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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실타래를 풀다

by 김세은

17년 동안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운영했다.

어느 날 문득, 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다양한 모습의 집들과 사람들, 웃음과 갈등,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떠올랐다.

마치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기억들.

오늘, 그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풀어본다.


부동산 중개는 단순히 집만을 연결하는 일이 아니다.

사람과 삶, 사연과 사연 사이를 잇는 복잡하고도 섬세한 일이다.

집을 보여주러 갈 때마다 그 안에 깃든 삶의 모습들을 보게 된다.

비밀번호까지 친절히 알려주는 이도 있고, “내가 없는데 왜 집을 보러 오냐”며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는 이도 있다.

“베란다에 잘 익은 홍시가 있는데 가져다 드세요”

그 짧은 인사 하나가 그 하루를 따뜻하게 만들고 그리고 오래 기억 속에 남았다.


어떤 집은 폭풍우가 지나간 듯 어수선했고,

어떤 집은 정갈한 어르신의 삶처럼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집은 사람을 닮는다고 하던가!

낡은 벽지, 결로로 피어난 곰팡이, 애완동물이 남긴 스크래치, 고장 난 문고리 하나까지도 누군가의 삶의 흔적이었다.


계약이 성사되기까지는 수많은 협의와 조율이 필요하다.

가격, 이사 날짜, 중도금, 잔금일, 법무사, 세무사. 거래신고,등등

서로 맞춰야 할 퍼즐이 많고, 이 퍼즐은 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잔금일에는 서로 감정이 격해져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고, 경찰이 오가는 상황도 생긴다.

그럴 때면 조용히 마무리하자고, 중개사가 중간에서 비용을 부담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은, 계약 당일에 매수인이 50만 원만 더 깎아달라고 떼를 썼고,

화가 난 매도인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결국 나는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부족한 금액을 메웠다.


중개사무소는 때때로 동네 사랑방이 된다.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하소연 창구가 되기도 한다.

옆집이야기로 시작해서 자식 자랑에 며느리 흉을 보며 남의 시간을 흘려

보내기도 한다.

이 또한 일을 하며 감당해야 할 업무(?)다.


겉으론 단순해 보이지만, 중개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명의자와 실 소유주가 다른 경우, 권리 분석을 소홀히 했다간 중개사가 큰 손해를 떠안을 수도 있다.


10년간 아버지 명의의 집을 위임장으로 거래해온 아들이 계약금 3천만원을 받고 난 뒤, 아버지는 이미 사망한 상태, 상속등기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 상속자 전원

의 동의가 없으면 거래는 무효가 된다.


부동산 사이트에 물건을 올릴 때 금액 오타 하나로 200만 원 과태료를 내기도 했다. 자세한 소명자료를 올려도 설득되지 않았다.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불순한 의도로 낮게 올렸다는 것이 그들의 변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다.


벽에 난 못 자국, 곰팡이, 애완동물로 인한 흠집, 고장 난 손잡이, 싱크대 막힘

등도 분쟁의 불씨가 된다.

전, 월세로 이사가면 챙겨야 할 일, 증거를 남겨야 만기 시에 마찰을 줄일 수 있다.

요즈음 젊고 현명한 세입자들은 입주할 때부터 꼼꼼하게 사진을 남기고 기록으로 남긴다.

그 밖에도

이사 가며 말도 없이 장판을 걷어가 버려, 결국 수수료 30만원 받고 20만원 장판비용을 부담했다는 이웃 사장님.


오래된 빌라 2층을 계약했는데 3층에서 물이 샌다는 연락 받고 주인 찾았더니

“나는 88세 노인이라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말씀 정말 막막하다.


겨울 폭설이 내리던 어느 일요일, 잔금을 처리하러 온 손님이 수표 한 장만

덜렁 들고 와서 난감했던 기억,

나는 하루 종일 현금을 구하러 뛰어다녔다.

그날은 내 생애 가장 더운 겨울이었다.


하나의 집을 계약하기 위해 수 차례의 임장 활동을 하고 양측의 조건을 설득하며

조율하는 일 결코 단순하지 않다.


거래 금액이 크든 작든 같은 비율의 수수료를 받는 구조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래 규모가 클수록 돌발 변수와 책임도 커지기에, 중개사의 부담 역시

가볍지 않다.

“계약서 한 장 달랑 쓰고 비싼 수수료 챙긴다는 말씀”

제발 안 들었으면 좋겠다.


2년 전, 긴 시간 짊어졌던 중개업의 무게를 내려놓았다.

부동산 침체와 반복된 갈등 속에서 점차 의욕을 잃었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스스로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이었다.


지나온 17년의 흔적.

그 지난한 세월의 실타래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풀어 보았다.

긴긴 하루였다.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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