 말없이 어루만져주었다.


모두가 행복해 하는 모습에서 가족이란 이런 것이구나! 가족에 대한 사랑과 정을 흠뻑 느끼게 해준 캠핑장에서의 멋진 하루!


말없이 곁을 지켜주고, 아픈 날에도 웃음을 주는

그런 사람들.


94세의 노모가 4대가 함께 할 수 있었던 날 충분히 행복했다.

하늘엔 구름이 둥둥 떠 다니지만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

맑았다.


이 하루가 오래도록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따뜻하게

남기를,

그리고 저마다의 삶에 다시 웃음꽃이 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24.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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