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니아 1

[단편소설] 2023년 아르코 창작기금 선정작

by 임수정

죽을 뻔했다.

경자는 들고 있던 이불을 끌어안으며 뒤로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이 심장이 된 것처럼 쿵쿵 울렸다. 아파트 9층에서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경자는 제멋대로 사지가 뒤틀린 채 피를 흘리며 죽어갈 자신을 상상했다. 숨이 가빠왔다.

세상은 고요했다. 하루가 멀다고 악다구니를 치는 옆집 여자의 목소리도 기침을 하는 노인도 캥캥거리는 강아지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식은땀이 흘렀다. 바람이 불어와 이마로 내려앉았다. 그대로 한참 동안 이불을 껴안고 숨을 쉬었다. 이불에서 나는 달콤한 냄새가 콧속으로 흘러 들었다.

가드니아. 경자는 향기에 붙은 이름을 되뇌었다.

가드니아. 낯선 음절과 짐작되지 않는 뜻. 경자는 가드니아라고 다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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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홑이불은 털면 털수록 치자꽃 향이 나는 듯했다. 경자는 늘 같은 향의 섬유유연제를 썼다. 가드니아였다. 마트에서 치자꽃이 그려진 섬유유연제 라벨을 보고 반가워했다가 가드니아라는 이름을 읽은 후 어리둥절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하얀 꽃잎에 노란 꽃술은 경자가 아는 치자꽃인데 왜 가드니아일까 하고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았으나 희석되지 않은 향기는 역하기만 했다. 세탁기에 넣어 빨래를 돌리고 나서야 경자는 고대하던 향기를 맡아볼 수 있었다. 그 향기는 경자가 기억하던 치자꽃같기도 하고 아닌것도 같았다.


처음엔 베란다 밖으로 팔만 내밀어 조심조심 이불을 털던 경자는 아래층 여자를 떠올렸다. 먼지가 고대로 우리 집으로 들어오잖아요! 몇 달 전 새로 이사 온 아래층 여자는 지난번 경자가 이불을 털었을 때 집으로 찾아와 난리를 쳤다. 경자는 윗층에서 아무리 이불을 털어대도 한 번도 그 먼지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 후로 경자는 자주 창가에 앉아서 창문으로 무언가 들어오나 살폈다. 한 번은 윗집 어딘가에서 밖으로 떨어 버린 듯한 모래가, 또 한 번은 오리털 같은 하얀 것이 살랑살랑 아래로 떨어지는 걸 보았다. 경자는 몸을 내밀어 그 털이 하늘로 날아가는지 아래로 떨어지는지 살폈으나 곧 사라졌다.

경자는 먼지를 더 멀리 날릴 심산으로 몸을 조금 더 밖으로 기울였다. 여름 아침의 하늘에서 달콤한 향기가 불어왔다. 펄럭펄럭 이불이 나부낄 때마다 향기는 더욱더 진해졌다. 터는 팔에 힘이 붙었다. 경자는 무엇에 홀린 듯 더욱 몸을 빼고 팔을 휘둘렀다. 하얗게 나부끼는 이불과 향기가 경자를 취하게 했다. 그러다 휘청, 하며 균형을 잃었다. 가까스로 난간을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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