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머문 사람들
“사람이 떠나간다고
그대여 울지 마세요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오는 인연 막지 마세요
때가 되면 찾아올 거야
새로운 시절인연”
“시절인연이란 무엇일까?”
어느 날 한 가수가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서 부른 ‘시절인연’이란 노래를 들었다. 그때는 생소했던 그 단어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뜻이 이해가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숱하게 많은 인연들을 만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동호회나 동창 모임, 옛 직장 선후배들과의 모임, 취미활동이나 스포츠를 통해 다양한 이름으로 뭉치며 핑계거리 찾아가며 만난다.
우리는 함께 여행도하고 스포츠도 즐기며 같은 시절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오랫동안 안부조차 모르게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그 시절에 함께했던 사람들이 그리워 지기도 한다. 그들과 나눈 웃음과 대화, 때론 눈물마저도.
사람과의 인연만이 아니다.
젊은 날에 읽었던 책 속에서도 위인들을 만나고, 장발장과 자베르를 만나기도 한다., 그 위대한 고전의 주인공들이 어느 날 내 삶에 들어와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오래전 감성으로 읽은 책을 다시 꺼내면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인생이란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반복되는 여정이다.
친했던 친구와도, 직장에서 함께하던 동료와도 헤어지고, 다시 또 새로운 만남이 이어진다. 그렇게 시절이 흐르면, 인연도 어느덧 시간 속으로 흘러간다.
나는 문득, 지금은 곁에 없는 시절인연들을 떠올린다.
같은 상가건물에서 사업을 하셨던 참사장님. 걸걸한 경상도 사투리 속에 진한 따뜻함을 품으셨던 분. 근무 중 갑자기 쓰러지셨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셨다. 병원으로 이송되던 날, 나는 그분의 귓가에 마지막으로 이렇게 속삭였다. “사랑합니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인사였다.
“언니야, 오늘 일도 없는데 우리 작약 구경가면 안 되겠나?””좋지”
대낮에 둘이 용감하게 사무실 문을 닫고 훌쩍 떠났던 날 행방감에 부풀었던 날이다. 작약은 이미 지고 없었지만, ‘한택식물원’엔 여전히 봄빛이 완연했다.
낭만이 있었고 희귀한 야생화, 바오밥나무 등 그 모든 것이 그대로 사진처럼 남아 있었다.
동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고, 소주에 조금만 취해도 몰래 계산하고 먼저 일어나던 너. 활짝 핀 작약을 내년에 다시 보자던 약속. 그 해, 넌 갑작스럽게 이 세상을 떠났다. 군대 막 제대한 아들 하나만 남긴 채. 네 마음을 다 헤아릴 순 없지만, 참 많이 짠하고 아팠다.
그래도 너는 참 멋졌다.
너의 사무실 앞을 지날 때 마다 많이 아쉽고, 아깝고 그리웠다.
나의 멘토였던 이혜자 교수님,
코로나19의 벽은 끝내 마지막 인사도 못하게 가로 막았다.
함께 테니스를 즐기던 친구의 남편, 췌장암으로 고생하시던 그분의 선한 미소도 여전히 눈에 선하다. 세상은 때론 너무 야속하다.
인연이 많을수록 이별도 많아지고, 그만큼 슬픔도 깊어진다.
하지만 그 모든 인연은 나를 지금의 나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누군가 말했다.
“만남도 이별도, 딱 거기까지가 인연이란다.”
한때 나와 함께 웃고, 울고, 고민하고, 나눈 이들.
그 시절인연들이 언젠가 나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해줬으면…
“그래, 괜찮은 사람이었지.”
“참 좋은 사람이었어.” 라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비 내리는 아침.
인연은 또 흐르고, 기억은 머물며,
또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며 시절을 담아내고 있다.
2024.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