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골프, 그리고 극기훈련”
예정된 날, 모두의 우려 속에 태안 솔라고CC를 향해 시동을 걸었다.
연일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2주 전부터 날씨예보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8월 둘째 주, 입추가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에
계곡도, 바다도 아닌 골프를 제안한 건 바로 나였다.
1일 차, 오후 1시 19분 티업. 습도 엄청 높은 체감온도 36도!
시작 전부터 이미 두려움이 몰려왔다.
약속 시간 40분 전쯤 도착해 라커룸을 배정받고,
냉찜질용 얼음주머니를 몇 개나 꾹꾹 눌려 챙기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1층 로비에서 바라본 창밖은 구름 한 점 없는, 야속한 하늘.
뜨겁고 후텁지근한 기운이 유리창 너머로도 밀려들었다.
사람들을 실은 카트가 줄지어 서 있는 모습에
‘우리 말고도 정신줄 놓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숯가마 같은 열기에 숨이 턱 막혔다.
‘왜 왔지?’ 후회가 격하게 밀려든다.
“괜찮을 거야… 괜찮겠지… 죽기야 하겠어?”
스스로를 다독이며 굳게 마음을 먹었다.
아직 카트도 타지 않았고, 골프채도 잡지 않았는데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얼음주머니를 모자 위에 얹은 채 걷고 있었다.
점점 말수가 줄고, 후반으로 갈수록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얼음주머니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간신히 버텼다.
(그것마저 없었으면 정말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소나기라도 한바탕 쏟아졌으면 싶었다.
땀은 얼굴과 온몸을 흥건히 적셨고,
우리는 서로의 등에 얼음주머니를 대주며 마치 극기 훈련을 체험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젊어서인지 잘 버티고 샷에도 집중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9홀을 마치고, 그늘집에서 쉬는 사이 캐디가 쮸쮸바를 한아름 들고 왔다.
차고 달콤한 그 맛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잠시나마 더위를 잊고, 아이처럼 너무 행복해졌다.
15홀 즈음엔 머리가 띵하고 인내심이 바닥나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포기만큼은 용납되지 않았다.
결국 죽을힘을 다해 18홀까지 마쳤고,
무의식 중에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외쳤다.
운동을 마친 뒤 숙소로 들어가니 마음이 진정되고 안정감이 밀려왔다.
샤워 후, ‘명량’이라는 맛집에서 평소 좋아하던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숙소로 돌아와 잠자리에 드니,
골프텔은 아늑하고 정말 좋았다.
2일 차.
아침 일찍 티업이라 전날보단 낫겠지 했는데 웬걸.
더 높아진 습도로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었다.
몇 해 전, 발목 부상이 거의 회복될 무렵
지리산 둘레길 어느 코스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시멘트 바닥의 지열과 싸우며 숨이 턱 막히던 6월 둘째 주,
그 처절했던 더위와 고통이 되살아났다.
또 하나의 기억.
초여름 무렵, 지산CC에서 카트도 없이
급경사 오르막길을 걸으며 라운딩하던 날.
그때 자비심 1도없이 내리쬐던 태양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혹독한 기억도, 그땐 그래도 지금보다 젊었다.
둘째 날 역시 골프에 집중하기보다 얼음주머니와 씨름하다 끝나고 말았다.
‘비싼 돈 주고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
뜨겁게 데워진 머릿속에서 뱅뱅 맴돌았다.
감당하기 버거웠던(탈진상태?)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해냈다’는 뿌듯함 하나는 챙겨왔다.
아무리 좋아하는 운동이라도,
이제 지하철도 무료로 타는 나이에 여름 운동은 조금 삼가야 하지 않을까.
이런 무모한 추억도 오래오래 글로 남기려면 말이다.
폭염 속 1박 2일 여행은,
마치 극기 훈련을 마친 듯 후련했고,
무사히 다녀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먼 훗날,
잔혹하리만큼 뜨거웠던 2024년의 그 여름을
이 글과 함께 또다시 떠올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