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하루 탈출기?
“언니, 나 가출했어.”
토요일 오후, 스크린 골프장에서 가족들과 운동을 하던 중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동생의 목소리에 웃음이 먼저 새어 나왔다.
“가출이라니, 니가?”
“언니네 가서 저녁 먹고 자고 가도 되지?”
“그럼~~~, 당연하지.”
하지만 이 상황은 뭘까. 황당하면서도 어쩐지 서글픈, 마음 한구석이 휑하다.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사랑스럽고 대견한 울 동생.
시집가자마자 시부모님을 30년 넘게 함께하며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예고 없이 찾아 든 시어머니의 치매로, 가정 안팎을 어지럽히던 그 혼란도, 의연하게 묵묵히 감당해냈다.
요양보호사도 감당하지 못하던 시어머니가 며느리 앞에서는 고분고분해 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머리 속은 멀리 방황하고 있어도 가슴은 그냥 느끼지나 보다.
원래 사이가 남달리 좋았던 고부 사이였다.
그저 웃고 스쳤지만 그 웃음 뒤에는 깊은 피로와 아픔이 있지 않았을까?
몇 년간 홀로된 시아버지도 조용한 분이셨지만 간병 역시 쉽지는 않았겠다.
그 조용했던 분도, 세월의 무게를 피할 수는 없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함께 사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텐데,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온 동생은 참으로 대견했다.
동생 곁에는 차갑지만 속 깊은 남편과 성실하고 배려심 많은 아들, 영리하고 지혜로운 딸,
살뜰한 며느리와 명석한 사위, 모두 착한 네 복인 같아 한웅큼 부러움도 준다.
그리고 보기만 해도 웃음 나는 손주들이 있다.
쌍둥이에 연년생 손주까지, 교대로 키우느라 제 몸 돌볼 겨를도 없었지만
그 아이들이 “예뻐 죽겠어”, “힘든거 몰라”” 이제 다 컸어”라고 말하며
이제는 그 동안 못했던 운동도 하며 서서히 여유로움을 찾는 듯 했다.
그날 저녁, 동생은 치킨과 소주 두 병, 그리고 맥주까지 들고 우리 집에
도착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이었을까!.
답답한 방 안에서 문을 활짝 열고, 상큼한 바람을 맞듯.
그렇게 ‘가출’이라는 말을 쉽고 당차게 외쳤나 보다.
이틀 전, 동생의 남편은 고열과 복통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교대로 간병하던 아들이 집에서 편히 쉬라고 했지만,
넓은 집에 혼자 있고 싶지 않아 전화 했다고 한다.
사실 남편은 오래 전부터 아팠다.
췌장 근처 통로가 막혀 시술을 받았고,
목 디스크 수술 후 생긴 후유증으로 다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걷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 깡마른 어깨와 휘청이는 발걸음…
아직 60대인데, 벌써부터 옆에서 계속 지켜봐야 한다니.
“언니, 남편이 너무 불쌍해…”
통증과 열에 지친 남편을 생각하며 동생은 울고 또 울었다.
그 눈물을 보는 나는 가슴 한켠이 시리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력함에
그저 말없이 손을 잡아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다행히 통증이 좀 가라앉았다고 했다.
다행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 동생의 삶의 여정이 녹록지 않을 것같아
좋은 대안이 없을까 고민도 해보지만 마음은 돌덩이에 눌린 듯 무겁다.
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어렵고도 소중한 것인지.
동생의 삶을 들여다보며 또 다른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아무 일 없는 날의 평안,
그 모든 것들이 참으로 고맙고 귀하다는 걸.
동생이 언젠가
지금 이 모든 시간을 돌아보며
“그래도, 난 행복했어”라고 말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2024. 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