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전화 좀 받아”
이런 황당한 일이.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지극히 평범하고 고요한 하루였다.
집안일을 대충 마치고 나니 심한 무력감이 밀려왔다. 온몸이 나른했고, 까닭 없이 모든 것이 귀찮았다. 아직 남아 있는 잔기침으로 병원에 가야 했지만, 좀처럼 나설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잠을 청해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아 누운 채 유튜브에 귀 기울이며 문장들을 읽어 내고 있었다.
몇 시쯤이었을까.
“띡, 띡, 띡…”
현관문 번호 누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 시간에 누구지?” 하고 나가보니, 여동생이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언니,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왜 전화 안 받아서 이 사단이 나게 해!”
얼굴로 찬바람이 훅 하고 스쳤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동생이, 거의 울먹이며 소리쳤다.
나는 덤덤하게, “내가 뭘?” 하고 되물었다.
거실에 충전해두었던 핸드폰을 열어보니, 엄마, 동생, 식구들의 이름이 빽빽이 찍힌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엄지손가락을 몇 번이나 올려야 어제 날짜가 나올 만큼 이어져 있었다.
멋쩍고 당황스러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동생이 곧장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언니 살아 있어. 걱정 마.”
그 말이 끝나자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통곡소리가 건너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그 책, 집에 있으면 가져오너라.”하던
95세 엄마가 우신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큰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안도감 때문인지 꺼이꺼이 울음을 참는 소리가 들린다.
사무실에서 달려오고 있다며, “됐어, 엄마… 이따 봐…” 하고 울먹인다.
전화기 너머, 얼마나 마음이 졸였으면 감정이 복받쳐 울었을까!
아이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순간 멍해진 머리 속에 미안함 한 가득 밀려왔다.
이모에게 전화 올까 봐 무서웠다고, 혹시나 나쁜 일이 생긴 건 아닌가 걱정이
많이 되었다고 한다.
평소 침대에 걸터앉아 쉬는 일조차 드물었는데, 그날은 무기력함이 덮쳐 온종일 그대로 있었다.
며칠 전 금요일 저녁, 연극 공연을 보며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꿔놓았던 걸 잊고 사흘 내내 그대로 방치한 게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의 울먹임과 엄마의 통곡 소리가 머릿속에서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괜한 나태함이 부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아침 10시부터 네 시간 넘게 연락이 두절되었으니, 가족들이 얼마나 나쁜 상상을 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무겁다.
특히 얼마 전 어지럼증과 심전도 이상으로 큰 병원에 다녀온 터라, 걱정은 더 컸던 것 같다.
여동생은 문을 열기가 겁나더라고 나중에야 털어놓는다.
홀로 사시는 엄마에게 전화가 닿지 않으면 직접 가보기도 여러 번 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아직 한참 젊다고 여긴 내가 이런 소동을 일으키다니.
정말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휴대폰이라는 이름의 ‘분신’을 곁에 두지 못했을 뿐인데 이렇게 여러 사람 혼란스럽게 만들었네. 옛날 휴대폰 없던 시절에도 이런 일이 생겼을까?
“앞으로는 잘 챙길게요, 엄마!“불효자는 안 될 테니 걱정마”
혼자 중얼거린다.
주방에서 차가 끓는 소리가 들린다.
한 구석 씁쓸한 마음을, 따뜻한 작두콩차 한 잔으로 녹여 지려나!
2024.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