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데 덮쳤다
이건 또 뭐지?
두 달 가까이 머물며 지치게 했던 불청객이 채 떠나기도 전에, 대상포진이라는 초대받지 않은 다른 손님이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장기간 기침으로 무너진 방어벽 틈을 노리고, 살금살금 도둑처럼 왔다.
처음엔 오른쪽 등 뒤에 약간의 가려움증이 있었다.
새우깡도 아닌데 자꾸만 손이 갔다.
그날 밤, 오른쪽 허리에서 평소와 다른 아련한 통증이 느껴져 뒤척이다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여전한 통증에 가까스로 거울에 비춰 보니 책갈피에 눌린 마른 꽃잎처럼 붉게 번져 있었다.
‘혹시 대상포진?’
순간 머리를 스친다.
서둘러 피부과에 갔다. “대상포진이네요.” 역시나 맞았다.
의사는 3일치 약을 지어주며 다시 오라 했다.
이틀 동안은 조용해서, 혹시 아닐지도 모른다고 마음을 놓았는데, 웬걸.
밤이 되자 뱃속에서 무슨 올림픽이라도 치르는지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약을 먹는 와중에도 수포는 올라오고, 가려움증과 따끔거림이 번갈아 가며 동맹을 맺은 듯 번갈아 가며 공격 해왔다.
이제 진짜 통증이 시작된 걸까?
붉은 발진이 넓게 퍼지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3일 후, 다시 병원.
의사는 4일분 약을 추가로 주며 항바이러스제는 이제 그만이라 했다.
“지속되면 마취통증의학과로 가세요. 신경주사도 고려해야 합니다. 마무리를 잘 못하면 평생 신경통에 시달릴 수 있어요.”
반 협박 같은 말에, 남몰래 눈물이 핑 돈다.
설명하기 어려운, 새벽마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뾰족뾰족한 통증.
그러나 아직은 참을 만하다. 나 쌍둥이 낳은 여자야! 잠시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
무시무시하다는 통증은 이대로 지나간 걸까?
7일 후 다시 병원에 갔더니 “이제 항바이러스제는 빼고 드릴게요. 약 다 드시고 괜찮으면 안 오셔도 됩니다.” 한다.
대상포진은 ‘골든타임’, 즉 72시간 내 조기 치료가 중요하단다.
어릴 때 앓았던 수두 바이러스가 신경세포에 숨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기회를 틈타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다리, 팔, 가슴, 목, 얼굴 등 몸의 한쪽, 띠처럼 길고 좁게 나타나 ‘대상’이라 부른다.
가려움증과 미미한 통증이 먼저 시작되고, 2~3일 뒤에 수포가 올라오기 때문에 초기에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한다.
항바이러스제는 7일 정도 꼭 복용해야 하고, 예방접종은 5년간 효과가 지속되며 60% 예방률을 갖는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바늘로 콕콕 찌르고 칼로 베이는 듯하며, 분만의 고통보다 더하다는 말—
그 모든 공포의 말들이 더욱더 힘들게 했다..
그 고통을 직접 겪어 본 사람뿐 아니라, 들어본 사람들조차 두려워하는 그 병이었다.
기억나는 TV 광고!
“당신도 대상포진 대상자입니다.”
예방접종(싱그릭스 백신, 90% 효과, 25만 원)을 받으라던 그 캠페인.
나는 그때, “설마 나는 아닐 거야” 하며 애써 외면했다.
결국, 당했다.
마동석이 말한 ‘당신’은 바로 나였다.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줄 모르고 방관했다. 어릴 때 수두를 앓았던 적 없어
괜찮을 것 같아 예방접종도 하지 않았다.
한 달 넘게 기침으로 고생하면서 밥맛이 없다고, 고기 씹기 싫다며 대충 물 말아 김치에 먹고, 귀찮을 땐 국수나 빵, 고구마로 때우다 보니 면역력이 바닥이 났다.
다 내 탓이지, 누구 탓하겠는가.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린 겁먹은 시간이었지만, 잘 견뎌 냈고
이 정도로 끝난 것이 다행이고 살아서 감사하다.
몇 달 전, 어떤 식사 대충한다는 수필반 선생님께 “식사 잘 챙기세요”라고 했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너나 잘하세요”라는 핀잔을 들을 것 같다.
게다가 재발 확률도 높다니 걱정이다. 이제 나이 들어 몸이 많이 약해진 듯 한데….
뼈와 관절을 빛내고 광 내려면 고기, 생선, 보양식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면역력을 길러야겠다.
다시는 침입을 허락하지 않으리! 나이 들면 건강이 최고다.
오늘도 잘 먹자!
그래서 점심으로 달걀 넣은 라면을 먹었다.ㅋ (평소엔 달걀 안 넣는다)
2024.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