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담고 싶을 까요
만약 당신이 투명한 병에 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을 담고 싶으세요?
“눈부신 햇살?
마음이 추운 사람에게 아낌없이 선물로.
환한 달빛?
어둠이 무서운 아이의 창문을 열어 줄.
따뜻한 바람?
밤하늘에 떨어져 있는 엄마 별과 아기별이 꼭 안고 잘 수 있게
바람으로 밀어주고 싶다”라고 말한다.
만약 투명한 병 하나가 내 손에 쥐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담고 싶을까.
이런 상상을 입 밖에 꺼내는 일은 어쩐지 쑥스럽고 부끄럽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주 맑은 얼굴로 그 질문에 답했다.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 까요?”
8042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장관상을 받은 열 살 소년의 글이었다.
폭설로 시상식에도 가지 못했다는 아이.
강을 건너 다섯 시간이 걸리는 깊은 산골, 경북 영양에서 산다고 했다.
2년 전 암 진단을 받은 엄마를 위해 가족이 내려간 곳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인터뷰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작가로 커리어를 쌓아가더라도, 사람이든 돈이든 시간이든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돼라”라고 말한다.
“애써 웃지 않아도 맑은 바람과 하늘이 웃게 하고
별빛이 부르면 별똥별을 마중 나가는 산골.”
이 아이의 문장에 흐르는 따뜻함,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나는 아이가 왜 그렇게 맑은지 알 것 같았다.
자연은 아이의 마음을 조용히 씻어 주고 있었을 것이다.
소년은 말했다. 마음의 온도요?
“너무 뜨거워서 다른 사람이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너무 차가워서 다른 사람이 상처받지도 않는 온도,
그게 따뜻함인 것 같아요.” 한다.
순간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이론’ 이 순간 스친다.
서로를 찌르지 않기 위해, 그러나 얼어붙지 않기 위해 유지해야 할 적당한
거리, 소년은 이미 그 거리를 알고 있는 듯하다.
아이의 시 「할머니」에서는 더 깊은 울림이 있었다.
“빛을 눈에 담을 수 없었던 할머니
밝음과 어둠의 무게는 같았고
손끝이 유일한 눈이 되었다.
지금 계신 곳은 빛들로 가득 하나요?”
“손끝으로 세상을 읽어내던 할머니는
두 손 끝으로 얼굴을 어루만지며 엄마를 보셨지요!”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코끝이 찡하다.
어쩌면 아이는 눈으로 보기보다 마음으로 먼저 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가을을 오려 주머니에 접어 둔다.”
“사랑이 풀 위에 얹혀 있었다.”
“내 마음속에 소리가 있는 겨울이 앉는다.”
이토록 여린 문장들이 열네 살의 손끝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맑고도 단단한 감성.
세상을 향한 고운 시선.
글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마음의 온도를 오래 지켜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재능일까.
요즘 그 소년은 모델로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어디에 서 있든, 무엇을 하든
그 마음의 온도만은 여전히 따뜻할 것이라고.
만약 다시 투명한 병을 건네받는다면
무엇을 담고 싶을까?
누군가의 곁에 조용히 놓여
오래도록 식지 않는 온기 하나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